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설거지’를 아십니까?

이동학 2023. 8. 20. 08: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배출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보면 지구는 지속 가능할 것인지 한숨부터 나온다. 하나의 대안으로 ‘공유 설거지’가 거론된다. 필자가 직접 중국 산둥 지난시 현장을 찾아가 살폈다.
세척 과정을 마친 그릇을 최종 검수하는 ‘공유 설거지’ 현장. 이후 같은 그릇끼리 포장해 식당으로 납품한다.ⓒ이동학 제공

중국의 중소 규모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손님들이 먹고 떠난 뒤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박스에 담아두기만 하면 된다. 뒷일은 세척 전문업체가 맡는다. 수거된 그릇들은 트럭에 실려 대형 설거지 공장으로 옮겨진다.

자전거, 우산, 자동차, 숙소 등 여러 공유경제 중 하나로 이른바 ‘공유 그릇’이다. 식당별로 소유된 그릇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설거지 회사를 중심으로 여러 업장이 같은 그릇을 빌려 사용하는 개념이다. 식당에선 설거지 공간이 필요 없고 설거지 인력도 고용할 필요가 없다.

내가 찾은 설거지 회사는 2003년 공유 설거지 모델로 출발해 올해로 딱 20년이 됐다. 이 회사 대표는 “설거지 파트 직원 30여 명을 고용하고, 수거와 배송 파트 15명을 배치했다. 도시 외각 시골 마을에 위치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인접 지역 40·50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접시와 그릇 두 개, 컵과 수저가 한 세트로 포장된다. 사용 비용은 세트당 2위안(약 358원), 세척 비용은 0.8위안(약 143원)이다. 식당에선 이 비용을 음식값에 포함해 개념상 식당은 '중개자'다. 손님과 공유 그릇 회사를 연결해 그 그릇을 사용하는 공간을 내어줄 뿐이다.

산둥성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규모가 큰 식당이나 호텔은 고급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그릇을 사용한다. 그래서 대형 업장들은 별도의 세척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나머지 80%에 달하는 업장에서는 이 공유 그릇 서비스를 이용한다.

공유 설거지 모델이 더 많이 전파된다면

회사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설거지 세척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장은 기다란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총 7단계 공정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①이물질 수중 분리 ②그릇·수저와 상자로 각각 분류 ③유착 기름 분리·초음파 세척 ④맑은 물 세척 ⑤고온 스팀살균 ⑥자외선 살균 ⑦검수 및 최종 포장 순이다.

식당으로부터 수거된 일부 그릇 안에는 음식물 잔반이 함께 섞여 들어오지만 첫 번째 수중 분리 단계에서 모두 걸러진다. 이때 발생하는 잔재물은 물기를 제거해 소각장으로 보내고 오염수는 따로 처리돼 배출된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 번째 단계는 상자에 가득 담겨 있는 그릇과 음식물, 이물질을 수중에서 분리한다. 첫 단계 분리가 끝나면 그릇류와 수저, 상자가 각기 분류돼 별도의 트랙으로 들어간다.

기름을 많이 쓰는 중국요리 특성상 기름기 제거가 매우 중요한데, 이 단계에서는 뜨거운 물과 세정제로 기름기를 없앤다. 사기 재질로 만들어진 그릇들이 부닥치면서 깨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파손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후 초음파 세척과 맑은 물 세척이 네 차례 반복된다. 곧이어 스팀과 자외선 처리로 살균세척의 터널을 지나온 그릇들은 사람의 눈으로 최종 검수한다. 탈락한 그릇들은 따로 빼두었다가 중간 지점부터 다시 세척한다. 그렇게 세트로 묶인 뒤 최종 포장된 그릇들은 옆 라인에서 세척한 파란색 배송 상자에 다시 담겨 다음 날 오전에 출고된다.

중국의 한 식당 테이블에 놓여 있는 그릇 세트. ‘공유 설거지’ 회사를 통해 세척된 그릇은 이렇게 손님 앞에 놓인다.ⓒ이동학 제공

배송은 원칙적으로 식당 영업 전인 오전 11시 이전에 마친다. 그릇 주문으로 식당의 매출을 간접 파악할 수도 있는데, 코로나19 시기 때는 식당들이 문을 닫아 매출 부진을 겪었지만 지금은 다시 매출이 올라오고 있다.

하루 5만 세트를 세척하는 이 회사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추가로 옆 부지에 하루 15만 세트를 처리할 수 있는 공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설비는 현재 체계보다 훨씬 개선·보완돼 인력이 2~3명만 투입된다고 한다.

개별 매장에서 사람이 하던 설거지를 기계화하고, 더 나아가 공유 설거지로 규모를 키운 것만으로도 획기적 효율을 달성했다. 3배 분량의 효율을 기록하면서도 고용인력을 10배로 줄인다니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질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훠궈집 역시 공유 그릇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에 250여 세트를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식당 내부에서 사람이 일일이 설거지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력도 많이 투입됐는데, 이 서비스를 이용하니 간편해졌단다.

중국의 설거지 회사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자국 시장에 뿌리를 내렸고, 이제는 베트남·타이 등 동남아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애초 공유경제의 일환으로 설거지 서비스가 비즈니스화되었다. 한국은 일회용 쓰레기 발생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나 여러 분야에서 설거지 스타트업들이 활약하고 있다.

카페의 커피 잔, 어린이집의 식판, 음식점의 배달 용기 등을 공유하며 사용하고, 세척공장에서 살균세척한 후 다시 보내진다. 공유 설거지 모델이 장례식장으로, 야구장 등 스포츠 경기장으로, 영화관 등 문화시설로도 더 많이 전파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쓰레기 발생을 처음부터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동학 (쓰레기센터 대표)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