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네이마르까지 낚아채… 오일머니, 정체가 뭐니 [S 스토리-축구스타 ‘블랙홀’ 된 사우디리그]

장한서 2023. 8. 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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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연봉·이적료 앞세워
‘레전드’ 선수 줄줄이 계약 성사
연봉 상위 10명 중 8명 속해
EPL 등 함께 5대 리그 노려
빈 살만 ‘사우디 비전 2030’ 일환
국부펀드 스포츠 공격 투자 배경
유럽축구계 “역사·경쟁력 부족”
논란 세탁 ‘스포츠 워싱’ 비판도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10년 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지난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 알나스르로 이적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알나스르가 발롱도르(올해의 선수) 5회 수상자인 호날두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유혹한 금액은 무려 연간 2억유로(약 2920억원). 천문학적인 금액에 축구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호날두가 이적할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단지 38살의 기량이 떨어진 ‘노장’이 ‘오일 머니’에 이끌린 줄 알았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 나서는 팀을 원했던 호날두의 바람과 달리, 유럽 빅클럽들이 그를 찾지 않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서 불가피하게 사우디로 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올여름 이적시장이 열린 뒤 사우디가 본격적으로 돈을 풀자 상황이 반전됐다. 호날두의 이적은 ‘축구 스타 대이동’의 신호탄일 뿐이었다. 오일 머니의 이끌림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사우디로 대거 이동했다.
마치 블랙홀처럼 스타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사우디 프로축구는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호날두가 사우디 프로축구를 두고 “더 많은 선수를 영입한다면, 사우디 리그는 ‘세계 5대 리그’가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허풍이 아닐 수 있다.
벤제마
사디오 마네
◆‘오일 머니 블랙홀’ 베테랑·전성기 스타들 흡수
지난겨울 호날두를 부른 사우디 리그는 올여름 본격적으로 스타 플레이어들을 수집했다. 지난해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림 벤제마가 스페인 최고 ‘명문’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벗고 알이티하드로 향하면서 사우디 프로축구의 위상은 한 번 더 올라갔다. 이후 은골로 캉테(알이티하드), 리야드 마레즈(알아흘리), 사디오 마네(알나스르) 등 유럽 무대를 누빈 이름값 높은 스타들이 줄줄이 사우디로 떠났다.
제라드 감독
과거 사우디 같은 중동 리그는 30대를 훌쩍 넘겨 은퇴를 앞둔 선수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아니다. 베테랑 스타들 외에도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28), 후벵 네베스(26·이상 알힐랄) 등 전성기가 한창인 20대 선수들도 유럽 생활을 접고 사우디행을 택했다. 선수뿐만 아니라 리버풀(잉글랜드) ‘캡틴’ 출신인 스티븐 제라드 감독이 알에티파크 지휘봉을 잡는 등 스타 감독들도 사우디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비록 성사되진 않았지만, 사우디 알힐랄이 ‘파리의 왕’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를 노리면서 무려 연봉 7억유로(약 1조원)를 제시했다는 소식은 세계를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했다.
네이마르
◆연봉 세계 ‘톱 10’ 중 8명 사우디 리그
지난 16일 브라질의 ‘스타’ 네이마르의 사우디행은 올여름 이적시장에 방점을 찍었다. ‘축구 천재’ 이강인이 합류한 프랑스 프로축구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6년간 활약한 네이마르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캡틴’으로, A매치 77골을 기록하며 ‘축구 황제’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전드’다. 그는 이번 여름 부산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친선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했다. 31살로 아직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네이마르가 사우디 알힐랄을 택한 것은 큰 충격을 줬다. 알힐랄과 2년 계약을 맺은 그는 연봉 1억5000만유로(약 2190억원)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사우디가 푼 오일 머니는 세계 축구선수들의 연봉 상위 10명 중 8명이 사우디 리그에 속할 정도다. 호날두와 벤제마가 각각 2920억원의 연봉을 받아 1위에 올랐고, 뒤를 이어 3위 네이마르(2190억원), 4위 캉테(1461억원)다. PSG에 있는 음바페가 1019억원을 받으며 5위에 자리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6위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662억원을 받는다. 이어 마네(579억원), 조던 헨더슨(579억원·알에티파크), 마레즈(509억원), 칼리두 쿨리발리(441억원·알힐랄)까지 7∼10위가 모두 사우디 리그다.

◆사우디 프로축구, 올여름 이적료 스페인 제쳐

또 사우디 리그는 올여름 이적료 지출 규모에서 ‘유럽 5대 리그’를 넘봤다. 이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제쳤다. 축구 이적정보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사우디 프로리그는 이번 여름 선수 이적료로 약 6억유로(약 8747억원)를 지출했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가운데 스페인 리그를 훌쩍 넘는다. 프리메라리가는 올여름 약 3억3700만유로(약 4913억원)를 사용했는데, 사우디 리그는 이보다 두 배 가까이 돈을 쓴 셈이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EPL은 약 20억5000만유로(약 2조9887억원), 이탈리아 세리에A는 7억유로(1조205억원), 독일 분데스리가는 6억4802만유로(9447억원), 프랑스 리그1은 6억3000만유로(9184억원)다. 사우디 리그는 당장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리그도 넘보는 수준에 도달했다.
◆‘사우디 비전 2030’…신산업 육성

사우디가 이렇게 축구판을 키우는 이유는 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2016년 제시한 ‘사우디 비전 2030’ 때문이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국가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그중 하나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축구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실제 이적시장을 주도한 알나스르, 알이티하드, 알힐랄, 알아흘리 4개 구단의 돈은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으로부터 나온다. 이들 구단은 지난 6월 PIF에 인수됐다. PIF의 자금 규모는 6000억달러(804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축구뿐 아니라 골프와 복싱, 모터스포츠 등 여러 스포츠 종목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미 사우디의 공격적인 투자는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새 시즌을 시작한 사우디 리그는 유럽은 물론 한국까지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스폰서 계약도 줄을 잇고 있다.

리그 체급을 키운 사우디 축구협회는 심지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의 문까지 두들기고 있다. 사우디 클럽을 UCL에 참여시키기 위해 유럽축구연맹과 대화에 나섰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중동 국가 사우디는 유럽이 아닌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막강한 자금력이 투입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빈 살만
◆사우디 검은 속내…‘스포츠 워싱’ 비판 제기

일각에선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을 국제적인 이미지 향상을 노리는 ‘스포츠 워싱’으로 평가한다. 사우디가 독재 체제에서 자행되는 인권 탄압 등 정치적 문제를 감추기 위한 ‘이미지 세탁’이라는 것. 사우디는 아직도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법으로 제한하고, 동성애도 불법으로 여긴다. 자국민의 반발을 스포츠 열기로 잠재우는 동시에 다른 국가들이 바라보는 민감한 시선도 변화시키겠다는 속셈을 지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스포츠 분야 투자와 국제 스포츠 대회 개최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우디는 2030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도 노리고 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 축구 해설위원인 ‘EPL 레전드’ 제이미 캐러거는 “사우디는 골프, 복싱 시합 등을 장악했다. 이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축구를 점령하려 한다. 스포츠 워싱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럽 축구계는 사우디의 광폭 행보를 경계하면서도 ‘세계적인 무대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단지 스타 선수들만 모아서 성공할 문제가 아니라 유소년 등 리그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틀과 역사적인 스토리가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EPL 최고경영자인 리처드 마스터스 회장은 “사우디 리그를 걱정할 필요 없다. EPL은 인지도, 경쟁력, 수익 등의 측면에서 지금 위치에 도달하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명장’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이적시장을 바꿨다”며 “엘리트 클럽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경계했다.

반면 사우디 리그는 영향력을 지속하겠다는 각오다. 이미 그들은 지난해 이웃 나라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켜봤다. 멈추지 않을 사우디의 이런 행보가 앞으로 세계 축구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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