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뚫릴 '대구 갈라파고스'··· 수리부엉이가 기가 막혀[하상윤의 멈칫]

하상윤 2023. 8.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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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 습지서 수리부엉이 등 멸종위기종 다수 발견
서식지 가로지르는 산책로·자전거도로 건설 예정
환경부 '주민 통행 불편 해소 위해 공사 불가피'
8일 팔현습지 내 왕버들 숲에서 마주친 수리부엉이 새끼가 카메라 렌즈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 324-2호다.

대구 중심부로 향하는 금호강은 수성구 북측에 낮게 솟은 제봉을 만나 크게 한번 굽이친다. 곡류 안쪽에서 유속이 느려진 강은 토양에 스미고 잠김과 노출을 반복하며 습지를 이룬다. 이 축축한 땅은 인근 마을의 이름을 따서 ‘팔현습지’라 불려 왔다. ‘달성’, ‘안심’과 더불어 대구의 주요 습지로 꼽히는 팔현이지만 그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근래의 일이다. 환경부가 이곳을 가로지르는 교량형 자전거도로(‘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를 내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대구 팔현습지 전경. 아래 사진은 교량형 자전거도로(‘금호강 사색있는 산책로’) 조감도.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담비, 수달, 수리부엉이, 원앙, 삵, 얼룩새코미꾸리, 흰목물떼새, 황조롱이, 남생이.’

이들은 이달 초까지 팔현습지에서 확인된 법정보호종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들이 도심에서 한꺼번에 발견되는 건 이례적인 경우다. ‘대구의 갈라파고스(육지에서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져 보존된 남태평양의 제도)’라는 비유는 단순히 과장 섞인 우스갯소리일까? 처음 마주한 팔현습지는 자투리를 연상케 했다. 사방에서 개발이 진행되는 와중에 고립돼 보존된 조각 땅 말이다. 습지를 등지고 정면으로는 아파트가, 오른쪽으로는 골프장과 패밀리파크가, 왼쪽으로는 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1일 팔현습지 왕버들 숲 방면 절벽에서 관찰된 담비 모습. 담비는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팔현습지 인근 금호강에서 촬영된 수달(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천연기념물 330호).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강을 따라 길게 늘어진 형태를 띠는 팔현습지는 한가운데 자리한 골프장에 의해 반토막 난 상태다. 지난 2020년 9월 개장한 이곳 수성파크골프장은 27홀 규모로 부지면적이 2만9,050㎡에 이른다. 구장 주변으로는 자전거 길이 깔리고, 조경수가 식재됐다. 골프장을 지나 100여m 걸어가면 하천 침식에 의해 형성된 절벽 지형인 하식애가 등장한다. 그 아래로 환삼덩굴과 왕버들이 우점하는 전이지대가 펼쳐진다. 하천과 산지가 만나는 이 중간 지점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꼽힌다.

지난 7월 11일 어린 고라니가 팔현습지 환삼덩굴 지대에서 은신하고 있다.

‘습지주의자’의 저자인 김산하 박사는 “팔현습지의 높은 생물 다양성은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의 온전한 연결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한 연결을 단절하는 시설물을 만드는 건 그곳의 가치와 생태계를 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격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도 이곳에서 수리부엉이(멸종위기 야생동물 Ⅱ급·천연기념물 324-2호) 한 쌍이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러냈다. ‘야행성 조류로 대표되는 부엉이류와 올빼미류는 분포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한 환경영향평가 내용과 대비된다.

어린 부엉이가 관찰된 나무 아래에 공사 예정 구간임을 알리는 노란 깃발이 꽂혀 있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8일 오후 왕버들숲에서 휴식 중인 수리부엉이 새끼를 마주했다. 어린 부엉이가 내려앉은 나무 아래엔 자전거 길 공사 예정 구간임을 알리는 표식인 샛노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사업시행으로 훼손이 예상되는 수목 분포지역은 5만4,280㎡에 달한다. 정다미 꾸룩새연구소 소장은 “한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맹금류인 수리부엉이의 서식 환경은 상당히 까다롭다”면서 “정착해 잘살고 있는 종의 집을 파괴하고 쫓아내는 일을 벌이면서 대체 서식지를 해결 방안으로 드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서식지 파괴는 수리부엉이를 포함한 야생동물의 생존에 있어 가장 큰 위협임에 틀림이 없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올해도 팔현습지에서 수리부엉이 한 쌍이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러냈다. 정주성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수변 및 개활지가 인접한 암벽지대를 서식지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보완 1차 평가서에 따르면 팔현습지를 가로지르는 제방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계획수립의 주된 사유로 주민 민원을 들고 있다. 수성패밀리파크 및 골프장 이용객의 상업시설(동촌유원지 명물 먹거리촌) 접근 관련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 하천국 이강욱 공사1과장은 “본 사업은 제방 보강으로 홍수 안전을 확보하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통해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인 금호강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낙동강유역환경청 측은 “공사 전 정밀조사에서 발견된 얼룩새코미꾸리, 큰기러기, 큰고니, 흰목물떼새, 새매 등에 대해 전문가 자문을 구하고 (환경 영향) 저감대책을 수립했으며, 수리부엉이와 담비 등 추가 확인된 법정보호종에 대해서도 저감대책을 수립·반영해 공사를 실시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생태적 보존 가치가 높은 습지에 골프장을 짓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골프장 이용객들 편의를 위해 야생동물 서식지 한가운데로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뚫겠다고 한다. 수달이나 담비, 수리부엉이 모두 다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종인데, 환경부가 나서서 그들의 서식지를 훼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건 커다란 모순이 아닌가?” 팔현습지 왕버들숲 아래에 선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 처장은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기후 위기도 결국엔 난개발과 생태교란의 결과”라면서 “근시안으로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헤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팔현습지 왕버들 군락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대구=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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