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묻지마 살인’…어떻게 ‘괴물’들을 막을 수 있을까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게임에서 진 뒤 갑자기 살의를 느껴서’
묻지마 범인들의 살해 동기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사소하고 기괴하다.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이 어렵다. 실제로 범인을 잡고 보니 사이코패스나 정신질환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자의 절반 정도는 정신 병력이 없었다.(지난주 기사 ‘연이은 ‘묻지마 칼부림’ 그들은 도대체 왜 세상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나’ 참고)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 치료에 국가적 개입을 강화하더라도 나머지 묻지마 범죄의 절반은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징벌적 대책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범죄를 최대한 예방해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치는 이 ‘괴물’들이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예방 정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학업 중단·무직…온라인에서 편협성 키워
묻지마 범죄자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혼자가 상당수고, 결혼했더라도 별거나 이혼 등으로 정상적 결혼 생활을 이어 가는 경우가 드물다. 또 학업을 중단했거나, 직업이 없어 뚜렷한 일과 없이 혼자 지낸다. 신림동 흉기 난동 피의자 조선(33)도 지난 8개월 간 집에서 게임만 하고 게임 동영상만 보며 지냈다고 한다. 대인관계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왜곡되고 편협한 생각을 갖기 쉬운 환경이다.
2017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전국 14개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묻지마 범죄자 60명 가운데 무직은 66.7%(40명)였고, 배우자가 없는 사람은 65%(39명)였다. 2017년 ‘한국범죄학’ 학회지에 실린 ‘묻지마 범죄자의 심리특성과 피해의식’ 연구에 따르면, 연구 대상인 묻지마 범죄자 25명 가운데 11명은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저학력자였다.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보면서 분노와 적개심이 커질 수 있다. 반사회적 내용의 특정 커뮤니티 글이나 유튜브 영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콘텐츠가 이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창의 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하면서 여기서 본 것이 실제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해석하는 비(非)사회화 된 외톨이가 된다”며 “예를 들어, 특정 커뮤니티 사이트만 들락거리며 ‘남혐(남성 혐오)’ 또는 ‘여혐(여성 혐오)’ 게시물을 보면서 이 세상 남자들은 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거나, 이 세상 여자들이 다 된장녀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사고한다”고 설명했다.
전방위적 피해의식…이성의 무시도 한 몫
지난주 기사에서 살펴봤던 묻지마 범죄자의 하위 유형 3가지 △정신질환 △현실불만 △만성분노 모두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은 ‘지나친 피해의식’이다. 사회에 부적응하고 낙오하면서 좌절감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때 자기 잘못을 반추하는 사고능력이 결여된 이들은 남 탓을 하며 피해의식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자신은 피해자고 세상이 가해자라고 생각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무차별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낙오자라는 피해의식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 중에 이성 문제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보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에서 총기난사범 심리분석 전문가로 유명한 피터 랭먼 박사는 10대와 20대 총기난사범의 일기, 수사 자료, 기사, 주변인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2019년 미국의 ‘범죄학과 공공 정책’ 학회지에 ‘절박한 정체성; 집단 폭력 가해자에 대한 생물·심리·사회적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다.
연구에서 분석한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성 교제 경험이 없는 남성이라는 점이다. 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컸다. 이들의 일기에는 이성에게 한두 번 거절 당한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무시당하고 거절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랭먼 박사는 “범인들은 남성적 정체성이 무너졌다고 느꼈고, 총기를 구해 ‘강한 남자’가 되려고 했다”며 “상처 입고 병든 정체성을 치유하려는 방법으로 무기를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7년 미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당시 23세)도 어렸을 때부터 폐렴, 백일해, 심장질병 등을 앓아 왜소하고 몸이 약했다. 체육관에서 그가 운동하는 모습이 가끔 목격됐다고는 하나, 부검 결과에서는 ‘23세 남성치고 근육양이 부족하다’는 기록이 있다. 조 씨는 범행 전 여성 3명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캠퍼스 경찰에 신고당한 경력도 있다. 심지어 조 씨는 돈을 지불한 성매매 여성에게조차 거절당했다고 알려졌다.
하찮은 자존감, 무기로 극복 시도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가학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었던 권력(폭력)을 가짐으로써 하찮고 벌레 같았던 자신을 권력자로 변화시켜 자기 결핍을 보상받으려고 시도한다고 했다. 이들에겐 무기가 곧 권력이다.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매우 잘못된 보상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조승희는 범행 전 촬영한 영상에서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백성을 인도한다”면서 자기가 큰 힘을 가지게 됐다고 믿었다. 또 다른 미국의 총기난사범인 엘리엇 로저(당시 22세)는 앞서 썼던 일기에서 자신을 ‘키스도 못 해본 숫총각’이라고 비하했는데, 총기를 구한 뒤에는 ‘우두머리 남성(alpha male)’이라고 묘사했다. 고교 총기난사범인 에릭 휴스턴(당시 20세)은 범행 전날 영화 ‘터미네이터’를 23번이나 돌려봤다. 터미네이터처럼 강한 존재를 꿈꾸면서 남을 해치는 잘못된 환상에 젖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들은 남을 잔인하게 해치는 가학적인 생각에 집착하면서 자기가 권력을 가진 상상을 한다. 랭먼 박사는 “권력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무기에 집착하는 것은 뿌리 깊은 좌절감을 보상받으려는 것”이라며 “가학적인 상상 속에서 역시 자신이 권력자가 될 수 있기에 이런 생각에 병적으로 사로 잡힌다”고 설명했다.
범행 계획 사전 유출? “일부는 말려달라는 신호일 수도”
실제 범행 의도가 있는 범인들이 범행 직전에 스스로 계획을 사전 유출했다면, 관심 받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실패자로 살았지만, 무기로 힘을 얻었으니 자기를 과시하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단순한 자기과시가 아닐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이 이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범행 계획을 일부러 유출해 자신을 말려주길 바라는 도움 요청 사인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질리안 피터슨 미 햄라인대 범죄학-형사사법학과 교수 연구팀은 1966년부터 2019년까지 공공장소에서 4명 이상 살해한 미 총기난사범 170명을 분석했다. 범인의 일기, 유서, SNS나 블로그 게시글, 영상, 이메일, 학교-의료기관 등의 기록, 경찰 조사 결과 등을 참고했다. 170명 가운데 사전에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 경우는 46.5%(79명)였다.
이들 가운데 나이가 20대 미만으로 어리거나, 심리상담을 받길 희망했거나,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범행 계획을 사전 노출한 경우가 많았다. 이와 반대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는 범행 계획을 사전 유출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연구진은 “이런 경우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으로 볼 수도 있다”며 “만약 이런 범행 예고에 정학, 퇴학, 형사 고발 등 단순 처벌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자살이나 범행 충동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형사처벌뿐 아니라 자살 예방 등 위기 개입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범죄 단서 행동 보일 때부터 관리해야
국내에서도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에 살인 예고 글이 400건 가까이 올라와 많은 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검거된 이들 절반 정도가 장난삼아 글을 올린 10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일부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를 알리는 도움 요청 사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힘들면 힘들다고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이들은 의사소통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방법을 택하기 쉽다. 경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윤상연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랜 시간 쌓인 좌절감으로 인해 범행 전 이미 여러 번 폭력 조짐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박탈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더 큰 피해의식과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자들의 특성을 파악해 작은 조짐들에 주목하고 관리해야 한다. 학업 중단 뒤 무직 상태로 혼자 살며 크고 작은 폭력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거나, 온라인에 협박 글을 올리는 것도 신호가 될 수 있다. 윤 교수는 “아직 범죄가 발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람이 어디까지 문제행동을 저지를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면서도 “전문가들이 나서서 식별하고, 지역사회에서는 지속적인 관리 제도를 만드는게 필요하다”고 했다. 또 “지속된 실패와 좌절감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무관심한다면 묻지마 범죄처럼 언젠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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