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검찰 소환' 이재명, '시지프스'의 의미는

김병헌 2023. 8.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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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끊임없이 검찰 수사를 받는 자신의 처지' 비유
국민의힘,"시지프스의 죄를 강조,죗값을 치를것" 주장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걸찰 출석에 앞서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는 검찰 출두에 앞서 입장문을 검찰청사 앞에서 읽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삼거리에 미리 설치된 ‘마이크 단상’에 올라 지지자들과 교감하면서 14분 동안 선거 유세하듯 입장문을 읽어 내렸다. 메시지는 '윤석열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자신이 수사받게 됐다는 그간의 주장과 함께 현 정권을 향해 경고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으로 한 차례, 1~2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3월에 이들 사건으로 기소가 된다. 4번째 검찰 출두다.

앞으로 전개는 지금보다 훨씬 극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영장 청구를 시작으로 내년 총선까지 정치권이 숨가쁘게 돌아갈 전망이다. 제1야당 대표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는 전망에는 이의가 없다. 이달 말에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조사받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도 조만간 국회로 넘어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동안 8월 말이나 9월 초에 구속영장 청구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다른 변수가 없다면 9월 중이 유력하다는 전망으로 바뀌고 있다. 검찰이 백현동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을 묶어 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여겨진다. 검찰은 지난 2월 1차 구속영장 청구때는 대장동, 위례신도시, 성남FC 의혹등 3건을 병합했다. 검찰의 영장청구는 이달 임시국회 회기 중에 넘어와야 여야 합의로 회기를 중단하고 국회 표결 없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이 대표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이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을 앞둔 가운데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 응원 집회를 갖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국회 표결 없이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면 지난 2018년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에 연루됐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영장심사를 받아 법원이 기각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던 경우와 비슷해진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검찰 출두 당시 자신의 처지를 시지프스에 비유했다.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는다. 기꺼이 시지프스(시시포스, 시지푸스, 시지포스, 시지프 등으로도 불림)가 되겠다"고 말한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 부유한 도시 국가 중 하나인 코린토스를 창건했다는 전설적 인물이다,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떨어지고 또 올려놓으면 다시 떨어져도 바위 굴리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형벌을 받는다. 끊임없이 검찰 수사를 받는 자신의 처지를 여기에 빗댄 것 같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지프스’의 죄를 강조하면서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가 여야 공방 중 하나의 소재로 소환됐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 속 스토리 전개는 이 대표의 의도와는 달리 국민의힘측 주장과 가깝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계속 굴리는 일은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이다. 이 대표는 소환 등 검찰수사가 무고한 자신을 억압하는 형벌로 보일지 모른다. 시지프스가 이 같은 형벌을 받은 정확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크게 세가지 버전으로 전해진다.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린 벌이라는 것과 그가 여행하는 이들을 살해한 벌이라는 주장도 있다. 올림포스 12신 중 으뜸이자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포함 3명의 신을 기만한 죄로 벌을 받았다는 애기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대표가 처지를 빗대서 애기했다고 해도 대선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도록 대선 후보였던 야당 대표를 상대로 수사가 이어지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대목이나 ‘정치검찰의 조작수사’ 주장 또는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겠다’는 의지 표명 등을 우회적으로나마 암시하는 부분은 없어 보인다.

시지프스 얘기는 단지 죗값을 치르는 대목이 강조된다는 느낌이다. 신화라 해도 당시 상황이나 배경과 스토리의 중심과 기준은 신들이다. 신들의 입장에서는 시지프스가 자신의 논법으로 무죄를 주장해도 신들에게는 자신들을 기망하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죄인일 수밖에 없다.

다시 이대표 얘기로 돌아가자. 검찰의 이 대표 영장청구 시기 결정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수사 진행에 필요한 시간 등 물리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이후 체포동의안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된다면 국회에서 표결을 거쳐야 한다. 정기국회는 회기를 중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로서는 가결된다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원도 국회를 거쳐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구속에 대한 부담감은 크게 줄어들 것 같다. 영장발부 여부는 법원이 공정하게 법리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발부 가능성이 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반대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돼도 이 대표로서는 설상가상이다. 민주당은 방탄 논란에, 이 대표는 리더십 공방으로 상당한 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당내 분란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당내 비명계의 분위기로 미루어 체포동의안 가결 가능성은 더욱 높아져 있다. 이 대표로서는 의도와 달리 점차 악수(惡手)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거 '사이다 발언'으로 정평이 난 이 달변의 정치인이 ‘시지프스가 되겠다’고 힘주어 한 말도 점차 다른 의미로 들릴 수 있다. 검찰수사에 소환된 시지프스가 어떤 시지프스일지 갈수록 궁금해진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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