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잼버리 광고
기록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
현실 외면한 광고처럼 흐릿해
우연히 만들어낸 의도한 결과
# 얼마전 늦은 퇴근시간, 지친 몸을 핸들에 기댄 채 신호를 기다립니다.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저 멀리 전광판에서 광고가 나옵니다. 생각 없이 눈길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잼버리 광고였습니다.
# 광고 속 자막은 쉴 새 없이 흘러갑니다.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전세계 150여 개국에서 5만명이 모이는 세계 최고의 축제!!(꽈광) 새만금에 모입니다!!(두둥) 전 세계인의 축제, 지금 새만금에서 시작합니다!!!(짜짜잔)
# 광고 속에선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유토피아 같습니다. 잼버리의 결과가 어떤지 알고 있는 지금 보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모습입니다.
# 사실 아직까지 잼버리 광고가 나온다는 사실이 어이없었습니다. 속이 참 상하더군요. 신호가 바뀌기 전, 그 황당한 광고를 담기 위해 서둘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급하게 찍다 보니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사진이 나왔습니다. 다시 찍으려 했을 땐 이미 광고가 지나간 후였습니다.
# 제대로 찍지 못한 사진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되레 흐릿하게 찍힌 게 꼴 보기 싫은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좋아'란 말을 되뇝니다. 누군가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꼴 보기 싫어 일부러 흐리게 찍었다"고 우겨야겠습니다. 우연히 만들어낸 의도한 결과일지 모르겠네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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