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실패 백서’에 남겨야 할 것들 [편집인의 원픽]

2023. 8.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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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에 참석한 대원들이 지난 4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텔타 구역 천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뉴스1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지난 12일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감사원이 새만금 잼버리 대회 실패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한만큼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잼버리 유치부터 따지면 박근혜, 문재인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까지 감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 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전임 정부와 현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조직위원회, 중앙정부간 ‘네 탓’ 공방이 치열해 감사원 감사 결과로 끝날 지도 미지수다.
폭염 속에 시작된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온열환자가 속출하고 화장실, 샤워실, 숙영지, 식사 등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면서 ‘잼버리 악몽’이 시작됐다. 전 세계적으로 K-드라마 위력을 떨친 ‘오징어게임’에 빗대 ‘잼버리 생존게임’으로 변질된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 지구촌 젊은이들이 선망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잼버리 ‘준비 부족’알고도 손 놓았다’(8월15일자,김승환·송은아·이강은·김동욱 기자) ‘새만금 잼버리, 첫 사업비 산정부터 주먹구구’(8월16일자, 김승환·박지원 기자) ‘위생엉망 잼버리 화장실, 전북도는 어이없는 포상’(8월17일자, 김승환 기자)‘잼버리 위기대응 매뉴얼 안 지켰다’(8월18일자, 박지원·박유빈 기자) 기사는 “예견된 참사”의 근거들을 드러냈다. 이제 남겨야할 것은 실패의 경위와 책임, 교훈을 제대로 담은 ‘잼버리 백서’다.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이 지난 1일 물웅덩이 위의 플라스틱 팰릿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모습을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펄밭 부지’선정·부실 예산 집행 따져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여야, 지자체와 중앙정부로부터 잠시 눈길을 거두자. 이런 시끄러운 목소리는 백서에 담을 하등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지난 6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를 밟다보면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고, 누구의 책임이 큰 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잼버리 감사에서 짚어야할 핵심 포인트는 기존의 새만금 부지를 두고 새로 갯벌을 메워 개최지로 결정한 경위다. 그 바람에 부지 조성하는 데만 5년 넘게 시간이 소요됐고 농지관리기금 1845억원이 쓰였다. 전북도가 밀어붙였다는데 전임 지사는 침묵하고 있다. 주무부서인 여가부도 할 말이 없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시절 여가부도 잼버리 부지 매입공사 중단 요구에 “상당히 진척된 상태라 (사업 진행이)불가피하다”고 손을 들어줬다.   

1130억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 과정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조직위가 이 가운데 870억원을 사용했는데 시설 조성, 운용, 식음료 지원 등 예산을 썼다는 항목에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본지 단독 보도에 따르면 행사 개최를 1년여 앞둔 지난해 예산 실집행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사업이 지적되거나 기존 사업비 대비 140%가 넘는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빚어지는 등 예산 집행·관리에서 부실 징후가 역력했다. 2016년 사업 유치 당시 400억원대였던 예산이 세 배 가깝게 증액됐는데도 총체적인 준비 부실로 실패한 데는 방만한 예산 관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지난 14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사태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전라북도 제공
◆공무원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 고성 잼버리 대회 등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민간 부문의 협력, 국민들의 호응도 필요하지만 공무원들의 헌신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이번 잼버리 행사에도 많은 공무원들이 동원돼 노심초사 맡은 일에 땀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색한 장면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본지가 단독 보도한 잼버리 행사와 관련한 공무원·민간인 포상이 대표적이다.

잼버리 대회의 성패와 무관하게 전북도는 지난해 잼버리 기반시설 조성 유공 명목으로 공무원, 민간에 대해 포상 조치를 했다. 실제 행사에서 그늘 시설 부족, 침수 방지 미흡 등이 문제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전 유공 포상’의 적절성 논란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뿐 아니다. 야영장내 ‘분뇨 처리’ 관련 기반 시설 조성에 기여했다며 전북도 공무원 2명도 포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대회 기간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화장실 청소에 나설 정도로 화장실 관련 민원이 적잖았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만금 잼버리 대회 준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물론 조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위급 공무원들 책임이 가장 크다. 행정안전부와 여성가족부 등 17개 중앙부처, 전북도와 민간전문가 등 40여명은 지난 7월11∼13일 행사장 안전 전반을 점검해 문제점이 지적됐는데도 보완 조치 이행을 확인하지 않았다.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일선 직원들 보고만 받고 누구 하나 나서서 사전 준비 실태를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날 대한민국 중앙, 지방공무원 수준이 궁금하다. 

잼버리 파행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미담 기사도 없지 않았다. 2000명이 넘는 스카우트 대원들이 묵었던 익산 원광대에서는 대학 직원, 학생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까지 나서 식사 준비를 도왔다. 9∼11일 3일간 대략 7000인분 식사를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새벽 3시부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현장으로 안전하게 배달까지 했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스카우트 대원들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밥값을 내주는 익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그저 국민 몫으로 남지 않으려면 잼버리 실패의 전말을 담은 ‘잼버리 백서’ 발간과 책임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P.S. 취재한 김승환 기자에 물었습니다.
 
-예산 집행 문제 등 잼버리 관련 취재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잼버리 대회를 유치하면서 지역, 조직위, 참여기업, 공무원이 이득은 최대한 챙기려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제대로 다하지 못해서 생긴 파행이라고 본다. 잼버리 유치를 명목으로 (조직위, 지자체 등이)추경까지 편성하면서 관련 예산을 엄청난 규모로 확보했지만 책임은 다하지 못해 사실상 행사는 실패한 결과가 됐다. 공무원 포상과 관련한 취재를 했는데 마찬가지다. 잼버리 시설 설비 명목으로 공무원들이 포상이라는 이득부터 먼저 챙겼다.” 
 
-당초 새로 매립해야하는 펄밭을 야영장 부지로 삼은 게 문제 같은데.
 
“맞다. 지역 환경단체에서도 두 군데 대안 부지를 제안하면서 해창 갯벌 매립에 반대했는데 전북도에서도, 여가부에서도 그대로 진행했다. 환경단체가 대안으로 제안한 부지는 (잼버리 개최지인)해창 갯벌보다 공사 기간도 짧고 안정적인 야영장 운영이 용이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전북도가 잼버리 유치를 명목으로 예산(농지관리기금)을 지원받아 갯벌 추가 매립하는 데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여가부도 공사가 진척됐다는 이유로 ‘펄밭 부지’를 용인했다.”
 
-예산 실집행률이 미진하는 등 예산 관리에 구멍이 많더라. 
 
“부지 매립이 늦어지면서 생긴 문제들이다. 해창 갯벌 매립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기반 시설 설비가 늦어지고,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점검을 하는 프레잼버리를 못하는 등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관련기사> 
 
잼버리 ‘준비 부족’ 알고도 손놓았다 [‘잼버리 파행’ 책임규명]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814513208
 
[단독] 새만금 잼버리, 첫 사업비 산정부터 ‘주먹구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815509353
 
위생 엉망 잼버리 화장실… 전북도는 ‘어이없는 포상’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816514525
 
[단독] ‘폭염 땐 비상대피’·‘입국자 명단 확인’ 매뉴얼 안 지켰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81751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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