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문] ‘외계+인’ ‘유령’에 ‘더 문’까지 폭망… ‘영화 명가’ CJ에 무슨 일이?
편집자주
‘수ㆍ소ㆍ문’은 ‘수상하고 소소한 문화 뒷얘기’의 줄임 말로 우리가 외면하거나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문화계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국내 역대 최고 흥행 1, 2위 영화 ‘명량’(2014)과 ‘극한직업’(2019)을 내놓은 곳입니다. 오스카 4관왕 신화를 쓴 ‘기생충’(2019)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CJ ENM은 대중문화, 특히 명가로 소문난 곳입니다. 1995년 미국 드림웍스SKG(당대 미국 엔터테인먼트 실력자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설립한 회사) 투자를 시작으로 영화 사업을 시작한 이래 30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 큰손으로 여겨졌던 회사입니다.
하지만 요즘 CJ ENM 앞에는 빨간불이 켜진 형국입니다. 마케팅비 등 개봉 비용을 제외한 제작비만 286억 원이 들어간 ‘더 문’이 흥행 참패를 했기 때문입니다. 19일까지 관객은 5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불과합니다. 650만 명 정도는 극장에서 봐야 본전을 찾을 영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흥행 성적표입니다. ‘신과함께’ 시리즈 2편으로 각각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김용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기에 결과가 더욱 충격적입니다.
①쌍천만 감독도 무기력... 중급 영화도 부진
‘더 문’뿐만 아닙니다. 지난해 여름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외계+인’ 1부 역시 저조한 흥행 기록(153만 명)을 남겼습니다. 330억 원이 들어간 ‘외계+인’ 1부는 재앙적인 흥행 결과를 남겼다는 지적이 지난해 나왔는데, ‘더 문’은 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2021년 ‘방법: 재차의’(17만 명)를 시작으로 최대 대목 여름시장에서 3년 연속 패퇴하였으니 망신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외계+인’ 1부는 ‘도둑들’(2012)과 ‘암살’(2015)로 1,000만 관객을 2차례 동원했던 최동훈 감독 연출작이라 내상이 더욱 깊습니다. 국내 5명(봉준호 윤제균 이상용 감독 등)밖에 없는 ‘쌍천 만 감독’ 중 2명이 CJ ENM 영화로 큰 상처를 입고 물러난 꼴입니다. 윤제균 감독은 지난해 CJ ENM이 투자배급한 뮤지컬 영화 ‘영웅’을 선보였는데 관객 327만 명 동원에 그쳤습니다. 손익분기점에 겨우 다다른 정도 흥행이라 체면이 구겨진 모양새입니다.
‘외계+인’ 1부와 ‘더 문’ 이외에도 흥행 실패작은 더 있습니다. 설날 연휴를 겨냥해 지난 1월 개봉한 ‘유령’은 66만 명이 봤습니다. 제작비 137억 원 영화로는 큰 손실이 불가피한 흥행 성적이었습니다. 2월 선보인 ‘카운트’는 39만 명을 모았습니다. 제작비가 고작(?) 50억 원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박찬욱)과 남자배우상(송강호)을 각각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헤어질 결심’(189만 명)과 ‘브로커’(126만 명)도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봤습니다. 대작이든 중급 영화이든 흥행에서 성과를 내기는커녕 손실만 줄줄이 보고 있으니 탄식이 나올 만도 합니다. 중심타선이건 하위타선이건 빈공으로 득점은 못 내고 대량실점만 하는 야구팀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②코로나19 이전 기획했다고 하지만
최근 2년 사이 CJ ENM 이름을 달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있기는 합니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조준해 선보인 ‘공조2: 인터내셔날’이 유일합니다. 698만 명이 봤습니다. 하지만 ‘영화 명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CJ ENM 영화들은 부진을 왜 면치 못할까요. CJ ENM이 최근 선보이는 영화들은 코로나19 발생 이전 기획된 영화들입니다. ‘외계+인’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 직후 촬영에 들어갔고, ‘더 문’은 2021년 크랭크인했습니다. 코로나19로 급변한 관객들 취향과 새롭게 형성된 관람 패턴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이는 CJ ENM 영화들뿐 아니라 요즘 개봉하는 대부분 영화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최근 만난 한 흥행 감독은 “1970년 전후 출생 동료 감독들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흥행 결과가 충격적이라고 했습니다.
CJ ENM만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영화계에서는 스타 배우· 스타 감독 위주 투자와 전반적인 제작 관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CJ ENM은 업계 최강자 위치에 있다 보니 스타 감독, 유명 배우들과 협업하기 유리합니다. 막강한 자본력이 한몫하기도 합니다(CJ ENM은 코로나19 기간 박찬욱 감독이 설립한 모호필름, 김용화 감독의 블라드스튜디오, 강제규 감독 등의 엠메이커스 등을 각기 수백억 원을 들여 인수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흥행 감독, 유명 배우와 작업하면서 역설적으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연출료와 출연료가 큰 데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대작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워낙 남다른 성취를 이룬 이들이니까요. 제작비가 껑충 뛸 수밖에 없는데, CJ ENM에서 흥행 감독의 연출 방식에 일일이 관여하고 강한 의견을 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CJ ENM이 너무 안전한 기획만 추구하다 오히려 큰 위험에 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③“투자 결정 과정 과감히 바꿔야”
엔데믹 이후 극장가에서 흥행에 성공한 ‘언더독’ 영화들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난해 늦여름 흥행 반란을 일으켰던 ‘육사오’(198만 명)는 신생 투자배급사 씨나몬홈초이스 작품입니다. 연출 데뷔작 ‘날아라 허동구’(2007) 이후 메가폰을 놓고 있었던 박규태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고경표 이이경 음문석 등이 주연했는데, 톱스타라는 수식을 붙일 만한 배우들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332만 명이 본 ‘올빼미’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유해진과 류준열을 주연으로 내세웠으나 외관은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50세 늦깎이 신인 안태진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투자배급사는 NEW였습니다.
‘육사오’와 ‘올빼미’의 흥행은 새로운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가 반영된 면이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관객 대다수는 더 이상 흥행 감독의 이름과 제작 규모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이 급변했듯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 영화평론가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CJ ENM이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을 과감히 바꾸고 새로운 영화와 신진 영화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옛 영광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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