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도, 등산로 살인범도 '이것'부터 확인했다[이승환의 노캡]

이승환 기자 2023. 8. 2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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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강력사건이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증후군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한낮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인근 등산로에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30대 최모씨가 19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3.8.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한국 사회 역대 최악의 살인마로는 정남규(1969~2009년)가 꼽힌다. 그는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다" "살인이 즐거웠다" "많이 죽일 땐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받기도 했다. 정씨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서울과 경기도에서 13명을 숨지게 하고 20명을 다치게 했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자가 싫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납득할 수 없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 등 약자이거나 서민이었다. 경찰은 재차 추궁했다. "부자가 싫다면서 왜 부유층 지역에선 범행하지 않았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그러자 정씨는 "서울 강남엔 폐쇄회로(CC)TV가 많아 그곳에서 범행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가 실제로 재력가를 증오했는지 더는 알 길이 없다. 그는 복역 중이던 2009년 11월 극단선택으로 사망했다. 다만 생전 CCTV의 유무를 살핀 뒤 범행 장소를 고른 것은 분명하다.

◇"CCTV 없다는 것 알고 있었다"

약 20년 뒤 '신림동 등산로 사건' 피의자 최모씨(30대)도 범행 전 CCTV 유무를 확인했다.

범행 일시 및 장소는 17일 오전 11시40분쯤 관악구 신림동 한 등산로였다. 최씨는 금속무기인 너클을 양손에 낀 채 30대 여성을 폭행하고 성폭력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끝내 숨졌다. 점심시간을 코앞에 둔 대낮에, 그것도 실외에서 발생한 강력사건이다.

최씨는 범행 장소인 등산로와 관련해 "그곳을 자주 다녀 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범행 장소로 정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CCTV는 범죄 사각지대 해소에 필요한 감시 및 방범 장비다. 효과는 즉각적이고 뚜렷하다. 최근 몇 년간 '정남규' '유영철' '이춘재' 같은 연쇄살인범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CCTV가 전국 곳곳에 확대 설치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범인의 행적과 신상, 범행 과정 등을 CCTV로 분석한 경찰이 조기에 범인을 검거해 '연쇄살인'으로 치닫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 여성을 강간·살해·유기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하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2020.11.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연쇄살인은 세 군데 이상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피해자를 대상으로 벌인 범죄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이춘재 연쇄살인도 마찬가지였다. 1986~1991년 이씨의 범행 장소였던 경기도 화성에는 당시만 해도 CCTV가 부족해 경찰은 용의자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성 연쇄 살인은 다른 사건으로 수감된 이씨가 감옥에서 범행을 자백한 2019년 10월 전까지 미제사건이었다.

경찰은 치안을 강화하고 범인은 어떻게든 사각지대를 찾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CCTV를 추가로 설치한다면 범죄 예방 효과는 있을 것이다. 2020년 기준 전국에서 총 4만8251개의 CCTV가 가동되고 있다. 최씨 사건 이후 '등산로'에 CCTV를 설치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찰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CCTV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이유 그러나 'CCTV만이 해답'이란 결론은 어딘가 서글프다. CCTV는 사생활과 인권 침해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재국가에서는 사찰 등 감시 수단으로 악용된다. CCTV가 늘어날수록 사각지대 범죄는 줄어들겠지만 더 많은 시민이 '감시 체계'에 노출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묘사된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상)도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통제 사회이다. 1984에는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가 나온다. 우리의 현실은 21세기 민주국가다. 방범 시스템도 강화할 만큼 강화했다. 그런데도 흉악 범죄가 계속 터져 '디스토피아' 수준의 감시 체계로 더욱 옥죄는 것을 떠올리는 상황이다.

어떤 '이상 징후'가 우리 사회에 도사린다는 신호는 아닐까. CCTV로는 범인을 잡아낼 수 있지만 이 징후까지 읽어낼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답을 찾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한 달 사이 '흉기난동 살인범' 두 명(조선·최원종)과 수백 건의 살인예고 글, '등산로 살인범'이 잇달아 출현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조선(33)·최원종(22)과 등산로 살인범 최씨 모두 한창 나이인데도 안정적인 직업이 없었는데 이들의 등장은 혹시 '좌절 사회 증후군'이 아닐까? 이대로 두면 더 곪아 터질 가능성은 없는가?

고통스럽게 묻고 정밀하게 진단해 강하게 처방해야 할 때다. 잇단 강력 범죄를 개인 일탈이나 사이코패스 광기로 단순화해 해석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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