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문화정치] 잼버리에서 K-POP으로: 'K-'신화의 민낯
[미디어오늘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잼버리의 'K-' 질곡
2023년 새만금 잼버리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비난, 감찰, 감사의 시즌이 열렸다. 축제가 성공하는 이유도 하나이지 않듯이, 파국이 몰아치는 원인 역시 단순하지 않다.
국내외 언론들에서 주로 지적되는 잼버리 실패의 원인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우선, 목적과 수단의 경도. 즉 복잡한 경제·정치적 이해관계 안에서 선정된 새만금은 실상 잼버리의 야영활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간척지였다. 이어 준비와 대응에 있어서의 무능력과 불성실. 주최자인 중앙정부부터 주관자인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대처하는 노력과 능력이 부재했다. 마지막으로 책임 소재의 불분명, 누락, 충돌, 따라서 전면적인 무책임.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자기 정당화와 남탓 속에서 각 중앙부처와 지방정부가 일치하는 유일한 공통점은 열등한 수행 능력과 남 탓하기의 뛰어난 재능이다.
대응방식에 있어서의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도 제기되었다. 한국의 “전체주의”의 일종으로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된 현상, 눈앞의 위기를 막느라 허겁지겁 다른 기관, 조직, 시설들에 대한 '자발적'인 동원이 강행된 점 등이다. 특히 새만금에서 뚫린 구멍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서울, 대기업, 유명 관광지로 땜질되었다. 대표적인 상징은 상암에서의 K-POP 공연이라는, 거대상업화된 K-컬처의 빵빠레다. 그리고 언론은 약속한 듯 환호성 했다.
자연 안에서 전 세계 청소년들이 공동체적 우정과 협동을 경험하는 잼버리의 본질을 돌변시킨'K-'만의 수법이다. 오래 누적된 문제들로 인해 터진 사건을 가리기 위해 닳고 닳은 신화로서 'K-'가 재활용된 한국의 민낯이다.
언론 역시 잼버리 'K-'의 질곡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거대하게 누적된 문제들이 어떻게 십 년 가까이 아무도 모른 채 조용히 유지될 수 있었나. 이 문제는 분명 언론 책무와 연결된다.
나는 잼버리가 파국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무엇을 했는지 찾아보았다. 새만금 선정(2017년)에서부터 올여름 개막에 이르기까지 잼버리가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행사였다면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지속적인 검토 및 취재 작업은 국내 언론에서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잼버리 사태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에 줄곧 비유되지만, 소의 탈출과 잼버리 파국 사이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소의 도주에는 전조 증상이 없다. 그러나 잼버리 파국 같은 경우엔 전조 증상이 차고도 넘친다.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비난하는 일에 앞서, 어떤 위험이 잠재하며 그 예방과 개선에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에 관한 언론의 개입이 마땅히 선행되었어야 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기사라곤, 2017년 새만금 선정 이후 전북 지역지와 일부 종합지가 행정 부서의 홍보용 보고를 받아쓴 듯한 몇몇 기사들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드러낸 이 공통적 결함은 이들이 평소에 극명하게 지니는 정치적·지역적 입장차를 초월한다.
조선일보에는 “전북 새만금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갖췄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새만금은 약 1000만㎡(300만 평) 규모의 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 대규모 참가자들이 야영 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크기다. 야영지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바다와 산, 강, 갯벌 등도 위치해 있다”라고 보도했다(조선일보 <2023 세계잼버리, 전북 새만금서 개최> 2017년 8월18일). 한겨레는 <“새만금서 당신의 꿈을 그려라”… 8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열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2023년 1월23일). 지역지인 전북도민일보는 <새만금 잼버리 성공개최 우리 손으로 일군다>는 기사에서, 지역민들의 활기찬 준비 상황을 알렸다.
애초에 새만금이 잼버리 야영지로서 적절한지, 합법인지부터가 의문시되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부정확하고 저품질인 보도들이다. 이렇게 보면 언론 역시 K-의 질곡에 길들어 왔다.
“너네 정말 그러니”
복합적 문제들이 총집결해서 파국이 일어난 후 '기승전-K'으로 급땜질되는 현상은, 정치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관찰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더욱 우울한 점은 잼버리처럼 눈에 가시화된 파국뿐 아니라, 우리가 자못 자랑스러워하는 현상의 이면에도 이 같은 모순과 비정상이 편재한다는 사실이다.
해외의 한 미디어 학자가 내게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며, 학교 폭력에 복수하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말을 건네왔다. 우리가 성공적인 K-컨텐츠로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더 글로리>에 대한 인사다. 그런데 그 동료의 진지한 의견은 그다음에 이어졌다. 한국 문화의 저력과 성취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다. 대신 “너희 한국은 정말 그러니? 정말 학교에서 그렇게 폭력이 난무하니”라고 염려하는 어조의 질문이었다.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며 극적 과장일 뿐이라고, 혹은 그건 전 세계 보편적인 현상 아니냐고, 아니면 한국 드라마의 창의적 제작 기술이 만들어 낸 멋진 허구일 뿐 한국의 현실과는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현실은 그보다 더 심한 폭력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라마 주인공이 펼치는 통쾌한 복수나 역전 같은 건, 우리의 삶에선 아예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늘도 학교 폭력의 희생자와 가족은 극단적인 선택과 비애 속에 조용히 사라지고, 피해를 준 누구와 가족은 술수와 부인을 통해 당당하게 출세하는 풍경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른바 'K-'의 '글로리'가 덮어 감추는 한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이다.
눈 감으면 선진국?
잼버리 사태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모순을 그대로 노출하는 파국이다. 그것을 가리는 마법 망토로서 'K-'의 '글로리' 역시 영원히 만능일 수 없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말을 일상적으로 듣곤 한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그간 K-선진국이란 신화에 눈 감고 있던 우리의 하찮은 미망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다만 더 이상 그 달콤한 꿈으로 눈 감고 모르는 척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금의 현실은 더 급속하게 썩어 곪아 터지는 것일 수도.
그간 우리는 정말, 다양한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공평하게 누리고 책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진국이었던 걸까? 엄격하게 자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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