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는 동북아 평화 위한 필수 관문”
와다 하루키(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사진)가 최근 출간한 <한국전쟁 전사>(남상구·조윤수 옮김, 청아출판사)와 <북일 교섭 30년>(길윤형 옮김, 서해문집)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사건 중 하나는 ‘미군 B-29’의 출격이다.
“요코타 기지에서 B-29가 날아올라 북한을 끝까지 공습하고 폭격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끝나는 정신 구조였다”(<한국전쟁 전사> 중). “자신들(일본 국민)만이 평화로우면 된다는 의식, 지역 운명에 대한 무관심, 지역주의 부정”이 굳어진 결과로 나타난 정신 구조를 지적하며 B-29 사례를 인용했다.
“일본에서 이륙한 미군의 B-29 폭격기는 북한군을 분쇄하고, 북한을 초토화했다”(<북일 교섭 30년> 중). 북한 침공과 서울 점령 뒤 미국의 참전에 따라 “일본은 점령군의 요청 혹은 명령에 따라 미군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태세에 돌입”하며 준참전국이자 실질적 참전국이 된 점을 적시하며 B-29 출격의 역사를 끌어왔다. 이 책에서 미국의 병참·출격 기지였던 일본이 한국전쟁으로 ‘비군사적 고도 경제성장’의 토대를 다진 점도 지적한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307262111161
와다는 <북일 교섭 30년>에서 “70년 전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B-29가 도쿄의 요코타와 오키나와의 가데나로부터 연일 출격해 북한과 그 군대를 공습했다. 그 당시 북한엔 미사일이 없었다”고도 썼다. 2017년 3월 6일 일본 배타적경제수역에 북한 미사일 3발이 떨어졌는데도 “미일 안보 조약이 있어서 괜찮다, 일본은 미국이 핵우산으로 지키고 있어 안심할 수 있다면서 이런 위기를 목도하면서도 보지 않은 척하는 것”을 두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경고하며 한 말이다. 와다는 “북미가 전쟁 상태가 된다면, 일본은 곧바로 전쟁터가 되고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일본에 떨어지지 않게 막는 일은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와다의 B-29 사례 인용의 결은 달라도 맥락과 목표는 같다. 바로 ‘한반도·동북아 평화’다. 한국전쟁에 대한 와다의 규정·주장과도 이어지는 문제다.
“1948년에 탄생한 한반도의 두 국가는 군사적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결의 면에서 ‘대칭적’이었다”고 본다. “(두 나라 모두의 무력통일이라는) 지향점은 미소 대립의 출현과 결합하면서 소련의 지지와 원조를 등에 업은 북한의 공격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전쟁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와다는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 서문에서 남북한의 ‘공통 인식’을 강조한다. 이 인식의 형성은 “독립된 국토 위에 두 나라가 건설된 후 무력으로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기도가 북에서 먼저 시작됐고, 뒤이어 남에 파급됐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대립과 분단이 고착화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남북한 국민이 3년간의 전쟁을 과거의 일로 흘려보내고 평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면, 쌍방 모두 무력으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에 발을 담갔다는 공통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와다는 한국전쟁을 동북아시아 모든 국가를 끌어들인 전쟁으로 본다. 이 전쟁 이후 “동북아시아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에 어떤 의미였는지도 살핀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6051850001
<북일 교섭 30년>은 동북아시아 구조에서 북·일 교섭의 역사를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전 일본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와 와다 등이 참여한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의 22년 활동 기록을 정리한다.
이 협회는 2000년 7월3일 설립됐다. 2002년 월드컵 개최까지는 북·일 국교 수립을 실현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활동했다. 북한은 지금도 일본이 국교를 맺지 않은 세계 유일의 국가로 남았다. 2022년 이 협회는 자신들의 활동은 ‘패배’로, 일본 정부의 북·일 국교 교섭도 ‘실패’로 규정했다. 책은 그 패배와 실패에 관한 기록이다.
1955년 2월 25일 북한 외무상 남일의 무역·문화 관계를 열자는 제의와 재일 조선인들의 집단 북한 이주, 1971년 자민당 의원 중심의 북일우호촉진의원연맹과 1973년 총평사회당 혁신계의 북일국교정상화 국민회의 결성 등 국교 수립에 우호적인 역사를 우선 살핀다. 1970년대 시작된 북일 민간 무역은 1980년 5억54000만달러 규모로 커진 점도 적시한다.
이견과 갈등, 고비도 정리했다. 1970년대 북한은 ‘두 개의 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즉 북한과 수교하려면 한국과는 단교해야 해 일본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책은 1985년 당시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5월 독일 본에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회담하면서 냉전 구조 해소를 위해 “한국은 중국-소련과 국교가 없고, 북한은 일본-미국과 국교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차승인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른바 ‘엇갈림 승인’을 제안한 일도 실었다.
와다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일본인 납치 문제 조사에 대한 중단으로 북·일관계가 “완전히 단절 상태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납치 문제는 일본의 제일 중요한 과제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 국교 정상화는 없다’ ‘피해자 전원 귀환을 요구한다’는 이른바 아베 신조의 ‘납치 3원칙’도 북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와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본 국민은 북일 국교 정상화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동북아시아 평화의 집, 함께하는 집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는 열어젖히지 않으면 안 되는 문이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한국 국민의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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