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등산로 연이은 ‘묻지마 범죄’…“일상이 불안해졌다”
호신용품 구매 고민에 공공장소서 두리번 거리기도
도심 속 만남도 자제…서울 근교로 약속 정하기도
전문가 “경찰만으로 한계…범정부 머리 맞대야”
[이데일리 황병서 이영민 기자]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칸으로 이동해요. 주변 사람들이 막거나 신고해줄 수 있고, 앉는 것보다 서 있는 게 더 빨리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지하철 안에서 흉기 난동이 일어난 다음 날인 20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경기 부천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김유경(27)씨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일상이 됐다. 공중 화장실을 갈 때도 모든 칸의 문을 열어보기 시작했고 호신용품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합정역에서 흉기 난동 소식을 듣고서는 ‘나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볼 때 예전만큼 친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하철과 등산로처럼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에서 연이은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면서 김씨처럼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등산로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이틀 만인 지난 19일 지하철 2호선 안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져서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0일 신림동 등산로에서 여성을 성폭행하고 때려 숨지게 한 피의자 최모(30)씨의 혐의를 강간상해에서 강간살인으로 변경했다. 피해 여성이 사건이 발생한 지난 17일 의식불명 상태로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지만 19일 오후 3시40분쯤 사망한 데 따른 것이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강간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같은 지역에서 흉악범죄가 발생한 것이라 충격을 더했다. 최씨의 성폭행 장소는 흉기난동이 발생한 장소와 불과 2km 떨어져 있었다. 최씨는 지난 17일 오전 11시 40분쯤 신림동에 있는 공원 인근 등산로에서 여성을 너클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성폭행했다. 경찰은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를 들은 등산객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해 낮 12시 10분 최씨를 체포했다.
지하철 2호선에서는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며 사람들의 불안도를 높였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날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승객 2명을 다치게 한 50대 남성 A씨가 “전철 내에서 여러 사람이 공격해 방어차원에서 폭행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과거 ‘미분화 조현병’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있었으나, 2019년 이후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A씨는 지난 19일 오후 12시 30분께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합정역 방면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승객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휘두른 흉기는 다목적 공구로 사용되는 열쇠고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상에서 범죄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불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각종 약속을 잡지 않는 극단적인 방법에서부터 지하철 등에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고 주변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합정역 내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국인 유학생 한나(23)씨는 “무서워서 외출을 피하고 약속도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대학교에 다니는 “이대역 살인 예고글이 올라온 뒤부터 지하철을 타기 두려워서 이동시간이 20분 더 걸려도 버스로 등교한다”며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공부 때문에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직장인 권모(34)씨는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듣던 습관을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흉기 난동 사고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출·퇴근 시간이 각각 한 시간 이상이어서 보통 노래나 팟 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면서도 “당분간은 이어폰을 빼고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인, 부부간의 데이트와 지인들 간의 약속 행태도 변하고 있다. 김모(36)씨는 지난 주말 원래 계획했던 명동에서의 데이트를 취소하고 파주를 찾았다. 김씨는 “아내와 서울 도심에 각종 체험활동 등을 즐겼는데 이번 사건으로 가기가 꺼려졌다”며 “코로나 때 이후로 이렇게 차 안에서의 데이트를 선호하게 된 게 얼마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찰의 대처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범정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는 “최근 신림동, 서현역, 합정역 등 지하철역에서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며 일반 시민의 공포가 높아졌다”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피해자가 되면서 호신용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느는 등 국민 개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자위 의식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곽 교수는 “경찰만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며 “다기관 협력체계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지자체와 지역의 정신건강센터,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인적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병서 (bshwang@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순신 장군 무서워하길래"...명량대첩축제, 다나카 섭외 이유
- 피프티 피프티 가족 "가수 안했으면 안했지… 돌아가고 싶지 않아"
- [누구집]트와이스 정연, '힐링'에 진심인 집 골랐네
- 女 아이돌 굿즈에 4천만원 쓴 남편, 이혼사유 될까요[양친소]
- "'선배맘' 협박 메일 고발"...'영재' 백강현, 서울과학고 자퇴 파장
- "운동 중 아니었다"...'신림동 성폭행' 피해자, 출근길에 참변
-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 10만2000명…부정수급일까?
- "일주일이면 구해요"…여전히 낮은 '프로포폴' 장벽
- 김현숙 장관 "잼버리 숙영지 떠난 이유…신변의 위협 때문"
- ‘캡틴 SON’이 본 달라진 토트넘, “역습도 좋지만 공격 중심의 축구 하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