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현장]"익수 아웃" 외침에 전격 사퇴 선언 안익수, 4위 감독의 운명도 '바람 앞 등불'
[스포티비뉴스=상암, 이성필 기자] "익수 아웃", "안익수 나가!"
19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대구FC의 하나원큐 K리그1 27라운드 전까지 모든 관심은 그라운드 잔디 상태였다. 지난 11일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을 겪으면서 폐영식 후 케이팝(K-POP) 콘서트를 새만금 야영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거쳐 서울까지 올라오는 복잡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통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 등 축구 이외의 행사를 열 경우 동측 관중석 일부가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 공간에 무대를 꾸몄다. 인식 개선으로 잔디 훼손을 막기 위해 무대는 관중석 안쪽에 구성하고 관객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중석에서 즐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남측 관중석 골대 주변 공간에 무대를 설치하고 잔디 전체에는 의자를 설치에 직접 밟도록 했다. 콘서트 종료 후 무대를 바로 해체한 뒤 새로운 잔디를 보식했지만, 덥고 습한 여름에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멀리서 봐도 평탄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면으로 인해 드리블하면 공이 불규칙 바운드를 연출했다.
안익수 서울 감독은 "잔디를 보고 싶지 않았다"라며 "정말 많이 안타깝다. 스포츠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거기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스포츠가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어떤 메시지를 주며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이라며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에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평소, 신중하면서도 미래 가치 등에 주목하고 거액을 주고 경기장을 임대해 사용하는 구단의 수장이기에 정부 부처를 향한 날 선 발언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선진국은 스포츠가 발전했다며 산업적인 역할을 하는 축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다. 이를 들은 서울 관계자들이 "발언이 세네요"라며 놀랄 정도였다.
결과론이지만, 안 감독의 거침 없는 발언은 경기 후 서울 지휘봉을 내려놓는 결심이 선 상태에서 한 것으로 보였다. 한승규가 오승훈 골키퍼의 자책골을 유도하며 도망쳤지만, 동점을 내주고 달아나고 다시 동점을 허용하기의 반복에 팬들은 지쳤고 2-2 무승부를 거두고 4위로 올라섰어도 인사하는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안익수 감독에게 "나가"라는 함성에 벤치 근처에 있던 안 감독도 다소 흥분하는 모습이었고 김진규 코치가 애써 말리며 진정시켰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담담하게 문제점, 보완점을 풀어내던 안 감독은 말미에 태블릿 PC를 꺼내더니 "사퇴의 변을 준비했다"라며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안 감독은 서울이 더 발전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현시점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팬들과의 약속이자 제 마음속 다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추구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며 더는 함께 행진하기 어렵다고 선언했다.
안 감독의 사퇴 발언이 나오던 순간 회견장 안에 있던 서울 프런트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진 역시 갑작스러운 발언에 적잖이 놀랐고 안 감독이 선수대기실로 돌아간 뒤 프런트에 미리 합의된 것인가 묻자 "전혀 몰랐다. 상의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만큼 안 감독 혼자만 사퇴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수석 코치 경험을 안고 타 구단과 대학팀을 맡았던 안 감독은 2021년 강등 위기에서 구세주로 등장해 7위로 잔류를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9위로 마감하며 이를 갈고 올 시즌을 준비했고 이날 경기까지 5경기 무승이었지만, 4위로 나쁘지 않은 흐름을 이어갔다.
꼴찌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라이벌 수원 삼성이 이병근 감독과 결별하고 김병수 감독을 호출했고 강원FC 역시 최용수 감독을 내치고 윤정환 감독을 급히 수혈했다. 강등을 피하기 위한 충격 요법은 충분히 이해되는 선택이다. 매년 우승권에 있다가 올해 초반 극도의 부진에 성난 팬들이 김상식 전 감독 사퇴를 외친 전북도 논란은 있었지만, 명분 자체는 논리적이었다.
반면 서울은 파이널 라운드 진입 전까지 6경기가 남은 시점이었다. 파이널A(1~6위)에 오르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안 감독이 책임지고 사퇴해도 이상하지 않다. 3위 전북(41점)부터 9위 제주 유나이티드(34점)까지 승점 7점 차에서 촘촘하게 묶여 있어 더 그렇다. 팬들이 '간절하면 증명하라'며 선수들을 압박했고 안 감독에게는 "사퇴하라"라고 외쳤다. 안 감독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고 이제 남은 것은 파이널A 진입을 해내지 못해 B(7~12위)에서 싸울 경우다. 안 감독이 너무 무책임하게 부담을 던지고 떠났다는 비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남은 6경기에 모두가 합심해 해결해야 한다.
서울은 일단 안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결정하겠다는 자세다. 여은주 대표이사와 유성한 단장 모두 대구전이 끝난 뒤 기사를 통해 안 감독의 사퇴 선언을 알고 당황했다고 한다. 어차피 양측은 협상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안 감독은 올해 말이면 서울과 계약 만료다. 재계약과 새 감독 선임을 위한 용퇴 등 어떤 결론을 내야 했다. "구단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다"라는 구단 관게자들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올해 안 감독은 경기 중 심판진에 항의, 퇴장 징계로 김진규 수석 코치가 공백을 메운 경험이 여럿 있다. 안 감독의 사퇴가 최종 확정이라면 당분간 김 코치가 임시 대행 체제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코치진 역시 안 감독이 기자회견 후 선수대기실에 와서 관련한 언급을 한 뒤에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였다. 한 코치는 짐을 싸서 선수단 버스로 향하다가 취재진으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는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골을 넣었던 상대팀 대구 에드가, 이근호 역시 안 감독의 사퇴를 취재진으로부터 전해 듣고 한동안 굳어 있었다. 자신들이 낸 결과물로 사퇴 선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서울 선수단은 안 감독이 빠져나간 뒤 한참 뒤에야 차례대로 나왔다. 골 기회를 놓쳤던 나상호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김주성은 흐느꼈으며 이태석은 버스 앞에서 고인 눈물을 닦았다.
서울은 27일 울산과 홈 경기를 치른 뒤 수원과 원정 슈퍼매치로 A매치 휴식기 전 두 경기를 치른다. 이후 광주FC(홈)-제주 유나이티드(원정)-수원FC(원정)-전북(홈) 순으로 정규리그를 정리한다. 경기 성격, 관계, 흐름 등을 고려하면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다. 안 감독의 사퇴를 '공식적으로 확정'한다면 빠른 선임이 필요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안 감독의 말대로 살기 위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결심하고 발언한 안 감독의 의지가 쉽게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 감독의 강력한 선택으로 한동안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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