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경협으로… 초심 찾은 전경련, 혁신 이뤄질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번주 1961년 출범 당시 명칭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꿔 달고 새롭게 출발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권력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며 내놓은 혁신안이 실효성을 발휘할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에서 기관 명칭을 한경협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처리한다. 이번 총회에서는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한경협으로 흡수 통합하는 안건도 다룬다. 또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한경협 회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상임고문으로 남아 한경협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현재 공석인 상근부회장에는 외교부 관료 출신인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가 선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국내 재계의 맏형 격이었던 전경련은 2016년 불거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위상이 급격히 낮아졌다.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이었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기업들에 요청하고, 정부 요구에 따라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한 사실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중적 이미지가 실추됐을 뿐 아니라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회원사에서 탈퇴하는 등 재계에서도 힘을 잃었다.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사실상 '패싱' 수준으로 소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그간 구축해 온 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한일·한미 정상회담 동행을 주관하는 등 전보다는 입지가 다소 회복된 분위기지만, 이미지를 쇄신하려면 갈 길이 멀다.
전경련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지난 5월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내부 윤리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포함했다. 윤리헌장은 △정치·행정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에 진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 상생 선도 △혁신주도 경제 및 일자리 창출 선도 등을 내용으로 한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윤리경영위원회는 전경련 집행부와 사무국이 추진하려는 특정 사업이 회원사에 유·무형의 외압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정성을 심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경연을 한경협으로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정체성 전환을 꾀하는 것도 정치권력과 거리를 둔다는 방향성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 관련 현안이 발생한 후에야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기존 태도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를 강화해 인플레이션 방지법(IRA)과 같은 현안이 발생하면 신속히 대응하는 등 글로벌 이슈 대응과 회원사 지원으로 역할을 재정립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혁신안이 제대로 실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가 큰상황이다. 전경련의 후신인 한경협 가입을 검토 중인 4대 그룹도 실질적인 회원사로 활동할지를 놓고는 아직 고민이 깊다.
일단 4대 그룹은 이번 총회를 계기로 한경협의 형식상 회원사로는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이들 그룹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에서는 탈퇴했지만, 산하 연구기관인 한경연에는 주요 계열사들이 회원사로 남아 있었다. 한경연이 한경협으로 흡수 합병되면 자동으로 회원 자격이 승계된다. 4대 그룹은 이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전경련 총회 전날인 21일 한경연 회원사였던 5개 계열사(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가 이사회를 열어 한경협으로의 회원 자격 승계에 관한 입장을 최종 정리할 계획이다. SK와 현대차, LG도 자체적으로 이와 관련한 검토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회비를 납부하고 한경협에서 특정 직책을 맡는 등 진정한 의미의 회원사로 합류하는 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는 명분으로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이 후신인 한경협 활동에 동참하려면 탈퇴 명분을 충분히 해소할 여건이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전경련이 내놓은 혁신안을 '선언적 의미' 정도로 평가하면서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준감위는 삼성이 한경협에 가입하더라도 정경유착이 발생하면 즉시 탈퇴하라고 권고했다.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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