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 미선씨가 힘들게 찾아주고 희열 느끼는 집은 어떤 곳?
지난 11일로 올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원서 접수가 마감됐다.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릴 시험을 앞두고, 응시자들은 지금 마무리 공부에 한창 애쓸 터. 미선(가명)씨는 2년 전에 먼저 합격했다. 본업과 병행하느라 네번째 도전에서였다.
“혼자 인터넷 강의 들으면서 공부했는데, 법이나 경제학 용어가 실생활에서 접하던 게 아니라 어려웠어요. 시험도 중독 같아요. 자꾸 아는 걸 틀리니까 다음에는 잘할 거라고 될 때까지 계속했던 거죠.”
나이 쉰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찾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편집디자이너였는데, 애 낳고부터는 쭉 프리랜서로 일했어요. 이 일도 창조적인 일인데, 나이를 먹다 보니까 젊은 감각이 자꾸 떨어져요. 오래 하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요. 내가 일한 만큼 보상도 못 받았는데, 그나마도 보수가 제때제때 안 들어오고 많이 물려 있어 힘들었죠. 그런데도 의뢰처에서 다른 일을 또 맡기면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물린 돈을 못 받을까 봐요. 그렇게 계속 다람쥐 쳇바퀴 식으로 돌아가니까, 안 되겠다 싶었죠.”
격주 토요일 휴무 ‘쟁취’
미선씨는 그간 해온 일을 정리하고 올봄부터 공인중개사로 나섰다. ‘개공’(개업 공인중개사) 밑에서 일하는 ‘소공’(소속 공인중개사)이 되어,중개사무소 벽에 자신의 자격증을 걸었다. 보통 실장으로 불린다. 중개보조원도 한명 근무했는데, 보조원은 자격증이 없어 계약서는 쓰지 못한다.
“이곳은 기본급이 없어요. 프리랜서로 내가 따낸 계약의 수수료를 대표와 나눠요. 처음 두달 수습 기간은 내가 3, 대표가 7을 갖고, 그다음부터는4대 6으로 내 몫이 4예요. 서울은 5 대 5로 한다고 들었어요. 7 대 3으로 소공이 7인 곳은 마케팅비나 운영비를 소공이 분담하는 식이죠. 직원으로 고용돼 월급을 받기도 하고요.”
첫달은 성사된 계약이 한건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했을까? 기본급 없는 프리랜서 계약이니 조금은 자유롭고 눈치 안 보겠다 싶었는데, 실상은 고정직원 이상이었다. 아침 9시 반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했고, 더러 늦게 올 수밖에 없는 손님을 배려해 그 시각을 넘겼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격주 6일을 근무하고도, 약속한 손님이 있으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했다. 지역별 중개사 모임 가입 업체(회원제)는 일요일에 쉬고, 토요일도 격주로 쉬었지만, 미선씨가 일하는 지역은 회원제가 아니라서 근무 제한이 없다. 격주 토요일 휴무도 미선씨가 따냈다.
“사무실이 대로변에 있어 ‘워킹 손님’이 많아요. 미리 연락 없이 지나다 들어오는 분을 ‘워킹’이라고 해요. 수수료 비율이 큰 매매나 상가는 처음부터 대표 몫이고, 나는 싼 월세 찾는 손님을 주로 맡았는데, 어떤 날은 한 손님한테 열두군데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우리 물건이 없으면 다른 부동산 물건도 보여줘요. ‘공동 중개’라고 ‘사람 있으면 붙이라’고 서로 그러거든요. 더운 날에 골목골목을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진이 다 빠지더라고요. 이 일 시작하고 잘 때 쥐가 나서 자주 깼어요.”
손님이 없으면 컴퓨터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전·월세 매물을 찍은 사진과 현장에서 파악한 자세한 정보를 글로 정리해 올린다. 매물 사이트에 접속해 물건을 확인하느라 편집디자이너 때보다 눈이 더 나빠졌다. 중개사의 업무는 영업이니 틈틈이 명함을 들고 나가 집집이 대문이나 우편함에 명함을 꽂아두거나 붙여둔다. 말을 거는 낯선 집주인을 만나면 호감이 가게 설명해주고, 낯익은 임대인이 말을 건네면 한참 말벗이 되어준다. 대표는 이마저도 근무 시간 말고 출근 전이나 퇴근길에 하라고….
“실무가 시험공부보다 더 어렵다고들 얘기하는데 100퍼센트 공감해요.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요. 편집디자이너로 일할 땐 내가 영업을 안 해도 됐지만, 중개 업무는 영업이잖아요. 근데 영업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더 힘들었어요. 대표는 이제 막 배우는 나한테 ‘너 때문에 돈을 못 번다’고, 인신공격이라고 해야 하나? 가스라이팅이랄까요? 날마다 사람을 평가하며 말을 심하게 했어요. 어느 날 내 자존감이 툭 떨어졌던 것 같아요.”
미선씨는 석달을 채우고 일하던 곳을 나왔다. 자신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다. 잠시 숨결을 고르고 다시 중개 현장으로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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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에 30’ 좋은 집 찾아주고 희열
“기분 좋은 일도 있어요. 사람들에게 집을 찾아주는 일이 나한테도 맞고요. 좋은 집을 찾아주면 무척 기뻐하세요. 이래서 중개사들이 힘들어도 이 일을 하는구나 했죠. 의뢰인 중에는 되게 안쓰러운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한테 좀 나은 집을 찾아주면 흐뭇하죠.”
혼자 사는 할머니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집을 부탁했다. 미선씨는 한달 넘게 공을 들여 끝내 집을 찾아주었다. 공동 중개로 ‘단타’(집주인이나 세입자 한쪽에서만 받는) 수수료 12만원. 대표가 7을 가져가니 미선씨에게는 3만6천원!
“돈을 따지면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양타’여도 다들 안 받을 거예요. 대표도 돈 되는 다른 거 하라고 했으니까요. 근데 자꾸 마음이 쓰였어요.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를 보니 엄마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계속 매물을 찾고 친한 부동산에도 얘기해뒀죠. 집이 나오는 족족 모시고 갔는데 ‘이쪽 동네가 마음에 안 들어. 저쪽으로 구해줘’라거나, ‘이 집은 어두워’라며 번번이 퇴짜를 놓아요. 내 보기에는 다 괜찮았는데. 한달 넘어서 마지막 집을 보더니 좋으시대요. 내가 봐도 좀 푸근한 집이었어요. 그때 보람이 컸어요. 그래서 나는 이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돈 때문에 하는 일은 금방 싫증 내고 그럴 텐데, 돈을 떠나서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알맞은 집을 찾아주는 보람을 느낀다면 오래가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은 개업해도 그 마음 그대로겠냐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미선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마음까지 싹 바꿔” 돈을 벌기보다는, 일하고 나서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다정한 이웃과 만나고 싶다.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겨 “인간관계가 축소되고 끊어지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그 마음이, 보증금 200만~300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짜리 집을 찾는 이들에게 보여줄 집이 반지하나 옥탑방밖에 없었지만, 발품을 더 팔아 가능하면 다른 집을 찾아주려 한 게 아닐까.
“집은 사람에게 안식처예요. 우리를 안아주는 집은 금액과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비싸다, 안 비싸다, 이거는 그냥 통상적인 우리 눈높이지, 지금 집을 찾는 그분한테는 남 눈에는 진짜 하잘것없는 집이어도 1억, 10억, 20억짜리 부럽잖은 그런 집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는 그런 집을 찾아주고 싶어요. 포근하고 아늑한 집, 건강하게 치유하는 집을요. 그 사람에게 필요하고 어울리는 집을요.”
미선씨를 만난 다음 날, 그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손님이 거래 성사는 안 됐는데 너무 감사했다고 전화가 왔네요. 먼 지방으로 가셨는데 제가 일하던 곳 지나는 길이라면서 제 얼굴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네요. 아마 이런 것 때문에 중독처럼 일하나 봅니다. 너무 기분 좋아 톡 보냅니다.”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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