부동산에 울고 웃던 우리집…종착지는 ‘살아갈 집’

신다은 기자 2023. 8. 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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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부동산 둘러싼 가족의 고민과 갈등 발랄하게 담아낸 다큐 <버블 패밀리> 속편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스틸컷. 서울인권영화제 누리집 갈무리

아버지가 주택을 지으면 어머니는 인테리어를 했다. 한 명은 돈 되는 부지를 찾는 수완이 좋았고 한 명은 감각적 디자인으로 고객을 사로잡았다. 둘은 착착 손발이 맞는 콤비였다. 아버지가 큰맘 먹고 투자한 부지가 묶여버리기 전까진.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마민지 지음, 클 펴냄)은 한평생 땅과 집으로 울고 웃었던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다. 언뜻 사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작가의 가정사는 서울의 도시개발사와 꼭 겹친다. 서울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 부모님은 수많은 집을 지어 큰 부를 누렸다. “돈이 뻥튀기처럼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쌓인 자신감과 배포로 아버지가 역대급 사업을 벌릴 때쯤, 서울시는 아버지가 사 놓은 개발 부지를 건축 규제 지역으로 발표한다. 설상가상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까지 터지며 가세가 급격히 기운다.

아파트가 헐값에 팔린 뒤 가족들은 12평짜리 빌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한때 46평 고급 아파트에 살며 외제 옷을 입었던 작가는 이제 보일러가 끊겨 냄비에 끓인 물로 머리를 감아야 할 처지다. 낙담한 부모는 역전을 꿈꾸며 역할을 변모한다. 이번에도 땅이다. 아버지가 또 다른 부동산 투자처를 찾으며 재기할 기회를 찾는 동안 어머니는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두 사람은 거래 성사를 위해 지역 개발 호재를 줄줄 꿰는 정보통이 된다. ‘부동산 타령하는 부모님이 지긋지긋하다’던 딸은 성인이 되자 집을 나오지만, 자취방을 전전하며 또 다시 집값의 위엄을 실감하고 만다.

260쪽에 걸쳐 부모의 생애사를 다루는데도 책에는 땅과 집이 빠지는 대목이 거의 없다. 있는 지도 몰랐던 자기 명의 도로에 희망에 부풀고 여전히 갚을 수 없는 빚에 좌절하고 지역 투자 정보로 일자리를 얻는 등 가족들은 꾸준히 부동산과 연결된 삶을 산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화제가 아닌 적이 없었다. 부동산은 계층 이동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탈출구이자 그 거래에 참여해 생계를 꾸리는 이들의 밥줄이었다.

처음엔 ‘부동산이 뭐길래’하며 답답해하던 작가도 결국 자신이 먹고 사는 토대 역시 그 부동산 산업에서 나왔단 점을 인정하게 된다. 특히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어머니가 ‘계약=우리 가족의 행복’이라는 문구를 책상 위에 붙여놓은 걸 보곤 “나의 단편영화 제작비도, 배낭여행 종잣돈도 모두 엄마가 계약해서 만든 돈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어머니가 자기 명의로 사 둔 땅의 관련 개발 정보를 검색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부동산에 집착하는 부모를 카메라처럼 관찰하던 그도 결국 자산 증식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을 당사자로 느껴 본 것이다.

그럼에도 기나긴 이야기의 종착지는 '구매할 집'이 아닌 '살아갈 집'이다. 사업 몰락 이후 낡은 월셋집을 전전하던 작가의 부모는 국민 임대 주택에 당첨돼 처음으로 해충과 곰팡이가 없는 집에 살게 된다. 작은 집에서도 행복해하는 부모를 보며 작가는 이렇게 되뇐다. “국가에서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해 준다면 이렇게 쾌적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거였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할 수가 있는 거였다.”

이 책은 2017년 작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를 에세이로 다시 풀어낸 것이다. 부동산을 둘러싼 가족의 고민과 갈등을 재기발랄하게 풀어내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책은 다큐의 ‘속편’이다. 다큐에 다 담기지 않았던 가정의 내밀한 이야기가 구체적인 대사와 장면으로 묘사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땅과 집에 기이할 정도로 매달리는 대한민국 수많은 가정의 ‘이상하면서도 평범한’ 풍경이 한 가정의 삶에 담겼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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