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탄광 속 카나리아 울음' 저성장 대책 세워야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질 우려
반도체 경기 회복 지지부진
최대 수출 시장 중국 경기 악화
정부, ‘상저하고’ 전망 고수
시장에선 ‘상저하저’ 양상
위기 의식 · 정책 리더십 실종
올해 1%대 경제성장이 기정사실화한 판에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내년에도 1%대 저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제금융센터가 8개 투자은행의 7월 말 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 평균치는 1.9%에 머물렀다. 2월 2.1%였던 것이 3월에 2.0%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1%대로 떨어졌다.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 2.4%와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모습이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올해 성장률도 1.1%로 낮게 본다. 내년에도 1%대에 머문다면 2년 연속 1%대 성장이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있는 1954년 이후 처음 나타나는 저성장 기록이다. 2% 수준인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경제성장이 이어지면 기업 도산과 일자리 가뭄을 초래하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2년 연속 1%대 저성장은 70여년의 한국 경제 발전사에 전례가 없다. 한국전쟁을 수습하던 1956년(0.6%),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0년(-1.6%),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코로나19 사태 첫해인 2020년(-0.7%) 등 5개 연도 외에는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정부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 관변 기관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 안팎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소의 전망은 외국계 투자은행과 유사한 1.2~1.3%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확산하는 것은 비중이 매우 큰 반도체 경기의 회복이 늦어지고,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 경제가 회복하기는커녕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상저하고)하는 근거인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는커녕 '차이나 리스크'를 걱정할 판이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았다. 수출이 5~7월 3개월 연속 감소했다. 7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등 실물경제 지표도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게다가 1위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불안감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2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6%. 일본의 성장률은 전기 대비 1.5%로 연율로 환산하면 6.0%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성장률은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도 뒤질 전망이다. 한국 경제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진흙탕 속을 힘겹게 통과하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상저하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시장은 곳곳에서 '상저하저' 양상을 드러낸다. 6월 말 기준 카드사 연체율이 1.58%로 1년 새 0.38%포인트 상승했다. 상반기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이 72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60.2%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수출이 감소하면 내수가 받쳐줘야 하는데, 가계는 막대한 부채 때문에 소비 여력이 없다. 나라 곳간도 비어가고 있다. 정부의 감세 정책에다 경기침체 여파로 국세 수입은 1년 전보다 40조원 가까이 줄었다.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도 다시 오르며 물가를 자극할 태세다.
국내외 예측기관의 저성장 경고를 탄광 속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카나리아 울음소리로 여겨 대책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선 위기의식도, 정책의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과 수출금융 지원 확대 등 그동안 숱하게 우려먹은 정책을 재탕삼탕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오송지하차도 참사와 새만금 스카우트 잼버리대회 파행 등을 놓고 네 탓 공방을 일삼고 있다.
정부는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지 않도록 신중하되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경제팀은 낙관론을 붙들지 말고, 차이나 리스크 등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선제적인 구조개혁으로 군살을 덜어내고 경제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가계부채 문제의 연착륙을 꾀해 금융시장 불안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대비와 첨단기술 확보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산업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규제혁파를 통한 신성장산업 육성과 수출 신시장 개척도 시급하다.
전 정부 정책을 공격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집착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건전 재정'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필요하면 재정을 풀어서라도 경기 급락을 막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개각을 통한 경제팀 쇄신과 공직사회 변화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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