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연금술’ 초전도체의 첫 문을 연 한국 [권상집의 논전(論戰)]
개발 성공하면 과학 넘어 경제·산업·안보·의학 등으로 파급효과 확산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요즘 어디를 가나 초전도체 얘기뿐이다. 유튜브, 인터넷, 모바일 그리고 전문가 세미나도 초전도체의 미래와 파급효과에 대한 논의로 가득 차 있다. 과학이 정치경제, 사회문화 이 모든 현상을 집어삼킨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2030 누리꾼들은 이번 LK-99를 개발한 이석배 박사를 과학 대통령으로 칭송하고 있고, K콘텐츠에 이어 K사이언스 시대를 연 개척자로까지 호평하고 있다.
초전도체, 112년간 진행된 인류의 도전
7월22일 논문 한 편이 온라인 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소개되면서 이 신드롬이 시작됐다. 해당 논문의 핵심은 상온·상압 초전도체 물질 개발에 있다. 주요 언론에서 이를 포착해 8월초부터 기사를 쏟아냈지만 물리·화학 분야 연구원과 이공계 대학원생 사이에서는 7월22일 당일 해당 논문의 진위와 함께 파급효과에 대한 얘기로 온종일 화제를 이뤘다. 그동안 학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난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초전도(超傳導)란 특정 온도에서 저항이 급격히 낮아져 전기저항을 상실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기저항이 사라진 물질을 우리는 초전도체라고 부른다. 전기저항이 제로란 뜻은 결국 에너지 손실이 없다는 의미. 그렇다면 인류는 무제한으로 전류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과학에서 효율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는 효과성, 즉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 학자들이 초전도체에 도전한 이유다.
초전도 현상이 처음으로 발견된 건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인 1911년이었다. 당시 네델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기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초전도 현상은 늘 극저온이나 초고압에서만 존재하는 한계가 있어 천재 과학자들은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해 왔다. 그간 다수의 과학자가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들의 결과는 모두 조작이었다.
112년간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의 천재 과학자들이 도전과 실패를 거듭해온 사이 국내 연구진이 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니 과학계에서 충격을 받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학계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초전도체 현상과 파급효과를 강조하며 논문의 주저자 이석배 박사를 주목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워낙 믿기 어려운 일이라 기초과학 분야의 학자, 연구기관은 지금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초전도체를 국내 연구진이 완벽하게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논문은 사이언스 등 학술지에 발표, 학계의 평가와 검증을 통해 신뢰도와 타당도를 인정받은 연구가 아니다. 연구자 관점에서 보자면, 논문은 아직 미완성 수준이다. 이미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이석배 박사 등 주요 연구진이 국제학술지에 정식으로 논문을 투고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미완성 작품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 학술지로 꼽히는 사이언스와 네이처도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면 인류 역사상 경이로운 일이지만 현재 제시된 데이터나 분석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단언했다. LK-99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내놨던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진도 초전도체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즉, 논문의 타당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참고로, 해당 논문이 공개된 후 LK-99를 완벽하게 재현한 학자도 아직 없다.
우리가 초전도체에 열광한 이유는 초전도체가 과학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와 산업 그리고 안보와 의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할 때 열이 많이 발생하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저항으로 열에너지가 발생, 에너지가 손실되는 순간이다. 대학병원에서 중환자가 촬영하는 MRI 역시 냉각장치 등으로 초전도체를 극저온 상황에서 유지해야 하기에 부피도 크고 가격도 비싸다.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이런 모든 일상의 문제가 사라진다. 당장 MRI는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기에 비용이 대폭 절감될 것이다. 또한 전력 손실이 없다면 에너지를 100%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전기요금 인하, 자기부상 전철, 스마트폰 배터리 성능 향상, 초고속 컴퓨터를 넘어선 양자컴퓨터의 활용 등은 모두 초전도체가 이뤄낼 혁신에 해당한다. 초전도체는 과학을 넘어 경제와 산업을 흔들어 놓는다.
초전도체는 경제와 산업을 넘어 국가안보와 의학 분야에서도 승부처가 될 수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를 감안해 110년 넘게 초전도체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양자컴퓨터는 초전도체를 통해 높은 속도와 에너지 효율로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초전도체를 개발한 국가는 암호 및 해독,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 초전도체는 국가 안보와 의학의 패러다임까지 바꿀 수 있다.
이번 초전도체 개발의 숨은 공로는 고(故) 최동식 고려대 화학과 교수에게 있다. 그는 1996년 이미 언론을 통해 초전도체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고 수업에서도 순간이동, 공간이동 등을 언급하며 과학계의 이단아로 학생들에게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제자들은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난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고 시행착오 끝에 초전도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 멀어
물론, 퀀텀에너지연구소가 발표한 이번 논문으로 경제와 산업, 안보, 의학이 단기간에 혁신을 일으킬 순 없다. 그리고 어쩌면 상용화 이전에 완벽한 초전도체 개발까지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점은 우리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각 분야의 난제 해결을 위해 연구에 매진해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전폭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블록체인, AI 등 서구가 주도해온 과학기술 트렌드에 끌려다니며 스스로 과학 종속국임을 자인해 왔다. 초전도체 개발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진 몰라도 21세기 연금술로 평가받는 초전도체의 첫 문을 국내 연구진이 연 것만으로도 이번 일은 어떤 의미로든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과학에 다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허상이 아닌 진짜 초전도체를 향한 집념과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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