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제거 없다면…'흉기 난동'은 두려운 일상으로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안녕하십니까. 이광빈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이 풀어갈 이슈,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무차별 총격, 미국 등 총기 소유가 가능한 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많은 이가 희생당할 때 우리도 안타까워 했지만,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듯했습니다. 그런데, 총기 난사가 아니더라도 무차별적인 칼부림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됐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역에서의 흉기 난동 사건, 지난 3일 분당 서현역에서의 흉기 난동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숨지고 다쳤습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에서는 흉기 난동 사건으로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대책을 살펴보겟습니다. 먼저 정래원 기자입니다.
[흉기난동에 꼬리무는 '살인예고'…"불안" 확산 / 정래원 기자]
[기자]
평일 낮, 서울 신림역 바로 앞 도로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행인을 공격합니다.
2주도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분당 서현역의 대형 쇼핑몰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대 남성이 차량으로 행인을 친 다음, 흉기를 들고 또다시 무차별 공격에 나선 겁니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골목인 데다, 범행 시각은 대낮인 오후 2시였습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시민들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지영/ 관악구 신대방동> "신림역 사건 이후에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이 있으면 혹시라도 흉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더라고요."
끔찍한 범행 영상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면서, 이중의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윤혁/ 관악구 신림동> "주위에서 보내줘서 할 수 없이 보긴 봤는데 엄청 후회했어요. 보고 나서 너무 트라우마가 생기고 무섭고 잠도 안 오고 괜히 봤나 싶고…"
이미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들과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겠다고 예고하는 악성 게시글도 수백 건이 넘었습니다.
지목한 장소도 강남역과 잠실역, 부산 서면역 등 전국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들로 다양합니다.
<하태진 /경기 김포시> "보면서 좀 왜 저런 행동을 하나…같은 사람으로서 좀 이해가 안 되고, 시민들에게 공허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동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경찰청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살인예고글 작성자에 대해서는 법무부와 함께 엄벌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연합뉴스 TV 정래원입니다.
#흉기난동 #살인예고 #이상동기범죄
[이광빈 기자]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중단하고, 얼마 뒤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인데요.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비극을 재발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최덕재 기자입니다.
[정신과 치료중단 후 범행 '패턴'…지원·예방 필요 / 최덕재 기자]
[기자]
지난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근처의 한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성민.
김 씨는 체포된 후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고, 프로파일러 등 전문가들은 "피해망상 범죄"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2008년부터 정신분열증, 조현병 치료를 받았고, 6차례에 걸쳐 입원했지만, 2016년 1월 퇴원했습니다.
당시 주치의는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증상이 재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지만, 그해 3월 집을 나온 이후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결국, 퇴원 4개월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2019년 4월 경남 진주시에서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이웃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게 한 안인득도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체포 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등 횡설수설 했는데, 병원에서 퇴원 후 3년 가까이 치료를 받지 않다가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 역시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중학교 시절 특목고 진학을 꿈꾸며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상도 탔지만 특목고 입학이 좌절되고, 일반고에 진학하면서 '분열성 성격장애'에 시달려 왔습니다.
정신분열증 전 단계로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치료해 왔지만, 차도가 없다며 치료를 중단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최원종/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제가 몇 년 동안 이 조직 스토킹의 피해자였고, 범행 당일날 너무 스토킹 집단의 괴롭힘을…제 집 주변에 조직 스토킹…"
문제는 사실상 방치돼있는 정신질환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입니다.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 예방·검진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은 경우는 25.6%.
정기 건강검진 이용률도 57.2%로 절반을 조금 넘은 수준입니다.
정신질환자 보호자들의 54.4%는 '프로그램이 적다', '이용절차가 복잡하다' 등의 이유로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상징후가 보일 때부터 적극 치료·관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이미 청소년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경범으로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를 수 있고, 그럴 때 응급입원으로 끝나지 않고…정신보건 이런 것들을 시스템을 구축해 주고 하면 조금 낫죠."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편견에 앞서 우리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한다는 지적입니다.
연합뉴스TV 최덕재입니다.
#정신과 #치료중단 #정신질환 #조현병 #강남역 #서현역 #묻지마
[코너 : 이광빈 기자]
모방 범죄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에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모방이 아니더라도 이전 사건을 통해 최소한의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현역 사건의 경우도 범인은 모방 범죄를 부인했지만, 신림역 사건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온라인 등을 통해 모방 심리가 표출되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살인 예고 글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온 것도 심리적 모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살인 예고 글은 온라인을 통해 이를 접한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끔찍한 사건 사고를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 등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점점 더 잔혹한 장면을 원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2021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지하철 흉기 난동 방화 사건도 미디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범인은 '조커' 캐릭터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2012년 24세 남성이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관람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해 1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 바 있었는데요. 조현병을 앓고 있던 범인은 체포 당시 "나는 조커다"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체포된 범인들이 모방 범죄를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서울 강남의 주택가에서 공익근무요원이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롤모델이라며 처음 본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범인들이 범죄를 과시하거나 술회할 경우 그 여파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20년에는 40대 남성이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범인 장대호의 회고록을 참고해 모방 살인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장대호는 재판받던 2019년 말 자신의 범행 수법과 과정을 적은 28쪽 분량의 회고록을 외부에 공개했는데요. 장대호의 회고록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고록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장대호는 과거 이런 사이트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게시물을 다수 작성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신상 공개가 결정된 뒤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장대호는 "반성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카메라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온라인에선 거대자기환상이 만연돼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자기 존재감과 달리, 온라인에선 법을 무시하고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다고 환상에 빠지는 겁니다. 혐오와 증오의 표현도 이런 환상 속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혐오와 증오는 전염력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부터 이런 환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권에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 사법입원제 같은 묻지마범죄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적지않아 국회의 문턱을 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조한대 기자입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사법입원제 검토…실효성 논란도 / 조한대 기자]
[기자]
수 년전 정치권에선 묻지마 범죄자를 가중 처벌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년 전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무차별 범죄자가 피해자를 숨지게 하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법안을,
이보다 앞선 해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사회에 증오심을 표출할 목적인 범죄에 대해선 두 배까지 형을 가중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특정 범죄를 묻지마 범죄로 규정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법적 최고형인 사형이 있는 상황에서 처벌 하한선을 높이는 게 무의미하단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최근, 형법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조항을 신설하고, 가석방 요건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흉악범죄자를 영구 격리할 수단을 마련하고, 혹시 모를 보복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게 해당 법안의 취지입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9일)> "흉악범죄자들 때문에 피해자가 두려워하고 유족이 밤잠을 설치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무기수에 대한 가석방 요건과 기간도 이 기회에 더 강화하려고 합니다."
국회와는 별도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힌 법무부,
복지부와 협의해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에 나섰습니다.
의료계에서도 이를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정찬승/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가족이 그 사람을 붙들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가면서 그렇게 입원을 권고를 하는 게 아니라 그때야말로 이제 국가기관이 개입을 해야된다…국민 안심치료 제도라는 명칭으로 사법입원이란 말보단…"
다만 이미 미국의 대다수 주와 프랑스, 독일 등지에선 시행되고는 있으나 우리가 시행하기엔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이로인해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는 겁니다.
정치권과 정부는 묻지마 범죄가 발생할 때면 요란한 논의를 벌였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인권 침해를 최소화 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할 땝니다.
연합뉴스TV 조한대입니다.
#묻지마범죄 #사법입원제 #가석방없는종신형 #발의
[클로징: 이광빈 기자]
최근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외신들도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한국의 '묻지마 범죄'를 분석하면서 '묻지 마'를 알파벳으로 그대로 표기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이런 폭력 사건이 상대적으로 드물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미국 CNN방송 역시 "강력범죄가 적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드문 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은 치안 수준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도시 비교 사이트 넘베오(Numbeo)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고 안전한 국가 1위였습니다. 여행자들이 뽑은 각국의 치안 순위에서도 한국은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요.
현장 대처가 쉽지 않은 '묻지마 범죄'들이 몇 건 발생했다고 해서 치안이 불안한 나라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게 된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를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공공장소에서의 불안감은 어느새 일상이 될 겁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묻지마범죄 #흉기난동 #모방범죄
PD 김선호 AD 이영은 송고 이광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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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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