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최신 유행가로 만들고 싶다” 소리꾼 이봉근·고영열의 꿈

허진무 기자 2023. 8. 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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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크로스오버’로 대중에게 다가가며
‘불후의 명곡’·‘팬텀싱어’로 각각 이름 알려
국악축제 ‘꼬레아 리듬터치’ 무대 앞둬
소리꾼 이봉근(왼쪽)과 고영열이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소리꾼 이봉근(왼쪽)과 고영열이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팬에게는 소리꾼 이봉근(40)과 고영열(30)의 이름이 익숙하다. 이봉근은 KBS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 고영열은 JTBC <팬텀싱어 3>에서 준우승했다. 판소리와 다른 장르 음악을 결합한 ‘크로스오버’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소리꾼들이다.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올해 5회째 열리는 국악축제 ‘꼬레아 리듬터치’ 무대를 앞둔 지난 16일 이봉근·고영열을 만났다.

이봉근은 “판소리를 최신 유행가로 만들고 싶다”며 “전통도 ‘보존’하려고만 하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판소리 자체가 그 시절 유행하던 말들을 모은 유행가예요. 가장 현재를 풍자하는 음악인데 과거에서 발전하지 못한 것이죠. 대중의 시간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옛날 모습만 보존하니 대중은 낡은 포장 때문에 열어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고영열도 “현대에 맞는 전통 음악을 고민한다. 더 많은 사람이 판소리를 듣게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음악 원형을 그대로 현대 대중이 즐기기는 어려워요. 옛 음악을 현시대에 유행시키려면 ‘현재진행형 국악’이 만들어져야 하죠. 이조차 없다면 ‘옛날 음악’으로만 치부당하고 끝나는 장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이봉근은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했지만 스승들 몰래 대중음악 학원에서 보컬 레슨을 받았다. 국악보다 재즈나 R&B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록밴드 보컬로 홍대 클럽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20년 영화 <소리꾼>, 2022년 뮤지컬 <이상과 슈만>에 배우로 출연했다. 그런 경험들이 판소리의 내공으로 고스란히 쌓였다. “다른 음악을 배운 것이 판소리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스승이신 성창순 명창께서 ‘음악은 천장에 닿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장르의 음악을 접하면서 조화로운 소리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죠.”

고영열은 피아노를 치며 판소리를 하는 ‘피아노 병창’으로 유명하다. <팬텀싱어 3> 출연은 음악 인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됐다. 장르를 추첨해 공연하는 미션에서 ‘월드뮤직’을 뽑는 바람에 쿠바, 그리스, 이스라엘 음악을 편곡해 선보였다. 이때 다양한 국가의 민속음악을 판소리에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한’스럽고 ‘흥’스러운 민속음악이 있었어요. 한국 국악도 해외에서 보기에는 월드뮤직이니 일맥상통하죠. 판소리도 플라멩코, 보사노바, 삼바처럼 세계에 통하는 월드뮤직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소리꾼 이봉근이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재즈 스캣을 섞어 판소리로 편곡한 방탄소년단(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부르고 있다. JTBC 유튜브 캡처
소리꾼 고영열이 JTBC <팬텀싱어3>에 출연해 춘향가의 한 대목 ‘사랑가’를 키보드 건반을 치며 부르고 있다. JTBC 유튜브 캡처

이봉근은 이달 31일 공연에서 두번째달의 ‘사랑가’, 이한철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등을 부른다. ‘프로젝트 밴드 M’이 퓨전 국악을, ‘프로젝트 크루 M’이 탈춤을 접목한 스트리트댄스도 준비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 듯이 장단을 갖고 노는 음악이 많으니 한바탕 ‘놀이’로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판소리로 편곡한 대중가요를 많이 준비했어요.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이순신가’를 복원하는 작업 중인데 그중 한 대목인 ‘필사즉생’도 보여드릴 겁니다.”

고영열의 다음달 1일 공연에선 유명 판소리곡인 ‘사랑가’ ‘이별가’ ‘밀양아리랑’부터 고영열의 자작곡인 ‘이룰 수 없는’ ‘천명’ ‘옐로우 라이트’까지 모두 들을 수 있다. 판소리에 해외 민속음악 리듬을 더해 관객이 판소리 세계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국 전통 음악도 다른 나라의 리듬과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어요. 특히 남미 음악은 한국처럼 엇박자를 타는 듯하며 신나는 리듬이 있죠. 슬픈 역사가 있는 나라에선 그런 리듬이 보여요.”

‘크로스오버 판소리’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두 소리꾼이지만 각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봉근은 “크로스오버를 다 떼버리고 북 하나만 놓은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봉근제 판소리 창본(唱本)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판소리로 눈앞의 어떤 관객이라도 울릴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크로스오버는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다른 장르의 힘을 빌려오는 것이죠. 2013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줄리아드 음대 교수가 ‘미국 음악에 한국 음악을 가미하다니 놀랍고 독특하다’고 하더군요. 나름의 칭찬이었겠지만 자존심이 확 상했죠.”

고영열은 “K팝만큼 세계인이 즐기는 멋진 전통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편곡해 불렀을 때 ‘신비롭다’는 해외 반응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통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이상을 꿈꾸죠. 세계인이 K팝 너머에 있는 한국 국악을 많이 듣고,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즐기게 하고 싶어요.”

소리꾼 이봉근(왼쪽)과 고영열이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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