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전장 빅데이터 쌓아라” 첨단 AI기술 실험장된 우크라戰 [세계는 지금]
축적된 데이터의 양, AI 성능과 직결
美·加·獨 등 민간기업들 줄줄이 참전
전쟁 아니면 못 구할 정보 확보 총력
지뢰탐지 드론·전파방해·안면인식…
데이터 총체적 분석 AI 플랫폼 제공
적군 위치 우크라軍 공유 정밀타격도
운용 기간 길수록 기술 ‘업그레이드’
우크라 정부도 자국산업 육성 움직임
모자이크戰 등 미래전쟁 기술 앞당겨
우크라이나 전쟁터에는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전선 한쪽에 세계 테크(기술) 기업이 있다. 전례 없는 드론 수요와 서방이 지원하는 넉넉한 보조금이 우선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총알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곳을 마다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장 데이터에 있다.
기업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실제 전쟁이 아니라면 구할 수 없을 데이터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데이터의 양은 AI의 품질과 직결된다.
드래간플라이가 우크라이나에서 판매하는 지뢰 탐지 드론이 암석과 현대식 지뢰를 구분할 수 있으려면 수만 장의 실제 전장 사진이 필요하다. 미국 엔비디아에 따르면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 생성형 AI의 신경망을 구성하는 데 일반적으로 5만~10만장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잉빌드 보데 남덴마크대 전쟁연구센터 부교수는 “기업들이 왜 무료로 우크라이나 측에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현재 이런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크라이나가 유일하다”고 와이어드에 전했다.
재래식 무기 측면에서 러시아에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차세대 전쟁 기술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도 기업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의 전파 방해 기술을 방어하기 위해 민간 드론 회사들에도 전파 방해기를 활용한 드론 시험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서방에서 통상적으로 불가능한 실험이다.
지난해 5월부터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된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 ‘고담’은 상용 위성, 열감지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찰 드론, 우크라이나 측 스파이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분석해 러시아군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는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고담을 이용해 적은 병력으로도 러시아군을 정밀 타격할 수 있었다. 고담은 AI를 기반으로 과거 공격으로부터 학습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운용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담 역시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군 공격의 대부분을 팔란티어 AI 시스템이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팔란티어는 우크라이나전에서의 성과를 발판 삼아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영국 국방부와 7500만파운드(약 1260억원) 계약을 맺고 영국군에 AI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올해 초 미 국무부의 의료 정보 체계를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체결해 9900만달러(약 1300억원)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5월에는 군사작전 보조 도구인 ‘인공지능플랫폼(AIP)’을 출시했는데, 이는 챗GPT처럼 대규모 언어모델을 장착한 시스템으로 전장 정보를 표시하고 군 내 의사 결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도 이제 잇속을 단단히 챙기려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장 데이터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이를 해외 기업들이 아닌 자국 산업 육성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진 것이다.
서부는 농업, 동부는 중공업에 집중하던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 최첨단 방위산업 육성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또 그래서 기술 기반 산업 역량이 일천해 러시아 침공 이후 미국 등 서방 국가와 기업에 국방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약 35억원을 투자해 드론 및 국방기술에 대한 민·관 협력 플랫폼 ‘브레이브1’을 만들었다. 브레이브1은 개설 첫 두 달 동안은 자국 기업들에만 개방됐다. 또 올해 5월 드론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자국 드론 업체에 대한 세금 감면안을 통과시켰다.
나탈리아 쿠슈너스카 브레이브1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브레이브1 외에도 자국 기업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비공개회의를 진행한다고 와이어드에 전했다. 그는 정부의 노력으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300개 이상의 기업이 드론을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큐스너스카 COO는 “해외의 호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기술도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많은 오류를 겪는다”며 우크라이나가 전장 데이터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의 AI 실험실 역할을 하며 전쟁 기술 발전도 앞당기고 있다. SNS서 수집한 사진으로 포로 신원을 식별하는 클리어뷰의 안면인식 프로그램, 택시 앱처럼 가까운 무기를 실시간으로 부를 수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GIS 아르타’ 등은 미래 전쟁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본지에 “(우크라이나전은) GIS 아르타 같은 기술이 실제 전쟁에서 적용된 최초의 사례”라며 “이런 것들이 소위 ‘모자이크전’을 통해 미국과 같은 군사 선진국이 추구하던 바”라고 전했다.
모자이크전이란 AI를 전쟁의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 모자이크처럼 전력을 자유롭고 빠르게 재편성하는 전쟁 방식을 말한다. 2016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처음 정의했다.
양 연구위원은 모자이크전에 대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나온 엄청난 빅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해졌다”며 “앞으로도 각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자꾸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를 하고 성과를 얻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업의 참여는 그 나라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결정한다”며 “대표적으로 한국은 군사장비는 지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에 한국 장비가 우크라이나전에서 활용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팔란티어 같은 경우는 전쟁 초기부터 함께 전쟁을 한 다소 이례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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