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바꾼 파리시 4배 규모 토지, 새만금의 목적은 무엇이었나[황재성의 황금알]
2: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야당 총재의 합작품
3: 식량 안보용 농지에서 첨단 복합산업 도시로
4: 2차 전지 전진기지 VS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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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개발청이 누리집에 올린 새만금 사업소개문의 제목입니다. 이에 따르면 새만금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으로서, 전북 부안군과 군산시를 잇는 33.9km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통해 토지(291㎢)와 담수호(118㎢) 등 409㎢의 땅을 새로 조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이렇게 조성된 땅은 서울(면적 605.2㎢)의 3분의 2, 프랑스 파리(105.4㎢)의 4배에 해당합니다. 또 우리나라 전체 국민에게 약 9.9㎡씩 나눠줄 수 있는 규모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5174만 명)으로 조정해도 1인당 7.9㎡에 달합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사업지역 내 약 2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최첨단 도시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 도시는 ▲세계를 선도하는 그린 에너지와 신산업 허브이면서 ▲모두가 살고 싶은 명품 수변도시 ▲친환경 첨단농업 육성거점 ▲특색 있는 관광생태 중심도시 ▲세계로 열린 개방형 경제특구의 역할도 맡습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전체 사업지를 6개 권역으로 나눴습니다. ▲1권역은 산업연구(74.4㎢) ▲2권역은 복합개발(62.1㎢) ▲3권역은 관광레저(31.6㎢) ▲4권역은 배후도시(10.0㎢) ▲농업생명권역(103.6㎢) ▲기타 권역(9.3㎢) 등입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소개문에서 “새만금의 미래는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의 상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와 가능성을 주는 땅이 될 것”이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착공을 시작한 새만금에 이런 미래 청사진이 그려지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당초 2004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30년 넘게 추진되면서 정권을 거칠 때마다 공사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고 사업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새만금에서 열렸던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이하 ‘세계 잼버리’)가 부실 운영으로 큰 논란을 빚으면서 또 다른 시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계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놓고 야당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여당이 잼버리를 명분으로 전라북도가 새만금 사업 예산을 따냈다며 철저한 검증을 선언하고 나선 것입니다.
갯벌 보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또다시 커지고 있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실제로 시공사 선정 입찰이 진행 중이던 신공항(‘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새만금 사업 자체가 정치적으로 급조된 데다 역대 정권마다 사업 목표마저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빚어진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마저 내놓습니다. 새만금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또 정부의 청사진은 실현될 수 있을까요.
●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2차례 중단 등 우여곡절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새만금 간척사업’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말 극심한 가뭄과 1970년대 초 세계적인 식량 파동이 덮치자 위기 대비 차원에서 1971년 새만금 사업의 기원인 ‘옥서지구 농업개발사업계획’(이하 ‘옥서지구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어 1975년 서남해안 일대 132개 지구, 4050㎢ 규모의 간척 가능지역에 대한 자원조사를 실시하고, 이듬해인 1976년 59개 지구를 개발대상지로 선정합니다. 여기에 ‘옥서지구 계획’이 담겼고, 계획 대상지 일부에 현재의 새만금 사업지가 포함됩니다.
전두환 정부가 집권한 1980년대 초 냉해로 인한 쌀 흉작 등이 큰 문제가 되자 옥서지구 계획은 1986년 ‘김제지구 간척지 농업개발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재추진됩니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경제 부처 장관들의 반대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합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민정당 후보로 대선에 나서면서 새만금 사업은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은 새만금방조제의 출발지인 전북 부안군이 운영하는 누리집(‘디지털부안문화대전’)에 올려진 글(‘계화도와 새만금 간척사업’)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1987년 13대 대선을 엿새 앞둔 12월 10일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전북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을 선거공약으로 전격 채택합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공약에 새만금을 넣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유세에서 호남지역 민심을 달래줄 ‘선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급조한 것입니다. 그는 발표 과정에서 “서해안 지도를 바꾸게 될 새만금에 대단위 방조제 축조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선정, 신명을 걸고 임기 내 완성하여 전라북도 발전의 새 기원을 이룩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어 다음날 농수산부(현 농림수산축산부)는 “1986년부터 사실상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이 사업을 1989년 상반기에 세부 실시 계획의 확정과 함께 본격 추진해, 1996년까지 방조제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두 정권에서 검토했으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장됐던 새만금 사업이 부활한 것입니다.
당선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사업 추진에 미온적이었습니다. 예산도 제대로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밀어붙인 게 김대중 당시 야당(신민주연합당) 총재였습니다. 1991년 7월 16일 여야 영수 회담에서 김 총재는 선거 공약인 새만금 사업의 이행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추경으로 2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고, 그해 11월 28일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새만금 간척 종합 개발사업’의 착공식이 열립니다.
● 정권마다 시대 상황 반영한 사업목적 변경
우선 노태우 정부에서 새만금은 ‘농업 식량 생산기지’였습니다. 착공식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간척지의 용도를 임해 공업단지와 우량 농지로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감사원 감사 결과 용지계획은 농지로만 사용하려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정부에서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만금의 사업목적을 달리합니다. 즉 김영삼 정부는 ‘대중국 교두보’, 김대중 정부는 ‘환황해 경제권의 생산·교역·물류 전진기지’를 덧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용지계획은 초기 구상안을 고수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중단되는 일도 발생합니다. 야당 총재 시절 새만금 사업을 밀어붙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임한 이듬해인 1999년 4월부터 2001년 5월까지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됩니다. 당시 전북도에서 새만금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문제에 대해 민관 공동 조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면서 새만금은 큰 변화를 겪습니다. 새만금을 복합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용지계획이 100% 농수산 개발 중심에서 72% 농지, 나머지 28% 비농지로 바뀐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새만금 공사는 중단됩니다. 환경단체가 2001년 8월 새만금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과 함께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요구했고, 2003년 7월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후 2006년 3월 대법원이 새만금 사업을 지속해도 좋다는 확정판결을 내릴 때까지 공사는 멈춰 섰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만금 사업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습니다. 우선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를 위한 다기능 융복합기지로 조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농지 대 비농지의 비율이 ‘7:3’에서 ‘3:7’로 바뀝니다. 산업단지와 관광단지 등을 개발할 수 있는 비농지 면적도 늘어납니다. 이어 착공 19년 만인 2010년 4월 27일 방조제(33㎞)가 완공됩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경협단지 조성’을 사업목적으로 내세우고 2013년 9월 국토교통부 산하에 새만금개발청을 만들어 새만금 관련 모든 개발 업무를 일원화합니다. 또 새만금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새만금위원회 발족,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 확정 등과 같은 후속작업을 추진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새만금에 정권 핵심사업을 구현해줄 매개물로 활용합니다. 당시 8% 수준인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이끌어갈 전진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 신공항 건설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 점화
이에 따라 정부는 새만금에 신규 산단 조성, 기반 시설 구축, 연구개발, 사업화 등에 필요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특화단지 투자 기업에는 세액 공제, 판로 개척, 투자 촉진 보조금 등의 인센티브도 제공됩니다. 전북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생산액 8조 5000억 원, 부가가치 2조 7000억 원, 고용 창출 3만 2000명의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또 지난해 8월 ‘초고속 이동 수단 하이퍼튜브’(’한국형 하이퍼루프‘) 종합시험센터 구축사업 대상사업자로 전북도를 선정했습니다. 전북도는 사업지로 새만금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한국형 하이퍼루프는 진공에 가까운 관(‘튜브’)에서 시속 1000km 속도로 이동하는 철도입니다. 계획대로라면 KTX를 이용해 2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부산 구간을 20분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꿈의 수송 수단으로 불립니다.
전북도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2024~2032년까지 9000여억 원을 투입해 초고속 추진동력과 열차부상시스템, 아진공(진공에 가까운 상태) 차량 및 무선 시스템, 아진공 튜브 인프라 건설, 하이퍼튜브 시스템 통합·운영 기술 등을 개발하게 됩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새만금에는 미래형 교통수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하이퍼튜브부터 신공항(‘새만금 국제공항’)-신항만-철도-자율주행차 등이 모두 들어서게 됩니다. 상상으로 펼쳐왔던 미래 교통 시스템이 모두 실현되는 ‘미래 교통망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잼버리 부실 운영 사태를 계기로 신공항 건설사업자 선정에 노란불이 켜지면서 이런 계획에도 차질이 우려됩니다. 새만금 신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B/C)이 0.478로 매우 낮다는 점도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B/C가 1.0 이하이면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새만금 신공항의 인근에 위치한 광주공항과 무안 공항이 매년 적자에 유령 공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특히 무안 공항은 현재 전라도의 유일한 국제공항이지만 올해 6월까지 이용객이 8만 5135명에 불과합니다.
갯벌 보존 요구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북 녹색연합은 11일 성명서를 통해 “새만금 신공항 계획 부지인 수라갯벌이 아직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는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이자 연안습지”라며 “전 세계 철새 이동 경로 중 가장 많은 멸종위기종들을 포함하고 있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의 핵심 기착지이며, 국제적으로 중요한 철새도래지인 만큼 신공항 건설사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새만금 준공 시기는 당초 2004년에서 2050년으로 대폭 늦춰졌습니다. 또 2030년까지 전체의 78%, 2040년까지는 87%까지 개발한다는 단계적인 목표도 세웠습니다. 정권 교체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사업목적에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새만금개발청의 소개문에는 “새만금이 펼쳐나갈 미래는 그간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새롭고 놀라운 모습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지난 33년의 여정과 현재 나타나고 있는 변수들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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