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탁기가 '미국 우선주의'를 극복한 비결[윤홍우의 워싱턴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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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풀이 우리를 불러들였습니다."
2019년 미 테네시주 클라스크빌에서 열린 LG전자 세탁기 공장 준공식에서 송대현 전 사장이 한 말이다.
당시 LG의 미국 내 첫 세탁기 공장 건설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시행 등 높아지는 미국의 무역 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이후 2020년 월풀 공장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 세탁기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자신만이 미국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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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기술혁신으로 앞마당서 승리
전기차등 '자국 산업 우선'정책 지속
韓기업, 또다른 세탁기 신화 만들어야
“미국의 월풀이 우리를 불러들였습니다.”
2019년 미 테네시주 클라스크빌에서 열린 LG전자 세탁기 공장 준공식에서 송대현 전 사장이 한 말이다. 당시 LG의 미국 내 첫 세탁기 공장 건설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시행 등 높아지는 미국의 무역 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송 전 사장은 “제품이 좋으면 인정을 해준다"며 “세이드가드가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미국 내 생산이 유리하도록 (경쟁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송 전 사장이 월풀을 꺼내든 것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부추겨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시킨 장본인이 바로 월풀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가전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오던 월풀은 기술과 품질에서 밀리자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외국 경쟁 업체들을 밀어낼 전략을 세웠다. 이에 부응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엄격하게 남용을 제한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16년 만에 꺼내 들었다. 이후 2020년 월풀 공장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 세탁기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자신만이 미국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5년간 시행된 세이프가드의 최종 승자는 결국 LG와 삼성이었다고 미국 정부는 최근 스스로 고백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이달 7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한 ‘대용량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보고서를 통해 “세이프가드 조치로 미국 세탁기 산업의 생산량 및 점유율이 높아졌으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기업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두 한국 기업이었다”고 밝혔다. 삼성과 LG가 현지 공장을 가동한 후 이들의 시장 지배력이 크게 높아졌으나 월풀 등 기존 미국 업체들은 도태됐다는 게 ITC의 최종 분석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보다는 자국 정부의 보호 무역에 기대 경쟁 업체를 밀어내려 했던 월풀이 결국 앞마당을 뺏긴 셈이다.
LG와 삼성이 미국 우선주의를 이겨낸 것은 단순히 현지에 공장을 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송 전 사장의 언급처럼 ‘제품이 좋으면 인정을 해준다’는 신념에 끈질기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드럼과 통돌이를 결합한 혁신적인 세탁기 LG 트윈워시가 그 같은 기술 혁신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LG는 이 제품 개발에만 8년을 매달려 미국과 한국 시장에 먼저 선보였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유력 소비자 매체인 컨슈머리포트의 조사에서 LG와 삼성은 상위권을 휩쓸었고 월풀의 세탁기는 차디찬 평가를 받았다.
LG와 삼성 세탁기의 이 같은 성공 사례는 현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바이든 정부 들어 한미 관계는 탄탄해졌으나 미국의 무역 장벽은 되레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트럼프 정부 때 시행된 철강 232조(철강 쿼터제)는 폐지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에 더해 미국은 인프라 사업과 전기차 등 미래 산업에 ‘바이 아메리카(미국산 우대 정책)’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일자리에 민감한 미국의 내부 정치는 보호무역을 경제정책의 ‘뉴노멀’로 만들고 있다.
결국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정면 승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 기업들이 특유의 저력으로 또 다른 세탁기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주재하는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한국이 바이든 정부에서 전기차 등에 현지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영원히 밀려났을 것”이라면서 “배터리 부품이나 광물처럼 미국산을 의무화하는 조항은 앞으로 더 많은 업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가 늘면서 국내 투자가 줄고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은 한 번 놓치면 영원히 되찾기 힘들다. 올 상반기에만 해외 법인 배당금으로 22조 원의 외화를 국내로 들여온 삼성전자의 사례는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기업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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