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변호사 살인범은 나" 방송서 충격 자백…"공소시효 끝난 줄"[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다. 혼만 내주려고 했는데 죽이게 됐다"
2021년 8월 20일. 미제(未濟)로 묻혀 있던 이승용 변호사 피살 사건이 22년 만에 새 국면을 맞았다. 유력한 용의자 김모(57)씨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하면서 22년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자신이 몸담았던 폭력 조직에서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범행에 쓰인 흉기를 정확히 묘사했으며, 이동 동선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사당국의 눈을 피해 22년 동안 숨어 있었다. 난데없는 인터뷰만 안 했다면 이 변호사의 죽음은 영원히 미제로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왜 구태여 사건을 다시 들춘 것일까.
피해자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수재다. 1984년 검사로 임명돼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을 거쳤다. 동기로는 채동욱·김진태 전 검찰총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등이 있다.
이 변호사는 1992년 검찰을 떠나 고향인 제주도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하지만 1999년 11월5일 새벽 의문의 피살을 당하면서 짧았던 귀향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 변호사는 제주 삼도2동의 한 주택가에 세워진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가슴과 배, 왼팔 등 여섯 곳을 예리한 흉기에 찔려 과다 출혈로 숨졌으며, 옷과 차에 피가 낭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두고 도내에서는 온갖 소문이 들끓었다. 일각에서는 이 변호사가 청부 살인을 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변호사가 1998년 제주도지사 선거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고, 폭력 조직이 해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원한을 샀다는 주장이었다.
검경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현상금 1000만원을 걸고 반상회까지 열어가며 수사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결국 1년 만에 수사팀이 해체되면서 22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제주경찰서 문서고에 잠들었던 이 사건은 발생 20여년 만인 2020년 느닷없이 다시 주목받았다.
용의자 김씨가 그해 6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폭력 조직 '유탁파' 두목 A씨의 지시를 받고, 이 변호사의 청부 살인을 교사했다. 부산 출신으로 '갈매기'로 불린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당시 26세)씨를 시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다.
유탁파 임원이었던 김씨에 따르면 그는 1999년 8~9월쯤 A씨로부터 이 변호사를 손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어 이 변호사를 손봐야겠다. 조직에서 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생 하나를 골라 혼 내줘라. 절대로 잡히면 안 되고 이 일은 우리 둘과 그 동생만 알아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청부인이 줬다는 현금 3000만원을 A씨한테 받아 '갈매기' 손씨에게 건넸다. 이후 손씨와 함께 이 변호사를 미행하며 여러 차례 범행을 모의했다. 이 변호사가 '검도 유단자'라는 소문을 들은 둘은 반격을 우려해 예리한 흉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김씨는 손씨가 사건 당일 오전 3시쯤 단골 술집에서 나온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는 김씨의 주장이 꽤 구체적이라며 "자기 상상력을 보태거나 꾸며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방송 이후 경찰은 재수사에 돌입했다. 2021년 6월 캄보디아에서 불법 체류로 검거된 김씨를 국내로 압송, 살인 교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당시 살인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착각해 방송에서 사건 내막을 이야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당초 2014년 11월 5일이었지만, 김씨가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2015년 12월 이후로 늘어났다.
그런데 공소시효 만료 5달 전인 2015년 7월 살인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김씨를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됐다.
다만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방송에서 한 말은 들은 얘기를 전한 것으로 모두 소설"이라며 진술을 번복했다. 또 "갈매기 손씨가 직접 (살인) 오더를 받았고, 나는 상의에 응했을 뿐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전혀 없다", "내가 '리플리 증후군'(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을 앓고 있다. 그 방송은 거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탁파 두목 A씨는 2008년 병사했고, 손씨도 2014년 사망해 김씨만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1심에서 무죄를, 항소심에서는 징역 13년 6개월(이 변호사 살인 12년+방송 제작진 협박 1년 6개월)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월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살인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객관적 증거와 구체적인 정황 등이 부족하다. 정황 증거로 살인 및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2심의 징역 12년형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정황 증거만으로 김씨의 살인 고의나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김씨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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