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경찰이 없다”…신림 성폭행 살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소환 되는 이유

이가영 기자 2023. 8. 20. 06: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한낮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원 인근 등산로에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최모(30)씨가 19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원 인근에서 대낮에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피해자가 19일 끝내 사망했습니다. 피의자 최모(30)씨는 이날 구속됐는데요.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끔찍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습니다.

◇신림동 성폭행 사건 같은 흉악 범죄 발생의 이유,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고요?

지난 2~3년 동안 정치권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에 수사권을 넘기는 것에만 치중했지, 치안 정책의 부재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통계가 보여줍니다. 작년 6월 기준 서울의 지구대와 파출소 242개소 중 43.4%(105개소)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 말 기준 서울 지구대와 파출소 직원 약 1만200명 중 30%가 50대 이상입니다. 방범, 순찰 등 치안 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범죄 신고가 들어오면 그걸 처리하기 바쁜데, 예방 활동을 할 수나 있을까요?

수사는 피해자가 발생한 뒤 범인을 잡는 겁니다.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방범·순찰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경찰 본연의 업무는 ‘수사’가 아니라 범죄 예방 활동인 ‘치안’이라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범죄예방 활동의 중요도가 밀렸는지, 되짚어 봐야 합니다. 지구대 및 파출소에 적정한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지, 배치된 인력의 연령 분포는 어떤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서울시는 환경공학적 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겠다고 하던데요?

아무리 최첨단의 환경공학적 범죄예방 시스템이더라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람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 현장에 파출소와 방범초소를 설치해야 합니다. 우범 지역에 설치된 파출소와 방범초소에선 24시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경찰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울시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뿐 아니라 인력 증원 역시 노력해야 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신림동 등산로를 찾아 박민영 관악경찰서장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피의자 최씨에 대해 경찰은 왜 ‘강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가요?

최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상해’ 범죄 사실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입니다. 즉, 범죄사실을 소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명백히 나타난 범죄사실에 바탕을 두고 구속영장을 청구합니다. 그래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습니다.

통상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선 위험한 최선이 아니라 덜 위험한 차선을 선택합니다. 영장 발부 후에 죄명은 변경하면 되니까요. 최씨는 ‘강간하려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여기에 ‘너클’이라는 둔기를 사용해 피해자의 머리 부분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됩니다. 그래서 일단 강간상해 혐의를 적용한 것이고, 최씨는 구속됐습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가 사망했습니다. 죄명이 변경되겠죠?

피의자 최씨는 ‘너클’이라는 둔기를 들고 피해자를 공격했습니다.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성폭력을 행한 겁니다. 성폭력처벌법상 특수강간죄가 성립합니다. 최씨는 이 너클을 갖고 피해자의 머리 부분을 공격했고,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심정지 상태에 빠졌습니다. 최씨의 이러한 행동은 ‘피해자가 죽을 수 있다’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넘어 ‘피해자를 죽여야겠다’는 살인의 확정적 고의가 있었다고 넉넉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최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살인죄’로 수사를 받게 될 겁니다. 해당 혐의에 내릴 수 있는 법정형은 오직 사형과 무기징역뿐입니다.

◇최씨는 성폭력은 미수에 그쳤다고 진술했습니다. 처벌에 영향이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강간살인죄’의 기수와 미수는 강간했느냐가 아니라 살인을 저질렀느냐로 결정됩니다. 즉, 강간이 미수에 그쳤다 할지라도 살인이 이뤄졌다면 죄명은 ‘강간살인’이 됩니다. 최씨는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별을 받아 마땅합니다.

◇최씨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데요,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줄까요?

제가 아는 모든 정신과 전문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울증은 최씨의 범죄 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최씨의 핑계일 뿐입니다. 4달 전에 너클을 준비하고, 산책로에 CCTV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등산로에 주차된 차량에 숨어 피해자를 물색했습니다. 어떤 정신질환의 모습이 보인단 말입니까?

◇최씨, 신상 공개가 될까요?

경찰이 신상공개위원회 개최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미 적정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갈 때 이름과 나이, 얼굴이 드러났어야 합니다. 최씨에게 적용됐던 강간상해, 피해자 사망 후 변경될 죄명인 강간살인 모두 신상 공개 대상 범죄에 해당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머그샷’은 흉악한 범죄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갈 때 드러나는 얼굴입니다. 과거에 찍은 증명사진이나 화질이 흐릿한 CCTV 사진이 아닙니다. 신상 공개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과 같이 수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신상 공개 여부를 따지지 말고, 전담부서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