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사라진 장투, 개미 탓일까
묻어놨다면 100배 올랐다
혼탁해진 증시
장투족은 美로 뜨고
초단타 경연장이 됐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2층 홍보관에는 옛 주식 전광판이 남아 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주식 거래가 진행됐다. 주식 거래가 전산화되면서 1997년 8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수작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광판에는 수작업 매매 최종일이 박제돼 있다.
IMF가 뒤흔든 그해 말 주가 전광판에는 한국 증시의 부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많은 기업이 증시에서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기업은 국민들에게 로또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한 해를 마감한 삼성전자의 마지막 날 주가는 3만7900원이었다. 주가 상승과 50대1 액면분할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대략 100배 이상 올랐다. 4조원 안팎의 기업 가치는 400조원, 500조원까지 불어났다. 그 당시에도 삼성전자는 포항제철(포스코홀딩스),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과 함께 증시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초우량 종목이었다.
삼성전자는 중소형 테마주를 찾아 헤매지 않고 대표 기업 주식에만 묻어놔도 100배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투자자에게 던져줬다. 실제로 그런 신념으로 아직도 그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투자자를 본 적이 있다.
웬만한 공모펀드는 삼성전자를 기본으로 담아놨으니, 간접투자 성과도 쏠쏠했다. 2000년대 초반 인기 펀드를 지금까지 들고 있었다면 수익률은 1000%를 넘는다. 20년 만에 11배 이상 수익을 낸 것이다. 은행 이자율이 5%인 통장에 담긴 돈이 두 배로 불어나려면 14년이 넘게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시가 투자자에게 안겨준 부(富)의 효과는 선명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이제 신화로 남았다.
요즘 투자는 간편해졌고, 이에 비례해 속도는 빨라졌다. 점포를 찾아 가입·해지하는 일이 귀찮아서라도 묻어뒀던 공모펀드는 클릭 몇 번으로 사고파는 상장된 펀드(ETF)가 대체했다. 펀드 시절 여의도의 스타로 군림했던 펀드매니저는 설 자리를 잃고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정석 투자에서 금기시됐던 '빚투'는 투자의 기본이 됐다. 2.5배 정도의 레버리지 효과를 내는 신용거래는 테마주를 쫓아다니며 날이 갈수록 불어난다. 남의 돈을 쓰는 레버리지로 장기 투자는 불가능하다. 빚을 내 자주 사고팔면 돈 버는 곳은 따로 있다. 시가총액 수십조 원의 대표 종목이 초단타의 제물이 될 만큼 돈은 넘쳐난다. 특정 몇 개 종목이 거래량을 휩쓰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팩트와 소설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정보가 범람한다. 게다가 몇 년간 감시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가조작 세력에는 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됐다. CFD(차익결제거래)처럼 방치된 사각지대는 놀이터였다. 공모펀드만큼 커진 사모펀드 시장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수천억 원의 사고 후유증이 현재 진행형이다.
시장에 대한 신뢰엔 금이 갔다. '밈 주식'에 열광하는 것은 코로나 이후 글로벌 증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초전도체 현상처럼 붕 뜬 초전도체 주식은 실낱같은 가능성만 엿보여도 구름 위로 치솟다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한다. '초전도체와 관련 없다'는 기업의 자기 고백은 관심 밖이다.
과도하게 꿈을 좇는 시장에서 현실적인 외국인 투자자는 미소 짓는다. 주가가 오버슈팅할 때마다 거액의 차익 실현이 쏟아진다. 비자발적 단기 투자라고 해야 할까.
시장은 글로벌화됐다. 증시 경쟁도 치열하다. 코스피보다 S&P500이 낫다면 클릭 몇 번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시대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할 규모의 돈이 이미 미국 증시로 향했다. 단타 경연장이 돼 가고 있는 증시 체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황형규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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