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하얏트 난동' 조폭 재판…"다음주 군대 가는데요?"
이제는 유물이 된 줄 알았던 '조직폭력배'들이 서울 시내 호텔에서 난동을 부리며 시민들을 위협한 사건 기억하시나요? 수노아파의 하얏트호텔 난동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수사당국이 캐고 캐다 보니 전국 곳곳에서 여전히 조직폭력배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활개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죠.
그리고 이들은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 모임을 가지며 서로 의리(?)를 다졌던 이들은 재판에선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늘 '법정B컷'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재판을 피해 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화 안 받고, 군대 간다 하고… 숨어버린 조폭들
2020년 10월, 십 수 명의 수노아파 소속 조폭들이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립니다. 이들은 사흘간 호텔에 투숙하며 오가는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립니다. 말리는 호텔 직원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위협하기도 했죠.
이들은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현재 해외 도피 중인 KH그룹 배상윤 회장 때문에 투자 손실을 봤다며 60억 원을 돌려 달라고 난동을 부린 겁니다. 당시 그랜드하얏트호텔은 KH그룹이 소유하고 있었죠.
이들의 폭력 행위를 수사한 검찰과 경찰은 전남 목포에서 결성돼 출발한 수노아파가 현재도 신규 조직원을 모집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사실을 파악합니다. 이어 39명을 재판에 넘깁니다. 그렇게 이번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하나의 재판이지만 혐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려 적용된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협박·업무방해', 그리고 폭력조직을 만든 '범죄 단체 구성·활동' 혐의입니다.
재판부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두 혐의를 분리해 진행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얏트호텔 난동의 경우 구속된 피고인들이 많은데 1심 최대 구속 기간인 6개월 내에 판단을 내놓으려면 분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죠.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하얏트호텔 사건은 구속된 피고인들이 꽤 있는데, 구속기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뒤에 (범죄단체 구성 혐의) 30명까지 다 같이 신문하는 것이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공판기일 2회부터는 분리하려고 합니다. 같이 가면서 6개월 내에 심리한다는 것이 불필요한 심리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이날 재판은 첫 공판준비기일이어서 피고인들의 출석 의무가 없었지만 4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하얏트호텔 난동을 사주해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윤 모 씨도 법정에 나왔습니다. 투자 실패에 분노해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지목된 윤씨는 상당한 규모의 변호인단을 꾸렸는데, 재판부조차 "변호인이 많네요"라고 말했죠.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공소사실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어떤가요?" 윤씨측 "검찰 공소사실을 모두 다투는 입장입니다. 피고인은 하얏트 사건과 관련이 없고, 단체를 이용하거나 지시한 사실도 없습니다" 재판부 "피고인은 조직원이고, A사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한 부분은 인정하나요?" 윤씨측 "피고인은 조직원이 아닙니다. 전혀 가입한 적도 없고, 몸에 문신도 없습니다. A사 투자자인 것만 인정합니다. 전환사채 문제 부분은 하얏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해결됐습니다. 범행 동기 부분을 다툽니다" |
하얏트 난동을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윤씨는 '자신은 조직원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라며 혐의를 부인했죠. 이날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한 윤씨는 다른 조폭 피고인들과 멀찍이 떨어져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윤씨와 함께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지목된 B씨도 혐의를 부인합니다. A사의 전환사채와 관련해서 투자자는 맞지만 이익을 보고 이미 빠져나왔기에 범행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재판부는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차례차례 혐의를 인정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 나갔습니다. 그런데 재판은 곧장 난항에 빠집니다.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C피고인 변호인은 의견이 어떠신가요?" C씨 변호인 "전화 연결이 안 돼 의사 확인이 안 됩니다" 재판부 "의사 확인을 못했다고요?" C씨 변호인 "네" 재판부 "실무관님, 주소로 소환장은 됐죠? 변호인, 전화가 착신 거부인가요?" C씨 변호인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재판부 "송달은 본인이 받은 것으로 나오고요. 그래요… 다음 기일에 나오면 의견 절차 해주시고요. 그전에라도 연락을 계속 해주세요" |
C씨에겐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상태지만, 국선변호인 연락조차 받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원이 재판 관련 문서 등을 보내는 송달은 본인이 받은 것으로 나오지만, 변호인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어 의사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이죠. 결국 출석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그러던 중, 이번엔 법원 실무관이 재판장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건넵니다. 실무관의 말을 들은 재판부도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습니다.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변호사님, D피고인이 다음 주에 입대해요?" D씨 변호인 "네. 저도 방금 확인을…" 재판부 "그러면 관할이 없게 되는데요?" 검사 "제가 알기론 일반 법원이 관할입니다" 재판부 "훈련소에 들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부르죠?" 검사 "군사법원, 군검찰과 그런 부분을 알아보겠습니다" 재판부 "우리가 소환했는데 훈련소에 있다면 어떻게 하죠? 검사님이 챙겨서 9월 공판 기일에 챙길 수 있도록 하세요. 불구속 피고인인데 신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검사 "강제는 아니고 협조 요청하겠습니다. 저희도 오늘 D피고인 입대 소식을 알아서요" 재판부 "우리는 이미 소환장을 보냈고요. 법원은 할 일을 한다고 한 것인데… 오게 해야죠. 검찰이 군 검찰 당국 등에 얘기해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법원이 또 보내야 할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수노아파 조직 활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D씨가 군에 입대한다고 알려온 겁니다. 그는 지난달 송달을 통해 재판 관련 서류, 소환장 등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D씨는 이날 재판으로부터 사흘 뒤인 17일, 입영통지서를 법원에 제출합니다. 9월부터 열리는 공판 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이 의무여서, D씨도 출석해야 하지만 군 입대가 이뤄질 경우 재판에 차질이 예상됩니다.
연락이 안 되는 피고인들은 이후로도 계속 나왔습니다.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변호인 "피고인 E는 의사확인이 안 됩니다. 전화 신호는 가는데 연결이 안됩니다. F도 연결이 안됩니다. G는 번호 자체가 다른 사람 번호라서 확인이 안 됩니다. (중략) 재판부 "네. 기본 입장을 확인했고요. 지금으로 봐선 1회 기일에 사건 분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입장은 듣고 해야 할 텐데… 실무관님 송달은 다 됐죠?" 실무관 "네" 재판부 "다음 기일에 나올 수도 있긴 합니다. 송달은 다 됐고요. 본인이 받거나 연락돼서 다 한 것인데, 송달을 받고도 안 나오면 신병 처리는 저희가 가능합니다" |
이들이 변호인의 연락조차 받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재판부는 송달은 모두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신병 처리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쉽게 말해 안 나오면 강제로 부르겠다는 겁니다.
"전 멀리서 지켜봤는데요?"… 혐의 부인하는 조폭들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 웃통을 벗은 채 전국 단위 조폭 모임 등을 가지며 친목을 다지는 모습도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다만 법정에선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저 불러선 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는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죠.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H 피고인은 하얏트에 모르고 갔다는 것 같은데 부른 사람은 있을 거 아니에요? 모였던 계기는 있을 것 아닙니까?" H측 변호인 "범죄단체 조직이라면 지휘·통솔 체계가 살아있고, 지휘 감독할 수괴, 간부가 있고 행동대장이 있을텐데 이 사건은 수괴, 간부 이외가 기소됐습니다. 공소장 기재에도 없습니다" 재판부 "I, J 피고인은 의견이 어떤가요?" I, J측 변호인 "사실관계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지만, 고의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 난동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법리상 공범에 있는지 다투겠습니다" |
재판부는 이날 재판 초반부터 신속한 재판을 위해 사건을 분리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재판 절차를 거듭할수록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피고인들에게 협조하라며 부드러운 경고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2023.08.1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폭력조직 수노아파 공판준비기일 中 |
재판부 "아직은 분리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분리해야 합니다" (중략) "양측이 잘 협조해 주세요. 피고인들도 불출석 사유서를 많이 냈는데 재판은 성실히 받아야죠. 연락이 안 되는 피고인들은 소환장을 받았는데 오지 않으면 신병 문제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다각도로 녹여서 얘기했으니 많이 협조 좀 해주세요. 재판이 유의미하게, 잘잘못을 따지고 정확한 결론이 날 수 있게요" |
수노아파에 대한 첫 공판은 다음 달 6일 진행됩니다. 39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이날 재판에선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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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0ho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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