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령층 소비 증가한다는데…의료용 대마를 둘러싼 고민들
통증완화, 수면문제 해결 등 활용
미, 35개 주 이상 의료용 소비 허용
국내, CBD 산업육성 기반과 적절한 관리책 필요
미국에선 고령층의 의료용 대마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CNN의 건강전문기자로 잘 알려진 산제이 굽타가 최근 의료용 대마 사용과 노인들의 삶의 질 개선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헴프(Hemp)’로 알려진 의료용 대마는 유효물질인 카나비디올(CBD)을 활용하는 데 쓰이며, 마약용으로 쓰이는 대마인 ‘마리화나(Marijuana)’와 달리 향정신성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이 0.3% 이하로 낮다.
◆미국 고령층의 의료용 대마 증가, 이유는=의학박사이자 신경외과 의사이기도 한 산제이 굽타는 대마초의 의료용 사용에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2013년 의료용 대마를 다룬 첫 다큐멘터리인 ‘위드1’ 취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입장을 바꿔왔다.
지난 6일 저녁(현지시간) CNN 유료채널과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위드(대마) 7편 : 노년의 순간들(Weed 7: A Senior Moment)’ 에서 그는 고령층의 대마 사용 증가 현황을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의료용 대마 사용 증가세를 보이는 65세 이상 고령인구에 주목했다. 이들은 과거 1970년대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큰 까닭에 자발적으로 대마를 찾지 않았지만, 대마가 약물처방을 줄여주면서 사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
굽타는 “미국 65세 이상 인구의 30%는 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 외에도 우울감, 수면문제, 고통경감 등을 위해 매일 5종류 이상의 약을 먹고 있다”면서 “이들은 수면제, 항우울제 및 심지어 아편성 진통제 같은 처방약보다 정기적으로 대마를 처방받는 편을 선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마 잎과 꽃을 건조해 피우는 대마초 외에도 ‘팅처’로 불리는 추출액, 젤리·쿠키 등의 형태로 소비된다.
그는 “대부분의 약품과 마찬가지로 대마에도 위험이 있으며, 100개 이상의 칸나비노이드 화합물을 비롯한 400종의 화합물로 구성된 까닭에 더 복잡하다”면서 “대마가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아서도 안되지만,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대마를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강조한다.
굽타는 ‘의료용 마리화나의 성지’로 알려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연구시설부터 노인 대상의 시범적 대마 처방치료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노인 생활커뮤니티까지 다양한 곳들을 방문한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마 판매소까지 데려다주는 ‘카나버스(카나비+버스)’에 동승하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대마 재배시설 중 한곳을 방문, ‘성분 맞춤형’ 대마 생산현황도 함께 보여준다.
◆미, 의료용 대마 사용 증가한 이유는=이렇게 미국의 의료용 대마 사용이 활발해진 데에는 2019년 미국 농업법(Farm Bill) 개정의 영향이 크다. 향정신성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이 0.3% 이하인 대마에서 유효물질인 카나비디올(CBD)을 활용한 제품 생산이 활성화하면서 대마 제품의 사용이 증가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약물의존성 전문가위원회도 대마의 ▲화학요법(항암치료)으로 인한 메스꺼움·구토 ▲통증 ▲수면장애 ▲다발성경화증과 관련된 뇌전증(간질)과 경련 등의 질병 치료 효과에 과학적인 증거가 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마에 함유된 CBD는 의존성을 나타내지 않아 남용 위험성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미국 고령층 사이에서 의료용 대마 사용이 증가하는 사실은 지난 2020년 10월 미국 노년학회지에 실린 캘리포니아주립대(UC) 샌디에이고캠퍼스 의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조사 대상 564명 중 15%인 83명이 최근 3년 동안 대마를 사용했으며 그중 4분의 3가량이 효과를 봤다고 응답했다. 대마 사용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가 의료 목적으로 매일 혹은 매주 대마를 이용하며, 46%는 CBD 단일함유 제품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절반 이상이 합법적 판매소를 구입처로 꼽았으며, 로션(35%), 팅처(30%), 흡연(30%) 등의 방식으로 대마를 이용했다.
특히 이용자들의 94%는 가족에게 대마 사용 사실을 알렸으며, 친구에게 알린 사람도 절반에 달했다. 또한 41%는 요양원 관계자 등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연구진은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앞으로도 CBD를 중심으로 고령층의 이용이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고령층의 의료용 대마 사용 역시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산제이 굽타도 “낙상은 연쇄적인 합병증을 동반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면셔 “또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맞는 종류와 적정 복용량을 찾아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적은 양으로 시작하고, 천천히 양을 늘려 자신에게 맞는 양을 찾으라‘는 것.
그러나 미국에서도 대마에 관해서는 산업 진흥과 마약 규제라는 제도적 모순이 존재한다. 미국 38개 주와 워싱턴DC가 대마의 의료용 사용을 허용했고, 오락(리크리에이션)용으로 허용한 주도 23개나 된다. 반면 미국 마약단속국은 마약용 대마인 마리화나를 헤로인(아편), 엑스터시, LSD 등과 함께 ‘1급(스케줄1)’으로 분류한다. 중독성이 더 높은 코카인과 펜타닐이 스케줄 2에 속한 상황인 만큼 형평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한 예로 뉴욕시는 엄격한 제한조건을 내걸고 대마초 판매소 60여곳을 허가했지만, 불법 판매소가 1400곳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아닌 또한 조선일보는 대마초 소비가 합법화된 태국을 최근 방문, 최근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호객행위를 현장보도하며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대마초 사용을 해외에서 무심코 경험하는 사례가 자칫 중독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내 현황과 대책은=한국은 대마의 소지를 비롯해 매매·소지·알선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의료용 대마를 중심으로 규제완화의 첫발을 뗐다. 우선 뇌전증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강력한 요구로 2019년 CDB 성분의 전문의약품 ‘에피디올렉스’를 허가했다. 이와 함께 마리놀(에이즈환자의 식욕부진 완화), 나빌론(항암치료 후 구역 구토증상 해소), 사티벡스(다발성경화증 환자의 경련완화제) 등의 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의료용 대마 의약품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국내 생산·허가 역시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2020년 7월 중소벤처기업부의 ‘경북산업용헴프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계기로 2024년까지 의료·식품용을 포함한 ▲산업용 헴프재배 ▲의약품제조·수출 ▲산업용 헴프관리 등의 실증사업을 추진중이다.
최형우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한 예로 CBD 분말의 해외 가격이 1㎏당 500~1000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국내에 도입하려면 1만달러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해야 하며, 에피디올렉스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비싸다”면서 국내 생산기반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CBD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선 고순도 CBD 정제기술과 고함량 CBD 대마품종 육성 등을 위한 기반도 필요하다는 것.
이에 따라 의료용 대마 제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서 권고기준(THC 10㎎/㎏, CBD 20㎎/㎏ 이하) 준수를 위한 감시가 중요하다. 최형우 교수는 “헴프규제자유특구에서 경제성과 안전관리 실증을 수행하고 있다”며 “헴프의 의료용 산업화는 정부의 규제개혁에 좌우되는 만큼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대마의 무분별한 사용과 중독을 차단할 치밀한 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미 한국이 마약청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THC 성분이 많은 마리화나는 ‘입문용 마약’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흡입만으로도 호흡기 건강, 청소년 두뇌발달, 임신부와 태아 건강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국폐협회(ALA)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앨버트 리조 박사는 “미국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한 이유가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CBD를 제외한 THC 등 기타 성분이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호와 선택으로 인해 합법화된 것임도 잊지 말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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