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네”…인천공항서 열린 ‘작은 잼버리’의 큰 감동 [방방콕콕]
잠실 롯데호텔 31개 면적 숙소 뚝딱 마련하고
2000명분 저녁식사 위해 매장 24시간 운영
1만5천여명 대원들, 공항에 체류하며 화합
공항 근무자에 뱃지·음료 주며 “감사해요”
사후 평가는 박한 편이다. 폭염·침수·벌레물림 대비가 미흡했고, 지저분한 화장실 등 매끄럽지 못한 대회 운영으로 영국·미국이 캠프장을 조기 철수하는 등 대회 내내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때마침 방향을 틀어 한반도에 상륙한 6호 태풍 카눈은 전 대원 조기 퇴영에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고 마냥 아쉬움만 남겼던 것은 아니다. 폭염과 비위생, 태풍에 지친 잼버리 대원들이 거처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과 서비스를 만나며 새만금의 불편한 기억을 치유한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도 그랬다. 기자는 요 며칠 새 인천공항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그러나 국민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잼버리 관련 일련의 상황을 ‘인천공항 속 작은 잼버리’로 부르고 싶다.
SOS 내용은 2400명의 잼버리 대원들이 각국 연맹의 예산 부족으로 인해 공항에서 야간 체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었다. 2010년 유럽 화산폭발 때 200명가량의 승객이 공항에서 노숙한 적은 있으나 이처럼 대규모 인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여름 성수기와 맞물리면서 때마침 인천공항 이용객은 하루 평균 18만여명에 달했다. 잼버리 대원들의 도착 예정 시간은 연락 다음날인 11일 밤 10시.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잼버리 대원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숙영지를 찾을 것을 지시했다.
인천공항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제1·2여객터미널에 있는 제1·2교통센터와 인천공항공사 사옥 앞에 있는 배드민턴 체육관(에어플렉스) 을 숙영지로 정했다. 3곳의 면적은 약 1만6500㎡(약 5000평)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482실) 기준 31개 분량에 달한다.
장소는 정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문제였다. 대량의 보온 단열 매트가 필요했다. 수도권 주요 자재 상점은 11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리는 K팝 라이브 콘서트에 동일 자재를 납품해 여력이 없다고 했다.
인천공항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매트 생산 공장에 직접 연락했다. 공장 대표는 “공장 가동 시간이 정해져 있어 단 하루 만에 생산은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모두가 포기할 무렵 10일 밤 공장 대표가 결단을 내렸다. 철야 생산을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온 단열 매트는 11일 오후 2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은 공사·자회사 직원 60명을 동원해 11일 밤 8시까지 매트를 촘촘히 까는 데 성공했다. 매트 위에 깔 수 있는 캠핑 매트 등을 추가로 주문해 나눠주고, 실내 온도를 24도에 맞춰 온열 질환 피해가 없도록 배려했다. 이후 인천공항이 마련한 3개 숙영지는 각국 스카우트연맹의 체류 요청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11일 오후 5시 또다시 급한 요청이 도달했다. K팝 콘서트 관람 후 인천공항에 체류할 대원 2000명에게 줄 저녁 도시락이 기상악화 등의 문제로 취소돼 현장 조리식품을 제공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공항 여객이 늘어나는 금요일 오후인 데다, 이미 2~3일 전 주말에 사용할 물량을 발주한 상태라 물량 확보가 쉽지 않았다.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 있는 2개 매장(버거킹·KFC)에 문의하니 평소 주말 판매량이 800명 분이라 단 몇 시간에 2000명분의 음식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K팝 콘서트를 본 잼버리 대원들이 공항에 도착하기 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6시간. 인천공항은 사업자(CJ 푸드빌), 매장과 긴급회의를 해 교통센터 내 2개 매장을 24시간 열기로 결정했다.
음식을 만드는데 부족한 인력은 인천 뿐만 아니라 동두천·의정부 등 원거리 매장, 본사에서 지원받았다. 부족한 식자재 물량은 각 매장 본사와 인천지역 매장, 물류센터에서 도움을 줬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2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콘서트를 즐긴 대원들은 체온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따뜻한 햄버거를 맛있게 먹으며 피로를 잊었다.
한국전통문화센터는 한복 체험, 한국 전통 음악 감상, 전통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안내로봇 에어스타를 만난 대원들은 길 안내 기능을 시험삼아 해보거나 셀카를 찍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인천공항에서 잠시 체류하는 동안 대원들은 곳곳에서 잼버리 정신을 발휘하고,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했다.
일부 대원은 비상약·우산·방석·생수·과일 등 개인 물품을 다른 나라 대원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인천공항에 전달했다. 인천공항은 이를 체류 중인 다른 대원들에게 나눠줘 ‘함께 쓰는 기쁨’이 빛났다.
잼버리 배지를 공항 근무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맙다. 잊지 않겠다”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11일 제2여객터미널 제2교통센터에서 묵은 일본 잼버리 대원들은 인천공항 직원들이 식권·물·과자·담요 등을 나눠주며 “우리도 함께 밤을 샌다”고 말하자 매우 미안해 하며 음료 2박스를 건네기도 했다.
지난 17일엔 인천공항 관계자들이 터미널 곳곳에 설치한 잼버리 대원 응원 배너를 철거하자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대원들이 나타나 즉석에서 무료 증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볼리비아 대원은 “한국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했다.
류진형 인천공항공사 운영본부장은 “새만금을 떠난 4만3000여명의 스카우트 대원 가운데 80%인 3만4000여명이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1만5000명이 항공 스케줄과 각국 연맹의 예산 부족으로 인해 공항에서 체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시간이 촉박했지만 내일 처럼 나서준 덕분에 큰 차질 없이 대원들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기념품을 대원들에게 나눠준 김범호 인천공항공사 미래사업본부장은 “하루 최대 수천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공항 내 긴급 숙영지에서 생활하며 즐겁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면서 “특히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출국할 수 있도록 인천공항이 미력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 보람된다”고 말했다.
세르비아 대원은 출국 전 “태풍으로 새만금에서 철수하게 돼 아쉬웠다”면서 “기후변화에 대해 전 세계가 더욱 고민·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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