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 8개 가격이 무려 1만2000원… 민생의 탄식 [視리즈]

김미란 기자 2023. 8. 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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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리즈] 우림시장 겨울 그리고 여름➊
말도 안 되게 오른 채소가격
귀한 몸 된 金상추, 金고구마
고물가에 손님 발길 뚝 끊겨
새벽부터 일해도 쌓이는 건 빚
가격 올리자니 손님 끊길까 걱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앓이
혹한기를 보낸 영세상인들이 이번엔 폭염 한가운데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어묵 1개 1000원. 지난해 12월, 전통시장의 영세상인들이 고물가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그들은 "곧 나아질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야속한 겨울을 보내고 나면 엔데믹(풍토병·endemic)과 함께 따뜻한 봄이 찾아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 그로부터 8개월, 다시 바로 그 전통시장을 찾았다. 그곳 사람들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바람대로 엔데믹과 함께 희망이 찾아왔을까.

# 매서운 추위를 버텨낸 그들은 이번엔 맹렬한 폭염 속에 있다. 고물가는 더 치솟았고, 폭등하는 에너지 요금마저 그들을 옥죈다. 나아질 거라 품었던 기대는 하루가 다르게 좌절로 바뀌고 있다. 우리네 민생은 지금 괜찮은 걸까.

# 상인들을 여전히 움츠러들게 만들고, 이제는 숨이 턱 막히게 뜨겁기까지 한 우림시장 속으로 가보자. 더스쿠프 視리즈 '우림시장 겨울 그리고 여름' 편이다.

전통시장의 영세상인들에게 이번 여름은 유독 힘겹다.[사진=연합뉴스]

혹한의 시간을 보냈던 영세상인들이 이번엔 폭염과 싸우고 있다. 장마와 유례없는 폭염에 식자잿값이 다시 치솟았고, 상인들은 가격표에 손을 댔다. 그러다 보니 이젠 오징어튀김 4개, 고구마튀김 4개의 값이 도합 1만2000원까지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고 살기 위해 가격을 끌어올린 상인도, 1만원을 넘게 내고도 고작 튀김 8개만 받은 손님도 멋쩍은 세상이다. 더스쿠프가 혹서기를 지나고 있는 영세상인들을 만나봤다.

지난겨울 영세상인들은 매서운 추위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건 고물가였다. 어묵 1개를 1000원, 호떡 1개를 1500원에 팔아도 손에 쥐는 게 별로 없었다. 팬데믹 여파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탓이었다.

천정부지로 솟구친 원자잿값을 감당하지 못한 채 장사를 그만두는 영세상인도 많았다. 그 결과, 겨울 대표 먹거리인 붕어빵은 귀한 몸이 됐고, '붕세권(붕어빵 가게 인근 주거지역)'이란 신조어가 인기를 끌었다. 붕어빵 가게를 찾아주는 앱까지 등장했으니 그때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그럼 혹한의 겨울을 보낸 상인들은 지금 어떨까.

추운 겨울을 버티고 봄을 보냈지만, 나아진 건 없다. 그들의 삶은 그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반도를 수직 관통한 태풍 카눈이 지나가고 다시 폭염특보가 내린 지난 14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우림시장을 찾았다.

32도를 넘는 날씨에 몇걸음만 옮겨도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날이었다. 우림시장은 북문에서 남문까지 436m의 거리에 180여개의 영세 점포가 밀집해 있는 골목형 재래시장이다. 1970년대 형성돼 현재까지 인근 주민들의 정겨운 생활터전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시장 정문인 북문으로 들어서면 시끌벅적한 채소·과일가게가 먼저 시장 손님들을 반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가지 못한 채소와 과일을 싼값에 파는 덕에 이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옆 가게로 가니 정오순(가명)씨가 가게 안에서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씨는 2001년 8월 31일 가게를 개업해 이곳에서만 23년째 곱창과 순댓국을 팔고 있다. "아침 7시에 나왔는데 이제 순댓국 다섯 그릇 팔았다"는 그는 "곱창은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정씨의 말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가격이 무섭게 치솟았다.[사진-연합뉴스]

대화를 나누던 정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너덜너덜한 공책 한권을 들고 왔다. 수기로 작성한 매출 장부였다. "이것 봐요. 다섯 그릇 팔았잖아요. 어제는 그래도 주말이라 장사가 좀 됐어요. 순댓국은 스무 그릇 넘게 팔았고, 곱창도 꽤 팔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가, 손님이 없네요."

그가 펼쳐 보여준 공책은 어떤 날엔 한 면이 글씨로 빼곡하고, 또 어떤 날은 오늘처럼 휑했다. 손님이 뜸한 날엔 그의 머릿속 계산기가 유난히 바쁘게 움직인다.

"채소가격이 말도 못 하게 올랐어요. 곱창전골에 상추가 같이 나가는데 얼마 전엔 10㎏ 한 상자가 18만원 하더라고요. 6만~8만원이었을 땐 어쩔 수 없으니 몇번 샀어요. 아끼고 아껴서 3일을 썼는데, 18만원까지 오르니까 도저히 지갑을 못 열겠더라고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4일 기준 상추(적·상품) 4㎏ 한 상자 도매가격은 4만2360원이었다. 폭염과 장마 영향으로 7월 24일 8만7340원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많이 하락했지만, 두달 전 가격이 1만8460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여전히 비싼 수준이다.

머릿고기 가격도 많이 올랐다. "순댓국이니까 돼지머릿고기를 삶아서 쓰는데 그것도 꽤 올랐어요. 마장동에서 한 마리에 1만8000원 주고 사왔는데 이제는 2만8000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큰 건 3만5000원도 불러요. 예전보다 부위가 줄어 열 그릇은 덜 나오는 데도 말이죠. 그래도 장사하려면 사야지 어쩌겠어요."

어쩔 수 없이 지난봄을 보내며 순댓국 한그릇(보통) 가격을 8000원에서 9000원으로 올렸지만 정씨의 가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재료비에 임대료, 인건비까지 주고 나면 매달 1000만원은 훌쩍 나가요. 그런데 곱창이랑 순댓국 팔아서 그렇게 벌겠어요?" 그가 1000만원을 벌려면 순댓국 1111그릇을 팔아야 한다. 얼마 전 부서진 임플란트를 다시 해 넣어야 하는데 한두푼이 아니라 치과에 못 가고 있다며 그가 씁쓸한 듯 웃자, 그의 공책처럼 휑한 앞니가 드러났다.

폭등한 원재료 가격에 한숨 쉬는 건 시장 한쪽에서 채소를 파는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단골손님과 나란히 앉아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던 이정애(가명)씨도 그중 한명이다. 이씨는 "장마에 폭염까지 이어지면서 장사가 안 된다"며 "채소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말했다.

"물건 뗄 때 보면 안 오른 게 없어요. 채소가 이렇게 비싸니 누가 사려고 하겠어요. 다 그냥 지나가잖아요. 더군다나 날씨까지 이렇게 더우니 만들어놓은 반찬만 사다 먹죠. 하루하루 참 힘드네요."

뜨거운 기름 앞에서 휴지로 연신 땀을 닦는 김명숙(가명)씨에게도 이번 여름은 전에 없이 힘든 시기다. 지난겨울 밀가루와 식용윳값 폭등으로 가게 인기 메뉴인 오징어튀김 가격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린 김씨는 또 한번 고물가에 무릎을 꿇었다. 겨울까지 1000원을 유지했던 고구마튀김 가격을 올봄 1200원으로 올린 데 이어 열흘 전에 다시 1500원으로 올렸다.

튀김 가격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역시나 재룟값이다. 한창 오르던 식용유 가격이 다소 진정되자 이번엔 고구마 가격이 폭등했다. 이날 기준, 고구마(밤·상품) 10㎏은 4만3700원(도매)에 거래됐다.

1년 전 2만9740원과 비교해 46.9%나 올랐고, 한달 전 가격인 3만6240원과 비교해도 오름세(20. 6%)가 가파르다. 물오징어(냉동·중품) 가격도 1㎏에 1만1580원으로 1년 전 9506원과 비교해 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더 가격을 올렸다간 손님 끊길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한 중년손님이 1만2000원어치 튀김을 주문했다. 그의 손에 들린 오징어튀김 4개, 고구마튀김 4개가 담긴 걸 보고 있자니, 고물가가 새삼 더 실감 났다. 문제는 이런 식자잿값만 영세상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한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에너지 공공요금이다. 이 애환은 파트2에서 들여다보자.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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