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 잡는 유전자가 장운동까지 챙긴다…‘만능 집사 유전자’의 비밀
우리의 위와 장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늦은 밤 출출해서 배가 꼬르륵거릴 때나 복통으로 뱃속에서 천둥이 칠 때, 우리는 소화기관의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위와 장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먹은 음식을 섞고 조각내 제대로 소화되도록 한다.
장의 움직임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신경’이 하는 일이다. 먹은 음식의 양이나 종류, 소화된 상태 등은 소화기관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물리적 요소다. 하지만 신경세포가 어떻게 뱃속의 물리적 상황을 알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소속의 아르뎀 파타포우시안 교수는 물리적인 힘이 신경세포의 활성을 야기하는 원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왔다. 그가 특히 집중한 건 ‘피에조2(Piezo2)’라는 이름의 유전자다.
피에조2는 물리적 힘에 의해 활성화되는 이온 통로 단백질이다. 우리 몸의 자세, 촉감, 통증, 숨을 들이쉰 정도, 방광의 팽창 등 다양한 물리적 상황을 감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타포우시안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에서는 피에조2가 위나 장의 물리적 상황을 탐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피에조2에 돌연변이를 가진 7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소화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변 상태가 좋지 못하고, 잔변감을 더 많이 느끼는 등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피에조2가 돌연변이로 바뀐 실험용 생쥐의 대변을 먼저 들여다 보았다. 돌연변이 생쥐도 물기가 많거나 크기가 작은 대변을 만들었는데, 이는 먹은 음식이 장에 충분히 머무르지 못하고 빨리 대변으로 나오기 때문으로 보였다. 사람이나 생쥐 모두에서 적당한 장운동의 결과물인 좋은 품질의 대변을 만드는 데 피에조2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아가 연구진은 소화기관 중 어디에서 피에조2가 중요한지를 연구했다. 피에조2 돌연변이를 몸에 지닌 생쥐의 위, 소장, 대장에 조영제를 주입해서 각 부위의 움직임을 측정했다. 그 결과 부위에 상관없이 피에조2가 돌연변이가 되면 조영제의 이동이 일관되게 빨라졌다. 여러 소화기관 모두가 피에조2를 통해 운동을 조절하고 있던 것이었다.
최근 약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피에조2가 우리 몸에서 다양한 물리적 감각을 매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촉감, 통증, 자세, 방광의 상태부터 오늘 소개한 장의 감각에도 피에조2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피에조2는 팔방미인인 셈이다.
피에조2가 힘에 반응해서 신경세포에 신호를 주게 되면 우리는 이 신호를 바탕으로 물건에 손이 닿았는지, 문턱에 발을 찧었는지, 똑바로 서 있는지, 화장실에 가야 할지, 음식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장운동을 조절해야 할지 등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의 유전자가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매개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설명은 피에조2를 활용하는 신경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장에 연결된 신경에서 피에조2가 작동하면 장운동이 조절되고, 근육이나 인대로 연결된 신경에서 작동하면 자세가 바른지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피에조2를 발현하는 신경세포를 더 세밀하게 나누어 연구하면 우리가 다양한 물리적 힘을 다르게 느끼는 원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피에조2 이외에도 힘에 반응하는 유전자들이 국내외 연구진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들이 피에조2와 함께 장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을 어떻게 조율하는지 살펴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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