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품귀 환율 폭등… 슈퍼컴 6호기 `사면초가`

팽동현 2023. 8. 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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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열풍에 GPU값 올라
2929억 규모 사업 2차례 유찰
5호기도 한계치 도달 '첩첩산중'
KISTI "메모리 줄여 비용절감"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이 지난 18일 광화문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팽동현 기자

슈퍼컴퓨터 6호기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 때와 달리 생성형 AI(인공지능) 열풍으로 GPU(그래픽처리장치) 품귀현상이 빚어진 데다 환율마저 치솟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특단의 조치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는 지난 18일 슈퍼컴퓨터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KISTI는 국가 슈퍼컴퓨터 운영기관으로, 1988년 1호기부터 2018년 5호기까지 도입·활용을 담당하고 있다.

2929억원 규모의 국가슈퍼컴 6호기 구축·운영사업은 지난 5월말 본 공고 후 이달 8일까지 두 차례 유찰됐다. 앞서 5호기를 담당했던 HPE(크레이), 기상청 사업을 맡았던 레노버, 프랑스 아토스의 삼파전이 예상됐으나 아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업 자체가 수주업체에 주요 실적이 되는 만큼 비용 효율성이 강제되는 측면도 있어 3~5호기 때도 유찰은 있었다. 하지만 김재수 KISTI 원장은 이번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5호기는 가동률 99.4%, 사용률 78.2%, 평균 대기시간이 5시간을 넘는 등 한계에 다다랐다. 구축 당시 세계 11위였던 성능도 49위로 밀린 상태다. 6호기 도입이 시급함에도 사업이 지연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시장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6호기는 600PF(페타플롭스·초당 1000조번 연산)급으로 CPU(중앙처리장치) 위주였던 5호기(25.7PF)보다 23배 이상이자 세계 10위 수준의 이론성능을 목표호 한다. 또 CPU와 GPU를 1대 2 비율로 구성하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챗GPT 등장으로 생성형AI가 떠오르면서 GPU 가격이 폭등하고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AI학습용으로 많이 쓰이는 엔비디아 'A100'의 경우 TSMC 한 곳에서 생산되며 당장 주문해도 52주 정도 후에나 받을 수 있을 정도다. 6호기에 쓰일 GPU로 특정 업체나 모델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엔비디아뿐 아니라 AMD도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가정책을 펼치는 건 마찬가지다. 입찰 후보인 HPC(고성능컴퓨팅) 제조업체들의 가격 부담이 배로 뛴 셈이다.

그렇다고 CPU·GPU 구성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6호기는 성능의 98%가 GPU를 통해 구현되며, GPU 가속이 필요한 AI·소재·바이오 분야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연 18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전기요금도 관건이다. 기존처럼 CPU 비중을 높이면 400억~500억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

이식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2년 전 예타 때는 GPU 시장가를 반영해 안정적으로 책정했는데 시장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급변해 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예타를 거친 만큼 사업 예산과 핵심 성능요건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 정부 협의를 거쳐 내용을 변경해 재추진하면 6개월~1년 이상 늦어져 그만큼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CPU·GPU를 제외하고 메모리·스토리지 등 성능에 영향이 덜 가는 부분에서 비용절감 여지가 있다. 이런 규격이 조정된 RFP (제안요청서) 내용을 과기정통부가 검토 중이고 곧 조달청을 통해 새 공고가 나갈 것"이라며 "구축·시험 기간을 고려하면당초 목표였던 내년 가동은 어려워졌고, 지금부터 잘 진행되면 2025년 초 정식 가동을 예상한다"고 덧붙였다.그럼에도 업계와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 입찰 후보 업체 관계자는 "수년간 준비한 사업이고 그 상징성 때문에도 여전히 참여 의사가 있다. KISTI의 의지와 노력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GPU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환율까지 급등하다 보니 당초 계획과 현재 시장 간의 격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KISTI가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사업예산이 늘어나는 게 가장 좋지만, 안 될 경우 목표성능 등 핵심요건 하향 조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KISTI는 내년 과학기술 예산의 대폭 삭감이 예상되는 가운데도 6호기 도입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김 원장은 "기술패권 경쟁 속에 슈퍼컴퓨터 등 인프라도 규모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GPU 품귀와 환율 급등까지 삼중고를 겪는 상황이지만, 국내 연구자들이 빨리 활용할 수 있도록 6호기 구축·가동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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