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순백으로 피어나는 상사화[전승훈의 아트로드]
상사화(相思花).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꽃이다. 상사병을 앓게 하는 이 지독한 사랑은 짝사랑이다. 애타게 그리워하면서도, 서로를 결코 만날 수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아픔이고 슬픔이 된다.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위도에는 8월 말 순백의 ‘위도 상사화’가 피어난다. 지구상에서 단 한 곳, 위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 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여름의 끝자락에 위도를 찾아 떠난다.
● 밤에 더 희게 빛나는 위도 상사화
보통 한 송이 꽃이 피려면 봄에 먼저 새싹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나고, 가지에서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망울이 터져 드디어 꽃이 피어나게 된다.
그런데 상사화는 다르다. 추운 겨울(2월)에 푸릇푸릇 새싹이 피어난다. 봄에 잎이 무성해진다. 여름이 올 즈음인 6월, 잎은 말라 다 떨어진다. 그러다 8월 중하순, 잎이 떨어진 뿌리에서 한 가닥 줄기가 불쑥 올라와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마치 길거리에서 파는 한 송이 장미가 잎과 가시를 다 제거해 매끈한 줄기 끝에 달린 것처럼 상사화는 땅 위에서 솟아오른 깨끗한 줄기 끝에 꽃 한 송이가 달려 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한 것처럼, 한 송이 상사화를 피우기 위해 잎은 추운 겨울부터 새싹을 틔우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했다. 그러다 말라붙은 잎은 땅으로 떨어졌고, 뿌리로 들어가 꽃으로 환생한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고, 희생하고, 사랑했는데 잎과 꽃은 살아생전에는 볼 수 없는 운명이다.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인연. 그래서 상사화를 이별초, 부활초라고도 부른다.
● 호랑이의 눈? 바닷가에 뜬 달!
부안 격포항에서 1시간쯤 배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위도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부안의 지질명소 19곳 중 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위도 대월습곡은 이달 11일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예고했다.
대월습곡의 모양은 거대한 반원형 형태다. 원래 둥근달 모양이었는데, 절반이 잘려 나간 듯한 모양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오랫동안 큰 달로 불러왔다고 한다. 뚜렷한 지층 경계로 이뤄진 지름 40m의 거대한 원형 구조가 푸른 해안과 어우러져 수려한 절경을 이룬다. 어찌나 거대한 둥근달인지 바위 아래에 서 있는 사람이 손톱만 해 보일 정도다.
● 두 섬 사이로 지는 왕등낙조
위도 8경 중 하나인 ‘왕등낙조’는 서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풍경으로 꼽힌다. 오후 7시가 좀 넘었을까. 위도해수욕장에서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붉은 해의 긴 그림자가 바다 위에 내려 비치고 있었다. 급하게 해안도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높은 절벽 위에 놓은 해안도로였기 때문에 지는 해의 그림자가 수면 위로 유난히도 길게 번지고 있었다. 온 하늘과 바다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태양은 위도에서 약 20km 떨어진 두 개의 왕등도(상왕등도, 하왕등도)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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