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이 문화재 지킨 곳인데"…관광객에 밟히는 '한남서림' 표지판

김기성 기자 원태성 기자 2023.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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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런 게 있는 줄 누가 알았겠어요."

미국에서 온 친척을 인사동으로 안내하던 류모씨(81·여)가 '한남서림' 표지판을 밟고 있다 깜짝 놀랐다.

이 관계자는 "입체형 표석이 통행에 방해를 줄 수 있어 한남서림 표지판처럼 바닥석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면서 "눈에 잘 띄게 하는 것보다 장소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안내문을 볼 수 있는 서비스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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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근현대 역사 메카"…천도교대교당 등 유적 13개
유적 이정표 없고 구석 설치된 표석·안내판도…"정비 필요"
인사동 '전통문화의거리'에서 한 관광객이 '한남서림' 표지판을 밟고 있다. 2023.8.13. ⓒ News1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원태성 기자 = "여기 이런 게 있는 줄 누가 알았겠어요."

미국에서 온 친척을 인사동으로 안내하던 류모씨(81·여)가 '한남서림' 표지판을 밟고 있다 깜짝 놀랐다.

한남서림은 간송 전형필이 1936년 매입한 고서적 전문서점으로 한국의 중요 고서화 등을 수집해 국외 유출을 막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류씨는 "간송미술관도 다녀오고 전형필의 일대기도 읽었는데 인사동에 한남서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면서 "전 재산을 쏟아 문화재를 모은 자리인데 이렇게 타일 한 장으로 표시했으니 안타깝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인사동 전통문화의거리 일대는 케이팝·한복·전통차 체험 등 상업시설뿐 아니라 근현대 유적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사적이 밀집해 있다.

을사조약 체결에 자결로 저항한 조병세의 순국터(충훈부터),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한 천도교중앙대교당,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경에 붙잡힌 태화관(현 태화문화재단 자리)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 개량한옥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민병옥가옥도 이곳에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이들 사적지의 안내판을 비교적 꼼꼼히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인사동 방문객 상당수가 사적지의 존재를 몰라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천도교중앙대교당 등 근현대 사적 13곳…영문 설명 없어

민병옥 가옥과 천도교중앙대교당으로 가는 인사동 골목. 두 사적의 위치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따로 없다. 2023.8.13. ⓒ News1 김기성 기자

실제 인사동 전통문화의거리에서 사적지 위치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찾기 어렵다.

북인사마당에서 남인사마당까지 600m 구간에 천도교중앙대교당, 삼일독립선언유적지 등 근현대 사적 13곳이 있지만 이들의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과 샛길이 많은 인사동에서 사적지는 방문객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찾아갈 수 있다.

크기가 작거나 구석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안내판도 있다. 의친왕이 살았던 사동궁터의 안내판은 A4용지 크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옆에 나무가 많고 주차 차량이 있어 단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인사동 사동궁터 안내판. 불법주차 차량과 나무에 가려 있다. 2023.8.14. ⓒ News1 김기성 기자

안내판 상당수에서 명칭에만 영문이 병기돼 있을뿐 본문이 한글로만 적힌 것도 아쉽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안내판의 영문명만 잠시 본 뒤 발길을 옮겼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래된 표석과 안내판이 많아 영문 병기가 안 된 것이 있다"면서 "서울 시내에 표석과 안내판이 너무 많아 영문을 추가해 다시 세우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입체형 표석이 통행에 방해를 줄 수 있어 한남서림 표지판처럼 바닥석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면서 "눈에 잘 띄게 하는 것보다 장소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안내문을 볼 수 있는 서비스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안내 이정표 설치와 관련해 "인사동 내 사적지를 다시 점검하고 이정표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 인적 드문 곳에 세운 안내판…"사진·그림도 넣었으면"

이종일 집터.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샛길에 안내판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2023.8.14. ⓒ News1 김기성 기자

사적지 안내판의 위치를 바꿀 필요도 있다.

천도교를 대표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한 이종일의 집터는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이지만 천도교중앙대교당 주차장 한 구석에 안내판이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안내판 앞에서 흡연하던 30대 남성에게 물어보니 "전혀 몰랐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종일 집터에서 30대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23.8.14. ⓒ News1 김기성 기자

이곳을 지나던 배모씨(58)는 "안내판에 초상이나 사진이라도 담았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이종일 집터를 비롯한 현충시설 안내판 설명문의 가독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코로나19가 풀리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지금은 인사동 사적지 홍보를 점검할 시점"이라면서 "인사동 사적을 창의적으로 안내하기 위해 시민공모전을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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