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엄마처럼 안 살겠다' 인구소멸 1호 한국
정부가 믿음 줄 수 있어야
'합계출산율 1명' 목표로
인구위기 비상사태 선포를
저출생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 미만이다. 출생아 수 급감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003년까지만 해도 인구가 매년 1만명 이상 자연 증가했으나, 2020년부터는 자연 감소를 기록 중이다. 급기야 지난해 내국인 숫자는 5000만명 선이 무너졌다. 지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초저출생에 수도권으로 인구 유출까지 겹쳐 인구소멸위험지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인구가 사라질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았다. 그는 올해 2월 서울에서 열린 학술행사에 참석해 "문화적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의 결혼율과 출산율 반등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의 지적을 뒷받침하는 주목할 만한 조사가 있다.
일본 내각부에서는 5년마다 7개국(한국·일본·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 13~29세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조사한다. 가장 최근 조사 결과(2018년)는 한국의 젊은 여성세대가 다른 선진국보다도 더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는 질문에 한국 여성들이 가장 높은 반대 의견을 보였다. 특히 일본은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응답이, 한국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응답이 높았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질문에 한국 여성의 90% 이상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결혼해야 한다'는 응답도 한국 여성이 가장 낮았고, '자녀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높아졌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인생에서 가족이 중요하다는 비율이 높았지만 한국에선 가족보다도 사회활동과 자기 자신 등을 선택한 비율이 이전 조사 대비 크게 상승했다.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면 대전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2006년부터 17년간 저출산에 약 320조원을 투입했지만 계속 악화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정부는 '인구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초저출산 해결에 대통령이 앞장서며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인구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이 너무 안일하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중반 합계출산율이 1.79명일 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일본은 2010년대 중반 합계출산율이 1.42명일 때 인구 위기를 총괄하는 인구 전담 장관까지 임명하면서 강도 높게 대처했다.
정부가 합계출산율 1명 회복과 출생아 35만명을 임기 목표로 제시할 것을 제안한다. 구체성이 없는 장기적 비전만 제시하면 추동력이 떨어지고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 또한 결혼자금 증여공제와 같은 단편적인 대책이 아니라 '결혼-임신-출산-보육-교육-일·가정 양립'에 이르기까지 6단계 생애주기별로 실효성 있는 맞춤형 종합대책을 세워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간 긴밀한 정책 공조와 함께 출산율 제고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지자체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지자체들이 저출생 해결에 앞장서도록 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 역시 저출생 대책의 핵심이다. 또한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저출산 원인 중 하나이므로 결혼 및 출산 장려에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본격적인 고통은 정작 이제부터다. 윤석열 정부가 획기적인 가족·출산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맘(MOM) 편한 대한민국'의 기틀을 깔아주길 기대한다.
[이용섭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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