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 “직장 변경 못해 강제노동… ILO에 협약 위반 고발”

정지용 2023. 8. 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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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 건설노동자 팃 사라이는 한국에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고국으로 내쫓길 처지다.

병원용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 딴조린은 직장에서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무거운 물건을 계속 들다 탈장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사장의 허가를 받지 못해 4년간 그 회사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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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이동 자유 없이 저임금ㆍ성추행 참고 견뎌
민주노총 “이주자 차별하면 전체 일자리 질적 하락”
민주노총이 20일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캄보디아 출신 건설노동자 팃 사라이는 한국에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고국으로 내쫓길 처지다. 고용주는 그를 미허가 작업장 여러 곳에서 일하도록 했고, 사라이가 근로계약 위반이라고 문제 삼자 갑자기 해고한 뒤 “무단으로 도망쳤다”며 고용센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가족을 위한 수입이 끊어지고 새 직장을 가질 자격도 없어졌다”며 “우리 이주노동자도 다른 나라 노동자처럼 사업장을 바꿀 권리를 달라”고 호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이주노동자들이 20일 서울 용산역 광장 앞에서 ‘전국 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직장) 이동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다. 현행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사업장을 바꿀 수 있도록 규정한다. 민주노총은 고용허가제가 국제노동기구(ILO)에 명시된 ‘강제노동금지’ 협약을 위반한다며 ILO에 한국의 현실을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날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딘다고 증언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리아티는 입사 후 1년 가까이 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지만 한국 비자가 박탈될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도움으로 사장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회사를 옮길 수 있게 된 그는 “성폭력과 노예 상태를 물리치고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용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 딴조린은 직장에서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무거운 물건을 계속 들다 탈장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사장의 허가를 받지 못해 4년간 그 회사를 다녔다. 지난달에야 회사를 옮긴 그는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히 노동자가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고용허가제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3년 안에 최대 3회 직장을 옮길 수 있지만, 사용자 승인이 있거나 부도ㆍ임금체불 등 극히 예외적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 성폭력 등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같은 규제를 두고 “국제인권규범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정부는 지난달 사업장 변경을 하더라도 첫 직장을 얻은 지역 내에서만 허용하는 ‘권역별 이동제’를 추가로 도입해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거취를 결정하는 고용허가제는 사실상 ‘현대판 강제노동’이라는 게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에 눈감으면 내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악화시켜 전체 노동자 일자리의 질적 하락을 불러온다”며 “민주노총은 한국 정부가 ILO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ILO에 제출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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