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컨트리곡이 빌보드 1위인 까닭 [음란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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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월런이라는 가수가 있다.
월런의 곡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는 올해 빌보드 최대 히트곡이다.
이 곡으로 성공하기 전 월런은 나락으로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월런은 '레드넥 러브 송(Redneck Love Song)'이라는 곡을 발표했을 정도로 레드넥임을 자랑스럽게 내건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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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월런이라는 가수가 있다. 추측하건대 “누구?” 싶은 독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당연하다. 한국 스트리밍 차트에서 그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월런의 곡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는 올해 빌보드 최대 히트곡이다. 무려 14주간 1위에 머물렀다. 심지어 이 곡은 Z세대 아이콘인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신곡 ‘뱀파이어(vampire)’마저 1위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1위에 올랐다.
컨트리 뮤지션이다. 아마 조금은 눈치챘을 것이다. 컨트리는 한국에서 인기 없는 장르 중 하나다. 컨트리를 기반으로 하는 장르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밴드(The Band)나 올맨 브러더스 밴드(The Allman Brothers Band)는 미국에서는 전설이지만 한국에선 음악 마니아나 좀 아는 존재다. 내 지인은 이런 유의 음악을 통틀어 “미국 흙냄새 나는 음악은 한국 사람들 싫어해”라고 말했는데 이거 참,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월런의 ‘라스트 나이트’는 별게 없는 노래다. 전형적인 컨트리에 귀에 잘 들리는 팝 멜로디를 섞었다. 좋게 말하면 보편적이고 미학적으로는 좀 게으른 곡이라 볼 수 있는 셈이다. 가사는 뻔한 내용으로 일관한다. “어젯밤 독한 술 마셔가며 얘기했잖아. 모든 걸 다 얘기했잖아. 어젯밤이 끝일 리 없어”가 거의 전부다.
하긴, 빌보드 역사에서 특별하지 않은 1위 곡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라스트 나이트’의 성공 배경에는 또 다른 서사가 숨어 있다. 이 곡으로 성공하기 전 월런은 나락으로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 록다운 시기에 파티를 즐기다 비판받고, 흑인 비하 발언을 내뱉은 게 밝혀지면서 소속 음반사로부터는 버림받고 스트리밍 플랫폼에선 그의 노래를 삭제했다. 결국 월런은 흑인 인권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정식으로 사과했다. 한데 이즈음부터였다. 무엇으로 봐도 위기였던 그의 곡과 앨범이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원자가 되어준 건 바로 '레드넥(Redneck: 햇볕에 목이 빨갛게 탔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보수적인 백인'을 가리킴)'이었다. 실제로 월런은 ‘레드넥 러브 송(Redneck Love Song)’이라는 곡을 발표했을 정도로 레드넥임을 자랑스럽게 내건 뮤지션이다. 즉 정치적 올바름, 캔슬 컬처(논란이 되는 언행을 한 사람에 대한 팔로를 취소하는 현상),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에 반감을 지니고 있던 보수주의 백인 남성(레드넥)이 월런을 작정하고 밀어준 것이다. 효과는 굉장했다. ‘라스트 나이트’만 성공한 게 아니다. 곡이 실린 새 앨범 〈원 싱 앳 어 타임(One Thing at a Time)〉의 모든 곡이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랐다. 이 앨범에는 총 36곡이 수록되었다.
빌보드차트 7월29일자 2위 곡은 제이슨 앨딘의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Try That in a Small Town)’이다. 컨트리 가수인 그는 곡에서 대놓고 ‘총기 사용’을 지지한다. 이 곡도 크게 대단할 게 없는 컨트리다.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인종차별 논란에도 휩싸였다. 그러나 월런처럼 논란이 불씨가 되면서 도리어 레드넥의 성원을 획득했다. 레드넥의 왕이라 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합세해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니까, 핵심은 둘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대중음악은 당대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이 곡은 둘로 쩍 갈라진 미국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과연 미국만의 문제일까. 의견이 다를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대안이다. 오직 반론만으로 상대 진영을 타격하는 이분법적 사회를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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