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사순이가 마지막일까요?"...동물 전시 아닌 보전하는 동물원으로 운영해야

원다라 2023.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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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연 전 서울동물원장 인터뷰]
국내 동물원 114곳 중 90여 곳 민간
관람객 감소→수익 급감→부실 운영
"국립동물관리공단 설립해 관리해야"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지내고 있을 당시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바람이의 모습. 청주동물원 제공

관리 부실로 위기에 처했던 사자 '바람이'와 '사순이'가 알려지면서 동물원 존폐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시설에 가둬진 동물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이은 사자 비극을 계기로 동물 전시에 치우쳤던 동물원 운영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가 인근 숲속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어경연 전 서울동물원장(세명대 교수)은 1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원의 부실 운영으로 위기에 처한 동물은 단순히 바람이만의 일이 아니다"며 "바람이 같은 동물이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 전 원장은 1993년 서울동물원 수의사로 입직해 2017~2021년 서울동물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2019년 서울동물원은 국내 최초로 미국동물원협회(AZA) 인증을 받았다. 시설과 관리가 우수한 동물원에 부여하는 AZA 인증을 받은 곳은 국내에서 서울동물원과 용인 에버랜드 두 곳뿐이다. 2020년 환경부 집계 기준, 국내 동물원은 총 114곳으로, 동물 5,513종 4만8,911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 폐쇄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17일 김해시청 자유게시판에 동물원에 남은 동물들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김해시청 홈페이지 캡쳐

90여 민간 동물원…관람객 감소 직격타

서울동물원과 어린이대공원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몇몇 동물원을 제외하곤 국내 114곳 중 90여 곳은 민간에서 운영한다. 이들 동물원은 1990년대 후반 관람용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보기 드문 야생동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관람료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동물원 인기는 급감했다. 어 전 원장은 "동물원의 최대 경쟁자는 '프로야구나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있다"며 "과거엔 즐길거리로 동물원을 즐겨 찾았지만, 사람들의 여가 수단이 늘어나면서 관람객 수는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때 하루 방문객이 5만 명에 달했던 한 동물원에 폐장 공고가 붙어있다. EBS 유튜브 캡쳐

관람객 감소는 민간 동물원의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경영난을 호소하다 문을 닫는 동물원도 생겼다. 수익이 쪼그라든 동물원들은 동물의 서식환경 투자부터 줄였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제대로 먹지 못했던 '갈비 사자' 바람이가 있던 부경동물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등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최근 폐업을 선언했다. 부경동물원 대표는 "관람객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해서 동물들 먹이를 주고 있다"고 호소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모금운동을 통해 동물들의 사룟값을 지원하는 실정이다. 이 동물원에 남은 동물은 50여 마리. 바람이 딸(4)도 바람이가 있던 좁은 실내 공간에 남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2015년 한 동물원 폐업 후 곰 사육 농장으로 옮겨진 반달가슴곰. EBS 유튜브 캡쳐

어 전 원장은 "수익 감소로 동물들의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중소 동물원 대부분은 실내 공간인 데다 이마저도 좁고, 동물들의 먹이도 최소화해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원뿐 아니라 민간 목장에서 관리하는 야생동물도 문제다. 지난 14일에는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가 인근 수풀에 앉아 있다 사살당했다. 앞서 스무 살인 사순이를 돌보던 목장주는 관리를 위해 여러 동물원에 사순이의 분양을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어 전 원장은 "실정을 감안하면 나이까지 많은 사자를 데려가는 동물원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경연 전 서울동물원장. 어경연 전 원장 제공

동물 전시에서 다양성 보전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어 전 원장은 10여 년 전 경북 청도의 한 가정에서 사육되다 서울동물원으로 옮겨진 사자도 있었다고 했다. 가정에서 주인의 보살핌을 충실히 받고 자라 건강했던 사자였다. 하지만 주변 주민들의 민원으로 서울동물원으로 오게 됐다. 이 사자는 동물원에서 남은 생을 마쳤다. 어 전 원장은 "개인이나 민간시설에서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라며 "국립동물관리공단을 설립해 민간에서 돌보지 못하는 동물들을 수용하고,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확보해 운영하면 동물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한발 나섰다. 올해 12월부터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에 따라 민간시설에서 야생동물을 기르는 것이 금지되고, 안전성이 입증된 야생동물만 수입이 허가된다.

동물원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동물을 전시하는 개념이었지만, 앞으로는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보전이 필요한 동물을 보호하는 개념으로 동물원을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동물원도 동물의 생태 환경에 맞춘 공원화가 필요하다. 대규모 시설을 마련하려면 민간보다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사자들이 한낮의 햇볕을 만끽하고 있다. 브롱크스 동물원 인스타그랩 캡쳐

이미 해외 유명 동물원들은 바뀌고 있다. 영국 런던동물원(설립 연도 1826년), 독일 베를린동물원(1844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동물원(1899년), 디즈니랜드 애니멀킹덤(1998년) 등이 대표적이다. 어 전 원장은 "민간이 스스로 대규모 동물원 시설 개선을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해외 유명 동물원들은 공익 차원에서 사회단체나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 전 원장은 구체적으로 ①국립동물관리공단을 설립해 동물에 대한 공적 지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②기존 동물원의 관리 실태를 엄격하게 파악해 동물을 수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동물 보전 범위도 넓혀야 한다. 어 전 원장은 "정부에선 동물 보전에 대해 '토종 동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과거 한국으로 옮겨 온 동물과 그 자손에 대해서도 보호가 필요하다"며 "수많은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이들의 개체를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과거 해외에서 들여온 동물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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