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보기 힘든 색채 독창적 화가 임군홍 재조명
중국서 서양미술 독학해
자유롭고 화려한 화풍
붉은 주단 테이블 옆에 아내와 둘째 아들, 큰딸이 있다. 임신 6개월 아내 배 속에 막내딸도 있다. 청화백자와 목단이 그려진 민화, 독일제 맥주컵과 꽃신, 백합 등 집에 있던 귀하고 좋은 물건이 총출동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보름 전부터 국전에 출품하려고 그렸던 화가 임군홍(1912~1979)의 마지막 국내 작품 '가족'이다.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북한에 끌려가 30년 이상 존재가 지워졌다.
서울 신사동 예화랑은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납북화가 임군홍 개인전을 9월 26일까지 연다. 1930~1950년대 작품 120여 점을 펼친 대규모 전시다.
임군홍의 둘째 아들 임덕진 씨(75)는 그림 속 어머니 품에 안긴 본인을 가리켜 보이며 "아버지가 떠난 후 명륜동 집을 팔고 이사 나올 때까지 마루 이젤 위에 그대로 놓였던 그림"이라며 "어머니처럼 내 품에서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중국 우한에서 광고 디자인 사업을 하며 독학으로 서양의 다양한 사조를 소화하고 자기만의 그림세계를 펼쳤던 화가 임군홍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일제강점기 중국에 자유롭게 오가며 독학으로 일군 화풍을 미술사적으로 재평가하고 기려야 할 작가"라고 했다.
임군홍은 1948년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얼굴을 달력에 썼다는 혐의로 옥고를 치른 뒤 국군 수복 전 북한에 끌려갔다. 그의 아내는 자식 다섯과 시어머니, 시아주버니까지 부양하기 위해 시장 좌판부터 시작해야 했다.
임군홍 유족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연좌제의 고통 속에서도 작가 작품과 사진, 스케치 등을 고이 보관해 작가 연구의 기본을 갖췄다. 임덕진 씨는 "식구들이 좁은 방에 몰아 지내던 시절에도 부친 작품 공간을 따로 두고, 집을 구할 때도 작품 보관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장사를 돕던 그는 부친에 대한 그리움에 미술사를 공부하고 작품을 연구해왔다. 목돈이 생기면 액자도 새로 짜고 국내 최고 복원전문가에게 훼손된 부분 복원도 맡기며 100여 점을 보관해왔다.
임군홍은 1984년 롯데백화점 롯데화랑 전시와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미술사가 김은혜는 "(유족 기증 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처음 접한 임군홍 작품은 1930~1940년대 작품으로는 믿기 어려웠다"고 했다. 천단과 북해공원 등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그리며 본인 감성을 투영하니 사뭇 현대적이다.
전시작 중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모델'(1946)은 과감한 화면 구성과 색채 선택이 마티스를 연상시키고 '소녀상'(1937)은 시원시원한 붓질로 옷감과 인물을 표현한 것이 마네처럼 매력적이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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