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약한 고리’ 한·일 관계…한·미·일 ‘준동맹’ 지속성 변수될까
한·미·일 정상이 준동맹급 협의체를 발족한데는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속도전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미·일 중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를 한국 정부가 ‘선제적 양보’로 풀어 걸림돌을 제거하면서 3국이 전례 없는 ‘독립적 협의체’ 길을 뚫었다.
3국 정상은 한·미·일 관계의 불가역적 변화에 힘을 싣지만 일방적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국내 부정적 여론과 일본의 미진한 호응, 임박한 후쿠시마 제1 원전 오염수 방류가 엮여 한·일 관계 지반은 불안정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한·미·일 협의체의 지속력에도 한·일 관계가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수 차례 한·일 관계 개선에 사의를 표했다. 그는 “아주 어려운 일, 역사적 일을 감행해 우리가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준비를 했다”며 한·일 정상을 띄웠다. 기시다 총리도 공동언론발표에서 “한·미·일 3국 간의 협력의 초석이 되는 것은 튼튼한 양자 관계”라며 한·일 관계 개선이 이번 3국 협력 강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3개월만에 한·미·일은 대북 현안 위주 비정기적 공조 체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방위적·정례적 협의체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한·일 최대 현안이던 강제동원(징용) 피해 배상 문제를 한국 정부가 자체 해결하는 선제적 양보를 한 이후 불과 5개월만이다. 초고속 한·일 관계 개선에 이어진 초고속 3국 관계 격상이다.
세 정상은 “수십 년에 걸쳐서 지속될 협력”(바이든 대통령) 등 이번 합의의 불가역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급속도로 이뤄진 한·일 관계 개선은 추후 3국 협의체의 강력한 가동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꼽힌다.
당장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각 동맹의 우회로를 뚫은 이번 회담 결과를 두고 국내에서 정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한·일 과거사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 없는 일방적 관계 개선으로 국내 부정적 여론이 여전히 높다. 국민적 지지가 약한 대외정책은 국내 정치적 상황과 양국 현안이 부상하면 흔들릴 수 있다. 전임 정부들에서도 한·일 관계는 과거사 등과 엮여 등락을 반복해 왔다.
3국이 한·미, 한·일 동맹 골격을 유지하며 한·미·일 ‘협의체’로 상호 연결하는 방식을 택한 데도 명시적인 한·일 동맹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동맹은 법적 구속력을 가져야 하고 조약을 맺어야 한다”며 “(이번 협의체에) 준동맹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방류가 임박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한·미·일 결속의 실효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3국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방류 판단의) 최종단계에 이르렀다”고 방류 임박을 확인했다. 일본 언론은 8월 하순을 유력한 방류 시기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점검과 계획대로 처리가 되는지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반복했다. 주변국 만류라는 방류 장애물을 재차 제거해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방류가 개시된 이후 국내·국제적 여론의 향방에 따라 한·일 관계 개선 속도전의 정당성이 논쟁이 될 수 있다.
한·일 정상은 일단 한·일 관계 개선을 정당화하며 지속적인 결속에 무게를 실었다. 윤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에서 “국내에서 (과거사 해법 관련) 정부 조치에 대한 반대 여론도 있지만 국민들은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한·일 간의 관계 개선과 한·미·일의 협력이 우리 안보와 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측의 ‘성의있는 조치’의 구체적 언급 없이 “(여러 분야 협력을) 윤 대통령과 함께 만들어 나감으로써 한·일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하겠다”고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20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한·일 관계에서) 과거에 매몰되면 안 된다”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 균형을 잡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고 지속적인 대국민 설득과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3국 정상은 이번에 ‘전방위 협력 약속’을 했지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약한 고리를 안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 정착이라는 과제를 안은 한국과 한·미·일 축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3국 협력을 고리로 ‘보통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안보·경제적 이익은 구체적 사안에서 다를 수 있다. 일단 구속력에 선을 그은 ‘3국의 신속한 협의’를 약속했지만, 실제 의무적 협의처럼 가동될 경우 구체적 현안에서 3국이 ‘완전한 공동대응’에는 이르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날 경우는 배제할 수 없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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