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국민 삐약이’ 신유빈, 만리장성 격파 선봉장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3. 8. 20. 13: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뜨는 별들③]
신유빈, 지난해 부상 위기 극복하고 올해 기량 만개
탁구 女복식 세계 1위, 혼합복식 3위, 단식 9위로 급성장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신유빈(18)에게 2022년은 악몽과도 같았다. 2021년 11월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을 기권하게 만든 오른 손목 피로 골절이 그 시작이었다. 재활 탓에 국가대표 선발전은 진즉에 포기했다. 선발전 포기는 그해 개최 예정이던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 불발을 의미했다. 5월에 손목에 핀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경기장에 복귀한 탓일까. 9월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손목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과 재활로 채워졌던 2022년. 그러나 마냥 나쁜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 내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잦아들지 않으면서 항저우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됐다.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가 다시 생겼다. 신유빈은 올해 3월 열린 2023~24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8승1패 1위로 태극마크를 되찾았다. 공식 경기에서 처음으로 복식 파트너이기도 한 전지희를 꺾기도 했다. 부상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기어이 항저우를 향한 문을 열어젖혔다.

7월1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WTT 컨텐더 자그레브 여자단식 8강전에서 세계 1위 중국의 쑨잉사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는 신유빈 ⓒ신화연합뉴스

18세에 세계 정상 올라…무한한 성장 가능성

신유빈이 처음 탁구채를 잡은 것은 5세 때다. 탁구장을 운영하느라 바쁜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해,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2009년)해 남다른 탁구 재능도 뽐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종합선수권대회(2013)에서 대학생 언니를 이겼다. '탁구 신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청명중 3학년 때(2019)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만 14세11개월16일)로 발탁됐다. 사라예보의 기적을 만들었던 탁구 전설 이에리사의 기존 기록을 깼다. 만 16세 때는 역대 최연소 탁구 올림픽 대표로도 선발됐다.

고교 진학은 포기했다. 엘리트 선수의 학교 출석 인정 일수가 줄어들면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하기 위해" 신유빈은 진학 대신 실업팀 대한항공에 입단했다.

신유빈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도쿄올림픽 때(2021년)였다. 노란색 상의를 입고 경기 도중 외치는 기합 소리가 마치 병아리 우는 소리 같다 해서 '삐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앳되고 귀여운 외모도 거들었다. 신유빈은 당찬 플레이로 단식 3라운드(32강전), 단체 8강까지 진출했다. 메달만큼 값진 경험이 된 올림픽 출전이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덜컥 부상을 당했다. 두 차례 수술로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력이 부풀려졌다'는 부정적 시선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신유빈은 묵묵히 재활에 매진했다. 손목을 쓰지 못할 때는 웨이트 트레이닝, 러닝 등으로 체력을 단련했다. 다부진 체격으로 변한 신유빈은 더욱 묵직해진 공격력을 앞세워 지난해 11월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에서 단식과 혼합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2023년, 비로소 또 다른 해가 열렸다. 단식보다는 복식에서 성적이 도드라졌다. 아직은 나이가 어린 탓에 함께 짝을 이루는 언니, 오빠에게 조금은 기댈 수 있는 복식에 편안함을 느꼈다.

신유빈은 지난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2023 개인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12세 차이의 중국계 귀화 선수 전지희(30)와 짝을 이뤄 여자복식 은메달을 따냈다. 준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쑨잉사-왕만위 조를 꺾어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양영자-현정화 조 이후 36년 만의 우승을 기대하게 했지만 아깝게 놓쳤다. 이 대회 여자 개인전 단·복식에서 한국 선수가 은메달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은 1993년 예테보리 대회의 현정화(단식 우승) 이후 30년 만이었다.

신유빈-전지희 조는 WTT 컨텐더 라고스(6월), 자그레브(7월), 라마(8월) 대회에서 3차례 우승했다. 이들은 세계랭킹(국제탁구연맹 기준·8월15일 현재)에서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전지희는 신유빈에 대해 "참 잘 컸다. 어린 선수답지 않은 배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아시안게임을 넘어 2024 파리올림픽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올림픽에서는 여자복식 종목이 따로 없지만 복식 경기가 있는 단체전 등에서 힘을 낼 수 있다. 전지희와 신유빈은 2019년부터 복식 호흡을 맞춰왔다. 개인전에서는 신구 에이스로 한동안 맞수 관계에 있었다. 신유빈은 임종훈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에서도 세계랭킹 3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신유빈의 강점은 "경기를 즐기는 것"

신유빈의 단식 순위는 한국 여자 선수 중 가장 높다. 현재 9위(1~6위가 중국 선수)인데 주천희가 21위, 전지희가 34위로 그 뒤를 잇는다. 참고로 남자단식에서는 장우진이 8위, 임종훈이 17위에 자리하고 있다. 신유빈은 올 시즌 WTT 컨텐더 라고스와 라마에서 단식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직 18세라는 점은 그의 무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유빈의 강점은 "경기를 즐긴다"(추교성 도쿄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는 점이다. 악몽 같던 2022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탁구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수술한 선수가 재활에 실패하는 이유로는 재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신유빈은 어린 나이에도 이를 정신력으로 극복해 냈다. 지난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2021년 세계선수권 때 부상을 당한 탓인지 조금의 두려움이 있었다. 경기 후 두려움을 극복한 것 같은 마음에 묘한 감정이 겹치며 눈물이 났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큰 성장통 후에 몸도 마음도 한 움큼 자란 신유빈이다.

신유빈은 경기 외적으로는 따뜻한 나눔의 행보를 이어간다. 대한항공 입단 후 처음 받은 월급으로 운동화 53켤레(600만원 상당)를 구입해 복지기관에 기부했다. 유소년 선수를 위해 한국초등탁구연맹에 탁구용품(600만원 상당)을 선물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광고 촬영 등의 활동으로 얻은 수익금 8000만원을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해 고향인 수원의 아주대병원에 기부했다. 올해도 세계선수권 여자복식 은메달로 받은 상금을 '세계 월경의 날'(5월28일)을 맞아 여성 청소년의 위생용품을 지원하는 곳에 기부했다.

탁구는 중국세가 강하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은 중국에서 열리는 터라 정상까지 가는 길은 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유빈은 언니·오빠들의 도움을 받으며 "중국 선수를 만나도 당당히 맞서겠다"고 말한다. 힘들었던 2022년을 지나 찬란한 2023년을 위해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국민 삐약이' 신유빈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