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 등산로 성폭행 피해자, 출근길에 비극···끝내 사망
"궂은 일 도맡아 출근하다 봉변"
경찰, 강간살인으로 혐의 변경 검토 중
대낮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등산로에서 성폭행을 목적으로 지나가던 여성을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30대 남성이 구속된 가운데 이 사건의 피해자는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가던 길이 아닌 출근길에 비극적인 일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피해자는 3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19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 지인들은 A씨가 인근 초등학교에서 교직원 연수를 받기 위해 출근하던 도중 연락이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학교는 당시 방학이었지만 A씨는 학교장 지시로 교직원 연수를 직접 기획·참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연수는 지난 16일부터 진행됐으며, A씨는 출근 이틀 차에 피해를 당했다.
통상 교직원 연수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A씨는 이번 연수가 본인이 담당한 업무였고, 당시 연수에 참여한 인원도 현저히 적었기 때문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매일 출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A씨와 마지막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구는 “경찰은 ‘피해자가 방학 중 운동을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학교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방학에도 출근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늘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었다. 연수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였으나, A씨는 사건 당일에도 집에서 일찍 출발했다. 특히 이날 A씨는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 지인들을 잠시 만난 후 출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서둘러 집을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평소 늘 지나가던 길에서 피의자 최 모(30) 씨를 맞닥뜨렸다. 이들은 A씨에 대해 “평소 남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던 성격이었다”면서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나가다가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당시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심정지 상태가 오래 지속됐던 탓에 병원 응급실에 올 때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머물던 3일 내내 사경을 헤맸던 A씨는 19일 끝내 숨을 거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 말씀을 들으니 어느 정도 공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청 소속 노무사와 사실관계를 확인해 (공무상 재해가 인정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7일 오후 신림동의 한 공원과 연결된 등산로에서 A씨를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30대 남성 최 씨를 붙잡아 조사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을 하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고, 너클을 양손에 끼우고 피해자를 폭행했다”며 등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 씨는 19일 오후 1시 30분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를 빠져나오면서 “성폭행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최 씨가 범행에 사용한 ‘너클’은 손가락에 끼우는 형태의 금속 재질 둔기다. 이에 대해 최 씨는 “강간할 목적으로 지난 4월쯤 인터넷에서 너클을 구매했다”면서 “피해자는 등산로를 걷다가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최 씨는 사건 당일 오전 9시 55분쯤 금천구 독산동 집에서 나와 오전 11시 1분쯤 신림동의 공원 둘레길 입구에 도착했다. 이후 최 씨는 약 10여분 정도 걸어 범행 장소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범행 시각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 씨는 공원 내 등산로를 범행 장소로 정한 것에 대해 “평소 집과 가까워 운동을 위해 자주 방문하면서 CCTV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등산로를 걷다가 피해자를 보고 강간하려고 뒤따라가 범행했다”면서 “강간이 목적이었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동네 지리에 익숙한 최 씨가 공원까지 걸어서 이동한 뒤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보고, 등산로 입구의 CCTV를 분석해 최 씨의 동선을 복원 중이다.
최 씨의 범행은 인근을 지나던 등산객의 신고로 발각됐다. 경찰은 오전 11시 44분께 피해자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은 등산객의 신고로 출동해 낮 12시 10분 범행 현장에서 최 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최 씨는 체포 직후 음주측정과 간이시약 검사를 받았지만 술을 마셨거나 마약을 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전날 최 씨에게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강간등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피해자 A씨가 19일 사망함에 따라 강간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 씨의 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밤 늦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남명 기자 nam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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