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뇌파계 사용, 의사가 진맥 짚고 침·뜸 치료하는 것과 같은 꼴"

18일 대법원 판결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대한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한의사 뇌파계 사용'이 합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의학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판결 당일 의사협회가 "경악과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데 이어 이튿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고 나섰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뇌파계를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된 의료기기로 인정해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대법원의 판결에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이는 국민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대법원은 18일 뇌파계를 사용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한의사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보건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로, 뇌종양·간질 등 뇌와 관련된 질환을 진단하거나 뇌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한의사 A씨는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판결을 보면 마치 의사들이 뇌파계를 이용해 치매나 파킨슨병을 진단해온 것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뇌파계는 치매나 파킨슨병의 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치매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이다. 치매의 중등도를 평가하기 위해 뇌 MRI로 해마 등의 위축을 관찰하고, 신경인지기능검사를 통해 심각도를 판단한다.

파킨슨병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환자의 병력과 운동 증상 관찰이다. 특히 파킨슨병 진단은 고도의 전문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이 필요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병이 의심되면 신경과 전문의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의학에서 진단은 결국 치료로 이어진다"며 "뇌파계가 비침습적이고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한의사에게 허용해도 된다는 대법원의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사들이 진맥으로 진단하고, 침이나 뜸을 이용해 치료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느냐"면서 "이번 판결로 한의사들은 스스로 한의학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무시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번 판결은 한의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비상식적인 판결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의사 A씨는 지난 2010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복지부 등으로부터 자격정치 처분을 받자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뇌파계가 한방의료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복지부 손을 들어줬으나 항소심은 인체 위험성이 크지 않다는 점 등으로 처분이 부당하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뇌파계는 인체에 위험성이 크지 않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없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