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열심히 산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화제의 책]
“그동안 나는 수고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안의 문구로 이만한 표현도 없을 듯하다. ‘그동안 나는 수고하셨습니다’(전혜성 지음 / 싱긋)의 저자도 그런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는 사회생활 20년의 베테랑 고경력자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세 바퀴는 돌릴 수 있는 시간 동안 저자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완벽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본부장의 자리에 오르고도 실무와 관리를 병행하는 열정적인 회사원이었다. 도시설계 엔지니어, 카피라이터, 광고 기획자, 매체 플래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웹서비스 기획자, 영국 유학생, 브랜드 마케팅 & 광고 캠페인 총괄 디렉터까지 20여 년 동안 여러 잡 타이틀을 가졌다. 탁월한 아이디어와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승승장구했다.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던 일상이 부서 해체로 한순간에 붕괴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원치 않던 퇴사를 겪고 나니 오랜 경력은 마치 물 먹은 솜처럼 부담스러운 짐이 돼 재취업 앞에서 발목을 잡는 골칫덩이가 되고 말았다.
그에게 일은 지긋지긋하지만 재미와 보람이 있는 것이었고, 직장은 얻는 것이 많은 곳이었다.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좋은 타이틀, 높은 연봉, 멋진 동료, 자신감과 자존감 등 눈에 보이는 것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많은 것을 직장에서 얻었다. 칭찬과 부러움, 질투 같은 인정까지도. 그리고 전부를 잃었다.
그렇게 자괴감과 상실감, 허탈함과 배신감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저자는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을 펼치며 ‘백수예찬론’을 설파한다. 월요병도 없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는 여유가 가득한 삶이 좋단다. 물론 핸드폰을 두드리며 하루를 홀랑 보내기도 하고, 대낮에 시내를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찾아온 잠깐의 공백기를 자신만의 시간으로 채워 가는 중이다. 청춘과 노년에 대한 독특하고 기발한 감상, 여자 후배들을 향한 인생 선배의 애틋한 위로도 ‘그동안 나는 수고하셨습니다’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직접 겪고 부딪친 마흔 중반의 백수생활. 좌절하기 쉬운 타의적 퇴사 앞에서 저자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기를,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살피기를 제안한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열심은 해 봤으니 알잖아. ‘열심’은 ‘잘’로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을 잘 알잖아. 열심의 방향을 잡아야 해. 남, 직장이 아니라 나, 나에게로 열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 열심의 정도, 열심의 업그레이드, 그 열심으로 얻은 밑천은 소중하고 값진 것이지. 이제 그 밑천을 가지고 나에게 집중하기로 해. 이것이 제대로 ‘잘’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일 거야”라고….
첫번째 파트 ‘일상유감’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직장생활을 돌아보고, 일에 몰두해 깨닫지 못했던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통감하거나 홀로 사는 여성의 고충에 대해 털어놓는다. 두번째 파트 ‘퇴사 후유증’에선 백수생활의 도입부에서 그간의 노하우를 살린 재취업 도전과 채용을 고사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퇴사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습관과 은퇴의 의미 등을 생각해 본다.
이어지는 ‘백수생활 절찬 영업 중’에서는 말 그대로 백수생활의 특장점을 하나씩 꼽으며, 직장을 그만두고 달라진 생활 리듬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급 백수 되는 법’도 공개한다. 마지막 파트 ‘삶의 잔기술’에서는 긴 사회생활이 가르쳐 준 인간관계에서의 지혜를 풀어놓으며, 독자들이 낭만과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다만 ‘인생은 이거다’라는 답은 그 누구도 얻지 못할 숙제로 남겨둔다.
이 같은 저자의 위트 넘치는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들은 그동안 수고한 자신의 어깨를 절로 토닥이게 될지도 모른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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