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패 보여준 잼버리 콘서트, 딱 전두환 스타일"
훈련된 아이돌들이 훈련 안 된 정치 '땜빵'
정치의 연예인 동원, 이승만 정부 때 시작
전두환 정권, 5.18 1주기 맞춰 '국풍81' 개최
현 정부 언론·문화 정책, 전두환 정권 판박이
정치와 문화의 관계, 민주적 가치로 판단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문화평론가와 정치철학자, 두 분에게 딱 맞는 이슈가 있죠. 문화와 정치가 만나는 잼버리 K팝 콘서트가 지난주에 열렸습니다. 이 콘서트, 어떻게 보셨나요?
◆ 손희정> 이런 나라라는 게 부끄럽고, 너무 잘 해내서 자랑스럽지만 심란합니다. 콘서트가 아무 일 없이 잘 진행됐기 때문에 너무 다행이지만 굽이굽이에 너무 위험한 상황들이었잖아요. 청소년들, 청년들로 이루어진 아이돌들이 어른들이 망쳐놓은 걸 너무 잘 수습한 거죠. 그래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만권> 원래 정치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이잖아요. 책임이 영어로 responsibility 인데, 정치랑 거의 동의어처럼 써요. responsibility는 response 하는 능력, 즉 대응하는 능력인데 이번 잼버리에서 우리 정치권은 대응하는 능력 자체가 완전히 없었던 거죠. 정치의 부재였고, 제대로 된 플랜B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어린 아이돌들을 밀어넣어서 문제를 해결한 건데, 이게 책임 있는 플랜B였나 하는 생각이 들고, 대응 능력이 없는 정치 대신에 K팝 아이돌들이 다 책임을 졌으니까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일이죠.
◇ 채선아> 아무래도 K팝 콘서트를 두고는 '연예인을 정치권에서 동원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거든요. 다른 정부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 손희정> 한국에서 정치가 무능할 때 문화로 땜빵하거나, 문화를 욱여넣어서 해결하려고 했었던 역사는 정말로 유구하거든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정부 때 국방부 정훈국 소속으로 선무공작단을 만듭니다. 군장병 위문공연을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는데요. 당시 선무공작단을 만든 이유가 여순항쟁 때문이예요. 같은 군인을 다른 군인이 진압하는 작전이 진행됐는데 그 장병들을 위로하고 또 지역 주민들한테 반공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선무공작단을 서둘러 만든 거죠.
군대에 있던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퍼포먼스를 시키는 역사가 여기서 시작된 건데, 이번에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잼버리 콘서트에 BTS 공연 서게 해달라는 얘길 했잖아요. 이게 40년대에서부터 시작된 발상입니다.
◇ 채선아> 오랜 역사가 있네요.
◆ 손희정> 요즘 군대에서 군 뮤지컬을 만드는데 아이돌도 굉장히 많이 출연하거든요. 그런데 군 뮤지컬에도 아이돌을 그런 식으로 차출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사람이 지원을 하면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을 하는 방식이거든요. 이번 BTS 차출 논란은 완전히 옛날 사고방식으로 돌아갔던 거고요.
정치가 문화와 예술을 동원하려고 했을 때 우리 역사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임화수가 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정치 깡패이고 영화 제작자거든요. 이 사람은 자유당 정권 말기에 반공 예술인단을 조직해서 연예인들을 선거에 동원하는 일도 했어요.
◆ 김만권> 유명한 사건이 있어요. 김희갑 폭행 사건, 또는 '합죽이 폭행 사건'이라고 하는데 정치적인 선전 공연 출연명단에 김희갑이라는 연예인을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끼워넣은 거예요. 차출도 아니고 강제 동원인데, 그러다보니 김희갑이 항의를 한 거죠. 그러니까 임화수가 항의하는 김희갑을 폭행합니다.
◆ 손희정>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한 사건이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임화수가 정치 깡패였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등에 업고 거의 연예계를 주무르다시피 했던 사람이기도 해요. 이 사람이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같은 영화를 만들어서 '대통령 우쭈쭈'하는 류의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임화수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테러하면서 결국 4.19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는데도 큰 역할을 했죠.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 혁명 재판을 통해서 정치 깡패로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당합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깡패였다고 할 수 있죠.
◆ 김만권> 그 이후에도 (정치의 문화 동원은) 계속 이어졌어요. 대표적인 행사가 국풍81이라고 있었는데 제5공화국 수립 전후로 1212 쿠데타나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것들을 다 덮기 위해 대학생들까지 동원하는, 국가적인 대규모 축제 행사가 열려요. 그때 나왔던 유명한 가수가 이용, 홍서범, 이런 분들이고 이게 또 당시에 있었던 대학 문화를 대중문화로 통합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대학 문화에 남아 있던 저항의식을 증발시키려고 하는 아주 정교하게 기획된 행사였던 거죠.
◆ 손희정> 이 행사 자체가 1981년 5월 28일에 시작해서 6월 1일까지 5일 동안 진행되거든요. 근데 이 5월 28일이라는 날짜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시민군이 계엄군에 제압당한 지 딱 1년 되는 그 다음 날이었고요. (정권의 의도가) 아주 치밀하게 광주 민주화 운동 1주기에 뭔가 일이 벌어질 거다, 그걸 국풍81로 덮자는 게 있었던 거고 당시에 한국 인구가 4천만이 안 되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천만 명 정도가 행사에 참여했고, 기사마다 숫자가 다르지만 여기 공연에 동원된 학생들, 퍼포머들, 풍물패나 연예인까지 6천-7천 명 정도라고 해요. 관제 행사로서 이렇게 성공적인 행사도 별로 없었는데, 이걸 기획했던 사람이 허문도예요.
◆ 김만권>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어요.
◆ 손희정> 언론인 출신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언론인 출신인데요. 이 사람이 이런 문화행사 기획을 함과 동시에 언론 통폐합도 주도했던 사람이거든요. JTBC의 전신이었던 TBC를 없앴던 사람인 거죠. 지금 잼버리 콘서트와 국풍81을 연결해서 얘기할 때가 많은데 가만 생각해보면 윤석열 정부가 전두환 정권이랑 되게 비슷해요. 시사 프로그램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재탕이라는 평가를 많이 하는데 문화나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전두환 정권의 재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채선아> 국풍81 이후에는 정치권의 연예인 동원이 좀 줄어드나요?
◆ 손희정> 90년대를 보면 한국이 민주화된 이후 자유시장이 열리면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도래하고요. 더 이상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폄하하면서 마음대로 동원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립니다. 특히나 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게 되면 드디어 한국 사회에 팬덤 문화가 생기거든요.
◆ 김만권> 연예산업에선 (정권보다) 팬덤이 더 무서운 거죠.
◆ 손희정> 2000년대가 되면 정동영 전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보아가 나를 지지해 주면 1000만표는 올라갈 거라는 말을 하면서 정치권이 드디어 연예인들 눈치를 보는 시대가 옵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가 되면, 대통령 취임식에 한류 스타 싸이가 와서 공연을 하게 되는, 그래서 정치와 대중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관계를 제일 잘 활용했던 건 역시 문재인 정부였다고 평가받습니다. 탁현민 전 비서관이 스스로 그걸 되게 잘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 채선아> 이렇게 정치에 연예인이 동원되는 게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인가요?
◆ 김만권> 정치가 문화를 동원하고 연예인을 동원하는 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독일 나치 때도 있었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아주 유명한 여성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어요. 아주 유명한 다큐멘터리 제작자였거든요. <의지의 승리>라고 나치가 본격적으로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전당대회를 다룬 다큐멘터를 만들었는데, 너무 잘 만든 거예요. 첫 장면이 어떠냐면, 구름 사이로 비행기를 타고 히틀러가 쫙 땅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있거든요. 신이 내려오는 장면처럼 묘사했고, 작품을 너무 잘 만들었다보니 예술적으로도 높이 평가 받아서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을 거예요.
◆ 손희정> 워낙 잘 만들었는데, 어떤 식의 영화 언어를 발명해낸 사람이냐면, 히틀러 막 연설할 때 카메라를 얼굴 밑에 두고 패닝을 하는 거예요. 뺑글뺑글 돌면서, 말하자면 신격화하는 식의 영화 언어들을 만들면서 히틀러에게 복무했었던 사람이라 저 같은 페미니스트 영화학자들은 굉장히 내적 갈등이 있는 거죠. 영화도 굉장히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인 예술이었거든요. 여성 예술가가 이렇게 뛰어나고, 또 굉장히 높은 위치까지 갔던 사람이지만 나치에 복무했기 때문에 여성 감독이라고 무조건 지지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는 거죠.
◇ 채선아> 저희가 잼버리 K팝 콘서트 얘기를 이어가다가 나치 얘기까지 오게 될 줄은 진짜 몰랐어요.
◆ 손희정> 문화가 정치랑 분리될 수 없는데 한편으로는 정치가 문화를 그냥 착취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티스트들도 그걸 기회로 잡는 경우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 김만권> 맞아요. 레니 리펜슈탈이 대표적인 케이스였어요. 리펜슈탈이 원래 배우를 하다가 영화감독을 너무 하고 싶어 했었어요. 원래 무용가였고,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게르만 민족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했는데, 마침 히틀러가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죠. 리펜슈탈이 사실 그 기회를 잡은 거였죠.
◇ 채선아> 그렇게 정권과 연예인이 서로를 돕고 활용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박근혜 정권 때 있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정치가 문화를 탄압할 수도 있잖아요.
◆ 김만권> 정치가 문화 예술을 이용하면서도 통제하려고 하죠. 나치 때 예술을 정말 잘 활용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에서는 예술을 철저하게 통제한 측면도 있습니다. 나치가 타깃으로 삼았던 게 퇴폐 미술이라는 게 있어요. 당시에 표현주의라고 해서 인간의 몸을 좀 비정상적으로 표현하거나, 뭉크의 작품들 같은 거 있죠. 인간의 정상적인 근육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을 단순화시키는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다 금지시켰어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면 에른스트 키르히너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는데 이분은 작품이 거의 600개 정도가 검열에 걸려요.
이 분이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예술가였거든요. 그 뒤로 전쟁의 참혹함에 질려버린 거예요.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군인으로서의 자기 자화상을 그리는데 자화상에 눈에 초점이 없어요. 그리고 오른손, 그림을 그리는 손이 잘려 나가 있어요. 더 이상 예술가로서의 창작 의욕이나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상징이었던 거죠. 그런데 나치는 전쟁에 사람들을 동원해야 되니까 이런 예술 작품들을 반드시 통제해야만 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600점 이상 팔고 퇴폐 미술로 처분하고 금지시키고 그래서 결국 키르히너가 자기 작품을 다 불태우고 자살해요.
◇ 채선아> 그게 하나의 화풍일 수 있었는데 검열해버리니까
◆ 김만권> 또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도 60년대에는 대항문화라는 게 있었어요. 히피 문화 이런 것들이 포함되는데 히피 문화는 가부장적 문화로부터 벗어나는 걸 추구하는 대표적인 저항 문화였어요. 그리고 정말 옛날이야기인데 '케빈은 12살'이라는 외화가 있었어요. 거기에 보면 큰 딸이 아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집으로부터 아주 먼 대학을 가거든요. 이게 되게 상징적인 장면이었어요. 그 큰딸이 히피예요. 이런 문화들이 지금의 페미니즘 제2물결, 이런 것들하고도 다 맞닿아 있던 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정치 쪽에선 아주 통제해야 되는 그런 순간들이었죠.
◇ 채선아> 그런데 이렇게 통제가 들어온다고 해서 문화예술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잖아요. 영화계에서도 그때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졌을 때 엄청 저항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 손희정> 한국 영화는 저항해 온 역사가 길고 전통이 있는 예술 분야이기도 하거든요. 80년대 사회변혁 운동에 함께하면서 영화 운동을 통해서 사회 변화를 꿈꾸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이 90년대에 한국 영화 산업의 부흥을 가지고 오는 주역들이기도 해요. 그래서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한국 영화는 좌파'라고 하면서 한국 영화 죽이기가 시작되거든요.
이때 당시에 얼마나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냐면 2009년쯤에 한 연예인이 아이돌이었다가 영화배우로 직업을 바꾸면서 영화판에서 살아남고 싶었는데 그게 좀 힘들었던 시기였던 거예요. 그때 인터뷰에서 뭐라고 얘기하냐면 "한국 영화계는 좌파다" 이렇게 인터뷰를 해서 논란이 됐어요. 그냥 좌파다라고 얘기할 수야 있지만 좌파를 어떤 의미로 썼느냐가 문제였는데, 아이돌 배우들을 배척한다는 의미로 좌파란 말을 쓴 거예요. 정부와 언론에서 한국 영화는 좌파라고 하면서 왜 좌파인지를 설명하지 않다보니까, 좌파란 말 자체가 앞뒤가 꽉 막힌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 배우가 이해를 하고 있었던 거죠. 이 배우는 나중에 사과하면서 내가 좌파라는 말의 뜻을 잘 몰랐다고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게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사회 분위기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정권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 넘어갔었던 데에는 영화라고 하는, 당시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대중문화의 영향이 있었다고 판단했었던 것이고, 영화계 안에 그런 소위 사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없애야겠다고 하는 검열이 들어왔었던 거죠. 그런 작업들이 박근혜 정부까지도 이어지면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서 지원금 같은 거를 주는 데에서 이제 그렇게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화이트리스트 사람들에게 지원을 몰아주는 일이 있었고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난 뒤로 진상 규명 요구가 계속되면서 변화가 만들어가고 있죠.
◇ 채선아> 얘기하면 할수록 문화와 권력의 관계가 굉장히 복잡한데, 이 둘 사이에 바람직한 관계란 대체 무엇이고, 그걸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걸 해야할 지 여쭤보고 싶어요.
◆ 손희정> 바람직한 관계는 없어요. 저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필요하다면 예술이나 문화가 정치에 복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치가 필요할 땐 문화를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하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대중문화처럼 되어 있고, 문화는 거꾸로 정치화되어 있지 안은 게 문제인 것 같아요.
◆ 김만권> 문화와 권력이 관계가 없었던 적이 없어요. 권력은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이용하고 싶어 해요.
◇ 채선아> 셀럽을 이용하잖아요. 정치인들이 누구랑 친하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 김만권> 정치인들이 친하다는 말은 절대 믿으시면 안 됩니다. (웃음) 한 두 번만 봐도 친하다고 해요. 권력은 문화적 영향력을 항상 이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거리를 적당하게 두는 게 중요한데요. 저는 그 거리를 두는 기준이 하나 있다고 봐요. 권력과 문화가 뭔가를 같이 한다고 하면 그게 우리가 말하는 민주적 가치에 맞는가, 그런 일이라면 서로 같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특정한 권력을 지지하거나 정권 연장에 봉사하는 일이라면 문화가 명백하게 거리를 둬야 하는 거죠. 그럼 뭐가 민주적 가치냐, 사실 우리 헌법에 다 쓰여 있어요. 정부가 우리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싶어 하고, 생존권을 보호하고 싶어 하고, 잘 살 수 있는 권리, 행복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들을 보호하는 취지의 문화행사를 하고 싶다면 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 손희정> 그래서 이번 잼버리 K팝 콘서트에 굉장히 화가 나고 불쾌했었던 건, 저는 국가를 포함해 공동체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자발적으로, 이번에 문체부가 아이브가 자발적으로 콘서트에 참여한다는 걸 굉장히 강조했잖아요. 실제 자발적으로 아티스트들이나 문화인들이 동참할 수 있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이게 국익을 위한 일이었나,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일이었나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를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윤석열 정부가 잼버리에서 벌어진 일에 책임을 지고 수습 과정에서 K팝 콘서트를 하겠다면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잼버리 잘못은 다 전 정부가 했고, 우리는 이걸 잘해냈다고 하면서 IMF 금모으기 하듯이 이걸 돌파하고 있는데 그 상황을 한류로 땜빵하겠다? 이건 정권 면피용이고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죠. 아이돌 중에서도 '부름 받았다'는 표현을 SNS에 쓰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문제고요.
사실 한국의 어떤 예술 분야도 K팝처럼 국가에 잘 동원될 수 없거든요. 그렇다면 이렇게 국가에 잘 동원될 수밖에 없는 바탕이 어디에 있는지는 K팝 산업도 스스로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국가의 힘으로부터 아티스트 혹은 소속사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건 또 어려운 질문이지만 K팝의 자율성은 K팝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아요.
◇ 채선아> 이번 잼버리 콘서트에는 사실 국가의 책임이 많이 빠져 있었던 거네요.
◆ 김만권> 그럼요. 제가 방송 시작할 때 책임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 정치하시는 분들이 이거 하나는 꼭 생각해봐야 돼요. 우리 정치에 얼마나 대응 능력이 없었으면 온갖 사태가 벌어지고, 예멘 대원들은 입국도 안했는데 숙소를 배정하고, 사람 왜 안오냐고 했더니 정부는 파악도 못하고 있던 상황까지 벌어졌잖아요. 그런데 K팝 아이돌들은 그렇게 급하게 만들어진 행사인데도 엄청나게 잘했잖아요. 이건 아이돌들이 평소에 얼마나 훈련이 잘 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치는 평소에 얼마나 훈련이 안 돼 있는지를 보여준 거죠. 우리 정치가 아이돌들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평소 훈련이 잘 돼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정치는 평소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손희정> 그 훈련도 참 중요한데, K팝 아티스트들 너무 훌륭하지만 노동 착취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거냐라는 생각이 드네요.
◇ 채선아> 네, 여기까지 잼버리 K팝 콘서트로 들여다 본 문화와 정치의 관계,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김만권, 손희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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