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비'의 비극…시는 애도를 가능하게 하는가?[PADO]
'황색 비'는 마이 더 방(Mai Der Vang)이 2022년에 출간한 시집의 제목이면서 같은 시인이 2016년에 자신의 첫 시집 '그 후의 나라'(Afterland)에 발표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황색 비'란 말을 접하면 기후 변화와 대기 오염,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적 물질의 예기치 않은 역공이 저절로 연상된다. 내리는 빗물에 잠시 닿는 것조차 두렵게 하던 산성비, 봄이면 공기를 뿌옇게 만들던 황사, 그리고 아까운 여린 생명을 여럿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이런 암울하고 어두운 기억들 때문인지 '황색 비'란 말은 우리를 저절로 긴장시킨다. 맑고 투명해야 할 비를 도대체 무엇이 황색으로 물들였으며, 그래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시를 읽기 시작하는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실 '황색 비'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소수 민족인 몽(Hmong)족에게 크나큰 불행을 안겨다 준 비극적 사건이었다. 베트남 공산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몽족은 전쟁 중에 미군 측에 도움을 주었고 첩보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베트남 전에서 미군이 철수하던 시기에 몽족은 미국으로도, 또 인접한 라오스로도 모두 망명하지 못하고 많은 수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게다가 1975년에 몽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황색의 기름진 액체에 의해 구토와 경련, 시력 상실,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끔찍한 상황을 경험했는데, 이 액체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확실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이 '황색 비'가 소비에트연방에서 살상용 화학 무기를 사용한 증거라고 비판했고, 반면 소비에트연방은 이에 즉각 반박하면서 오히려 베트남전에서 미국 측의 생화학 공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몇 년 후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 의심스러운 노란빛의 액체가 꿀벌의 배설물들이 축적된 것이라는 의외의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지금까지도 '황색 비'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두를 설득할 만큼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전형적으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상황, 그 상황에 대한 시인의 묘사는 참으로 처절하기만 하다.
코에 따가움.
그리고는 당신의 눈에서,
용광로가 치솟아
당신의 얼굴을
비워 냈다.
당신의 빈 구멍들 위에
파리들.
구더기들이 당신의
찢어진 피부에 이르렀다.
또 한 마리 암소가
숨을 쉬다 죽는다
당신이 같은 공기를
삼켰던 것처럼.
며칠이나 지나서
당신이 차갑게 회색으로 변했을까
이 황무지가 되어 버린
임시 묘지에서.
몇 시간이나 지나서
그 상처들이 생기고
당신의 구토물이
흙바닥을 단단하게
만들까. 어딘가에서
집이 춥게 늙어간다.
이제는 당신이
예전에 보살폈던 난롯불로
따스해지지 않은 채.
아무도 영혼의 노잣돈에
아무도 그 길을 노래하지 않는다.
미국으로 망명한 몽족의 후손인 시인은 "황색 비"가 가져온 끔찍한 죽음의 현장을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기괴한 장면으로 그려낸다. 이 무서운 노란색 액체가 피해자들의 "얼굴"을 순식간에 "빈 구멍"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의 묘사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과장된 것에 가깝지만, 이 충격적인 묘사는 '비어 있음'이라는 이 시의 전체적인 중심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살과 근육 등의 조직 일체가 사라지고 속이 텅 빈 뼈만으로 이루어진 인체의 형상이 세계 어디에서나 죽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뼛속까지 '비어 있는' 이 주검은 이내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게 되고 "차갑게 회색"으로 변해 버리는 것으로 묘사되어, 소름 끼치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갑작스러운 외부의 공격 때문에 생명체의 모든 흔적을 힘없이 내어놓게 된 인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시의 후반부에서 이 '비어 있음'은 죽은 이의 부재로 곧바로 연결된다. "난롯불"이 온기를 전해 주던 집은 보살피던 손길이 사라지자 이제 쓸쓸히 "춥게 늙어간다." 이 부분에서 사용된 온기와 냉기의 대비는 시의 처음에 "황색 비"의 공격으로 "용광로"의 뜨거운 불과 같은 고통을 겪고서 곧 차갑게 식어간 희생자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서, 시를 관통하는 '비어 있음'의 주제 의식은 마지막 행들에서 애도의 부재로 초점을 옮겨간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영혼의 노잣돈"을 불사르는 전통적 의식도, 함께 곡을 하면서 추모의 마음을 모으는 장례의 관습도, 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는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이런 장례의 풍습이 "황색 비"의 피해자들을 보내는 과정에서 실행되었느냐 아니냐를 따짐이 아니다. 설사 그 당혹스럽고 참담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는 추모의 의례를 거쳤을지 몰라도, 이 원통한 죽음에 대한 애도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아직 닫히지 않은 채 철저히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이 시에서 겹겹의 '비어 있음'을 묘사하면서 시인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찾아야 할 절실한 필요일 터이다. 방은 2022년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황색 비'라는 동명의 시집에서 이 비극적 사건을 둘러싼 정황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여러 각도에서 파헤친다. 당시에 몽족은 자신들의 문자조차 가지지 못했기에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가 더욱 어려웠고, 결국 이들이 겪었던 아픔과 괴로움은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아직도 '비어 있는' 상태다. 이 시집에 실린 "우리는 황색 비가 있었다고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없었다고 확인할 수 없다"(We Can't Confirm Yellow Rain Happened, We Can't Confirm It Didn't)라는 시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황색 비"의 정체는 여전히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당신"이라는 대명사는 처참하게 죽어간 "황색 비"의 피해자를 호명하면서, 동시에 독자를 수십 년 전의 그 고통스러운 현장으로 이끌어 '비어 있는' 바로 그 자리로 불러낸다. 이렇게 해서 지금이라도 "황색 비"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이 끔찍한 상황이 엮여 있었던 전쟁의 여러 두려운 얼굴들에 대해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감각을 공유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시를 통해 뒤늦은 애도가 이제라도 시작될 수 있기를. 오랫동안 상처를 안고 버텨온 모든 이들을 위한 시인의 간곡한 바람에 읽는 이들이 공명하며 그렇게 함께 마음을 모아 보도록 하는 것이다. 마땅히 추모해야 할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끊이지 않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방의 시는 애도, 그리고 공동체의 치유에 어떻게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또 그러기 위해 시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증언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한 시인의 용기 있는 답을 전해 준다.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이다영, 김연경 또 저격 "입에 욕 달고 살아…술집 여자 취급해" - 머니투데이
- 정다래 남편 전처 "정다래는 내 아들 수영쌤…양육비 2년째 미지급" - 머니투데이
- 물인 줄 알고 마셨다가 '뇌사'…회사 종이컵에 담긴 액체, 알고보니 - 머니투데이
- '음주운전' 김새론, 자숙 끝? 은근슬쩍 뮤비로 복귀…반응 싸늘 - 머니투데이
- 데프콘, 이수지 AI프로필에 "100억대 사기" - 머니투데이
- 임신한 손담비 "잘 때 숨 안 쉬어져" SOS…무슨 일? - 머니투데이
- "중국어 썼다고 감점" 싸늘했던 이 나라…한국 건설사에 일 맡긴 후 '반전' - 머니투데이
- '미성년자 성폭행' 고영욱, 이상민 저격…"인간으로 도리 안해" 무슨 일 - 머니투데이
- "2회에만 만루포, 투런포 얻어맞아"…류중일호, 대만에 3-6 '충격패' - 머니투데이
- '이혼 소송 중 열애' 괜찮아?…변호사 "황정음 따라하면 큰일나"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