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초전도체…개미 투자자 또 ‘불나방식 투자’ 몰렸다

김찬호 기자 2023. 8. 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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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고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석 위에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체의 몸체 일부가 떠 있다. / 유튜브 영상 갈무리

[주간경향] 염전에서 뽑아낸 ‘리튬’, 2차전지, 초전도체. 올 한해 국내 증시에서 이른바 ‘테마주’를 형성한 대표 소재들이다. 본래 주식시장에서 ‘테마’는 투자 활동에 도움을 주는 기업 분류 방식을 의미한다. 증권사들은 반도체, 화장품, 여행 등으로 산업을 나누고 해당 사업을 하는 상장 기업들을 분류한다. 이렇게 한데 묶인 기업군이 테마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들에게 제공된다. 일단 시장에서 대세 테마가 되면 해당 분류에 속한 기업들에 수급이 몰리며 주가가 상승한다.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주식시장의 격언을 잘 보여주는 투자 중 하나가 바로 테마를 활용한 방식이다.

그런데 테마는 공인된 기관이 명확한 기준에 의해 분류한 것이 아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웃지 못할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마와 직접적 관련도 없는 기업이 한데 묶이는 정보 왜곡이다. 기존 테마로는 분류가 불가능한 신기술이 나타날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회사 이름이 소재를 연상케 해서’, ‘상용화가 되면 수혜를 입을 것 같아서’ 등의 자의적 기준으로 테마 기업들이 구성된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해당 기업을 테마로 묶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묻지마 투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코로나19 확산,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 달러 강세 등으로 한국 대표 기업들의 주가는 오랜 기간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투자자의 시선은 단기간, 급등 가능한 종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2차전지’ 테마는 수급만으로도 큰 상승을 만들 수 있다는 강렬한 경험을 남겼다. 자연히 ‘다음 테마가 무엇이냐’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릴 즈음, 시장에 이름조차 생소한 ‘초전도체’가 혜성같이 나타났다.

주식시장 흔드는 과학계의 축복

‘LK-99’라는 물질이 알려지며 시작한 초전도체 논란은 본래 과학계의 이슈다. 통상적으로 새로운 발견, 이론이 거쳐 가는 논문 투고, 동료 평가, 정식 게재, 대중화 등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게 출판 전 온라인에 공개되는 프리프린트(Preprint) 형태로 아카이브(arXiv)라는 사이트에 공개된 것이 전부다. 이로 인해 학회지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는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을 통해 서서히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검증되지도 않은 내용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해당 논문이 다룬 주제 때문이었다. 지금껏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논문이 입소문을 타며 세계 여러 대학, 연구소 등이 각자 ‘시료’를 제작해 실험에 나섰다. 이들은 논문에 나온 방식을 따랐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에서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초전도체로 보이는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CMTC)처럼 “LK-99는 상온과 저온에서 초전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곳도 있다. 특히 ‘네이처’는 지난 8월 16일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LK-99 isn’t a superconductor)’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부정적 평가에 힘을 실었다.

LK-99의 초전도성에 대한 진위와 별개로 학계는 해당 상황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반증 가능성’이다. 논문을 통한 주장도 반증 가능성을 찾으며 기존보다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설사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발견일 수 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측 역시 “(외부) 의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LK-99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 정리 및 국제학술지의 논문 등재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LK-99가 초전도체가 맞든, 아니든 과학계의 정해진 단계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초전도체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해가는 과학계와 달리 정작 난리가 난 곳은 따로 있다. 오히려 과학계보다 더 LK-99가 초전도체가 ‘맞냐, 아니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곳이다. 바로 주식시장이다.

관계 없어도 달려드는 ‘불나방식’ 투자

초전도체가 주목받자 주식시장에는 ‘초전도체 테마주’들이 생겨났다. 신성델타테크, 덕성, 서남, 인지컨트롤스, 파워로직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상장사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활용한 사업을 해서 테마로 분류된 것이 아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LK-99를 개발했다는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지분을 간접적으로 보유한 경우다. 즉 초전도체와 관련 없는 사업을 하지만 퀀텀에너지연구소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초전도체가 상용화할 경우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석 시스템 등의 사업을 하는 사례다. LK-99가 초전도체가 맞고, 상용화가 가능하고, 해당 기업의 제품이 필요하다는 세 가지 가정이 모두 충족될 때 수혜를 기대해볼 수 있다.

지분으로 테마주가 된 경우는 초전도체 기술, 사업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따로 시장에 설명할 것도 없다. 반면 덕성, 서남처럼 초전도체 상용화와 엮여 테마주로 분류된 회사들은 주가 급등에 따른 해명을 내놨다. “초전도 응용 기술 개발 사업에 직접 참여한 바 없고, 초전도체 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한 수준”(덕성)이라거나 “우리 회사가 (초전도체) 관련주로 여겨지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우리 기술은 2세대 ‘고온초전도선재’ 기술로 이미 실용화된 기술”(서남)이라는 내용이다.

초전도체 테마주의 대장주라고 알려진 코스닥 상장기업 신성델타테크의 일봉 차트 / 네이버 주식 갈무리

문제는 이 같은 해명에도 시장은 이들을 초전도체 관련주에서 제외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8월 16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은 1.76%, 코스닥 시장은 2.59%로 큰폭 하락했다. 이날 대부분의 주식이 폭락한 가운데 양 시장을 통틀어 총 15개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11개 종목이 초전도체 관련주였다. 이중 서남은 전 거래일인 8월 14일 최대주주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가 장내매각을 하며 최대주주가 변경됐다는 공시까지 내놨다. 쉽게 말해 기존 최대주주가 주가가 급등한 사이 지분을 전량 매각해 수익을 챙기고 나갔다는 뜻이다. 초전도체와 관계도 없고, 최대주주가 주식을 매도한 사실까지 드러났지만, 서남은 이날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사실’은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주장’은 달랐다. 다음날 네이처의 초전도체 부정 기사가 알려진 후 서남은 하한가를 기록했다. 종잡을 수 없는 주가 변동은 반복됐다.

해당 현상을 전문가들은 ‘폭탄 돌리기’라고 설명한다. 초전도체에 대해 일반인이 검증이 불가능한 점, 검증에 나선 기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점,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는 돼야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결론에 이르기까지 공백기가 생겼다. 이 기간 동안 투자자들끼리 물량을 주고받으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투자위험종목’ 지정 및 ‘매매 거래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지만, 해당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는 점만 입증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아직 LK-99의 실체를 알 수도 없고, 맞다고 해도 상용화까지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며 “투자자들도 이를 알면서, 폭탄이 터지기 전에 자신은 최대한 이익을 챙겨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식시장의 역사는 테마주 열풍의 끝에는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만 남는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줬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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