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문자에 회사 전화 테러까지…0.07%만 남아 “씨가 말랐구나”

최아영 매경닷컴 기자(cay@mk.co.kr) 2023. 8. 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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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공매도 음모론이나 악의적인 의도 등이 있다며 하루에도 4~5통씩 육두문자가 섞인 메일은 기본이고,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립니다.”

증권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는 매도 보고서의 후폭풍이 거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업무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증권가 매도 보고서가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작 매도 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들은 개인투자자들의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매도 의견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유로는 기업과의 관계 등이 지목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애널리스트를 압박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18일까지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은 기업분석 보고서 1만2550건 중 ‘매도’(비중축소 포함) 의견을 제시한 보고서는 9건(0.07%)에 그쳤다. 매도 의견이 나온 종목은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카카오뱅크, 제주항공 등 4개다.

같은 기간 투자의견 ‘매수’(강력매수 포함)는 1만437건(83.16%)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립은 661건(5.26%)이다. 시장에서 중립은 사실상 매도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매도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들의 반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다’며 투자자들로부터 협박과 욕설이 담긴 메일을 받는 것은 물론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올 들어 주가가 10배 넘게 오른 에코프로가 폭등세를 이어갈 때 제동을 걸어 금융감독원의 서면 질의를 받은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원은 기각 처리됐으나, 매도 보고서를 냈다는 이유로 금감원에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연구원들의 피로감을 더욱 높였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B씨는 투자자들이 회사 앞에서 벌인 시위로 곤혹을 치렀다. 본의 아니게 다른 직원들까지 피해를 끼쳐 곤란한 처지가 됐다.

B씨는 “개인 투자자가 주도하는 장세이다 보니 매도보고서가 나오면 각종 공격이 쏟아진다”며 “일부 2차전지 소재업체는 말도 안 되는 밸류에이션이어서 주주들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매도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지난달 5일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매수 일색 보고서 관행 개선에 대해 논의했다. 함 부원장은 “증권사들이 관행에 대한 자성 없이 시장환경만 탓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수 일색인 증권사 보고서 관행이 심화한 배경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수익구조가 법인영업(홀세일)과 기업금융(IB) 성과와 연동된 만큼 매도의견을 내는 건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분석 대상인 기업들이 IB 사업부문의 잠재적 고객사인 탓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매도 보고서를 내기 어려운 건 이같은 수익구조와는 무관하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롱(매수) 포지션 비중이 높아 수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데다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 여론도 한몫했다.

금융당국은 리서치부서 독립성 제고를 위해 애널리스트 성과평가, 예산배분, 공시방식 개선, 독립리서치 제도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는 투자보고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고서 유료화, 유인체계 마련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는 매수와 매도 거래대금에 비례해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만큼 적극적으로 의견을 꺾는다”며 “이런 체계가 없는 국내에서는 짧은 트레이딩 구간에서 매도 의견을 내면 피곤해지기만 한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투자문화 변화도 거론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실적과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매수·매도 의견을 내놓는데, 매도 의견만 나오면 주주들이 반발하고 ‘조리돌림’하면서 비난하는 등의 투자문화는 지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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