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순결 지켰는데 ‘임신’…인간은 힘들지만 동물은 가능하다? [생색(生色)]
[생색-10] 순결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던 숙녀였습니다. 첫 경험은 결혼하는 사람과 하겠노라고 매일 밤 다짐했지요. “지난밤 화려한 잠자리를 가졌다”는 친구들의 가십성 대화에도 일절 끼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몸의 변화를 느낀 건 건강검진 이후였습니다. 검진 3개월 후부터, 어찌 된 일이지 속이 자주 매스꺼웠지요. 배가 더부룩하고, 음식을 보면 헛구역질이 나곤 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찾아간 병원. 그녀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녀의 임신’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3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의사의 실수로 인공수정이 되었던 것이었지요. 넷플릭스 드라마 ‘제인 더 버진’의 이야기입니다.
2005년 연말 런던의 한 동물원에서였습니다. 코모도 도마뱀 암컷 한 녀석은 2년째 독수공방 중이었지요. 근데 어느 날 불쑥 알을 낳았습니다. 인간에 빗대면, 굳센 마음으로 처녀성을 지키던 여성이 임신한 것과 같았지요. 코모도 암컷을 수컷과 몰래 합방시킨 것도 아니었고, 괴짜 과학자가 짓궂은 마음으로 인공수정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 년 후 영국 체스터 동물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홀로 사는 코모도 도마뱀 암컷이 알 11개를 낳은 것이었지요. 학계는 다시 흥분에 빠집니다. 부화한 새끼들의 유전자 검사를 단행했습니다. 검사 결과 코모도 도마뱀 암컷의 유전자와 새끼의 유전자는 99.9% 일치합니다. 수컷과 교미 없이 알을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그야말로 처녀생식이 현실로 일어났던 것이었지요.
이들이 처녀생식을 하는 배경에 대해서 완벽한 과학적 설명은 불가합니다. 다만, 일부 가설은 있습니다. 암컷이 생물학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을 한다는 설명입니다. 짝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생존 환경이 좋지 않으니 혼자서라도 새끼를 낳게끔 설계됐다는 것이지요.
미국 하와이처럼 생태계가 교란된 지역(인간에겐 천국으로 통하지만)의 도마뱀들도 유성생식(교미)을 하다가 처녀생식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학자들은 전합니다. 먹을 것도, 짝도 찾을 수 없는 환경에서 선택한 ‘고육지책’인 셈이지요. 그만큼 종족번식을 향한 열망은 강력하다는 방증입니다.
바다 말미잘은 북미 태평양 연안에 서식합니다. 남쪽에 사는 놈들은 암수가 구분돼 유성생식으로 번식합니다. 북쪽 연안에 사는 놈들은 처녀생식으로 살아가지요. 북쪽에 군락을 이루는 바다말미잘은 유전적으로 모두 같습니다. 개체 간 이기심이나 속임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지요. 유성생식에 의해 발생한 개체들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한에서만 협력하는 것과는 명확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단성생식의 단점은 명확합니다. 홀로 새끼를 낳을 경우에는 정확히 어미와 똑같은 새끼가 나옵니다. 유전자가 다양하지 않으면 환경 변화에 적응을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작은 환경 변화에도 모든 개체가 몰살당할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2004년 작고한 유전학의 대가 메이너드 스미스는 “처녀생식을 하는 종은 유성생식 종보다 멸종 비율이 훨씬 높았다”고 얘기합니다. 생존에 좋은 환경이 아닐 때, 짝을 찾는 행위를 포기한다는 것. 어쩐지 남의 집 이야기 같지만은 않습니다.
ㅇ도마뱀, 상어 등 약 80종의 척추동물이 ‘교미’ 없이 번식하는 ‘처녀생식’(Virgin Birth)을 한다.
ㅇ짝을 만날 수 없거나, 생존에 좋지 않은 환경일 때 무성생식을 하는 것이다.
ㅇ남의 집, 아니 남의 ‘종’ 이야기 같지 않다.
<참고 문헌>
ㅇ애드리언 포사이스, 성의 자연사, 양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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