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집착' 30초만에 전처·처남·처남댁 찌르고 달아난 40대…2명 숨져

김혜지 기자 2023.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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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종교때문에 불화 겪어"… 도주 후 주변에 신고 요청
징역 45년→무기징역…법원 "계획적 범행…반성기미 안 보여"
ⓒ News1 DB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유기징역으로, 피고인이 다소 이른 시기에 사회로 복귀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됩니다."

항소심 법정에 선 A씨(49)는 재판장의 이 같은 말에 고개를 숙였다.

전처와 처남댁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5년을 선고받은 A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오히려 A씨에게 원심보다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 유족들은 오열했다. 가족에서 살인범으로 전락한 피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과연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사연은 이랬다.

A씨는 지난 2020년 12월 아내 B씨(40대)와의 18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B씨가 이혼을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사실혼 관계를 이어갔다. 자녀들 때문이었다. 심지어 A씨는 형식적으로 B씨와 이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B씨는 A씨와의 부부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A씨는 어느 날부터 B씨가 외출과 외박이 잦아졌다고 느꼈다.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A씨는 B씨가 특정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다툼은 잦아졌고 결국 B씨는 집을 나갔다.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A씨는 처남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처남 부부 주선으로 B씨와 만남이 성사됐다.

약속 당일인 지난해 6월16일 A씨는 전북 정읍에 있는 처남 부부의 사업장에서 B씨를 만났다. 하지만 대화는 A씨가 원하는 분위기로 흐르지 않았다. B씨는 A씨에게 재결합을 원치않는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혔다. B씨는 "우리는 실제 이혼했고, 더 이상 당신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에 격분한 A씨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B씨를 넘어뜨리고 흉기를 휘둘렀다. 비명을 듣고 처남댁 C씨(30대)가 달려오자 A씨는 망설임 없이 C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처남 D씨(30대)도 쇠막대기를 들고 범행 현장으로 뛰어왔다. 흥분한 A씨는 D씨마저 밀어붙인 뒤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사방은 순식간에 세 사람의 혈흔으로 뒤덥혔다. 고작 3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B씨와 C씨는 D씨와 이웃주민 신고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두 사람은 외상성 쇼크 등으로 끝내 숨졌다. D씨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심한 부상을 입었다.

A씨는 법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살해 목적으로 흉기를 가져간 게 아니라 아내가 다니는 종교 관계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위협하려고 가져갔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영호)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23일 "피고인은 다소 우발적으로 처남 부부를 공격했고, 앞으로 긴 수형 생활을 통해 교화 가능성이 있다"며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검사와 A씨는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A씨 범행이 우발적으로 행해진 게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봤다. 또 뒤늦게 인부에게 신고 요청을 했지만, 자수로 볼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아들에게 사건 당일 '내가 만약 좋지 않은 선택을 할 경우 너희한테 미안하다'고 말한 뒤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처남도 문제가 있다. 나를 창고로 부른다. 만나서 빨리 끝내버려야지' 등의 발언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 A씨가 이미 집에서 흉기를 챙겨 허리춤에 차고 있었던 상태였다는 점도 주목했다.

게다가 A씨는 세 사람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도주하는 등 범행 이후 정황도 가중 요소로 작용했다. 처남 D씨와 이웃 주민이 112에 신고한 이후 9분이 지나서야 주변 공사 현장 인부들에게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했고, 이후 태연하게 손을 씻고 담배까지 빌려 피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을 맡은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이 사건은 잘못된 집착에서 비롯된 이른바 '이별범죄'"라면서 "피고인은 법정에 이르러 반성문을 여러 차례 제출했으나 정작 피해자 유족, 처남 가족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사죄하거나 금전적으로 보상한 게 전혀 없어 원심이 선고한 유기징역형은 피고인의 죄책에 상응하는 정도의 형사상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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